성공한 사람이 마시는 보이차

by 무유

혈기왕성한 시절에는 왜 그리 한국이 싫었을까.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무조건 가방 하나 싸매고 외국으로 떠났다.

심지어 몇 나라에서는 꽤 긴 시간 머무르기도 했다.


이제는 먼 나라 여행에서 느끼는 우연의 기쁨보다는

특별할 거 없이 반복되는 편안한 일상이 고맙고 행복하다.


그중에 하나는 초봄에 피는 작은 들꽃을 감상하는 일이다.

지난 몇 년간 동네 산책을 부지런히 했다.

하지만 돈 한 푼 들지 않는 이 소소한 행위는 꽤나 적극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해가 떠 있을 때 오피스에서 일하지 않을 결심,

기꺼이 허리를 구부리고 찬찬히 작은 꽃을 들여다볼 결심,

타인과의 소통 대신 말없는 식물을 만날 결심이 바로 그것이다.


햇빛을 쬐며,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걸으며

꽃을 감상하는 지금 이 순간은 결심으로 지켜내는 나의 행복이다.


성공의 기준은 개인마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고,

인생의 시기별로 변하기도 한다.

언제 다시 이 기준이 바뀔지는 모른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 아니니?"

후추알 보다 작은 꽃마리에게 말했다.


인간의 성공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꽃마리는 아무 대꾸도 없다.


슬쩍 민망해진 나는 다시 말한다.

"인간이라서 그래. 이해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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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지만 혼자서 성공의 기쁨을 누린 오늘은 무슨 차를 마실까?

그렇지,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는 역시 보이차를 따라올 수 없지.

차통에서 보이차를 꺼낸다.

성공이란 단어와 내 인생이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오늘은 보이차를 마셔보겠다.


오늘의 차는 선물 받은 중저가의 중국의 보이차인데 살펴보니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있다.

어때 뭐!

뜨끈하게 몇 잔 마셔보니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는다.

이 정도면 성공한 사람이 누리는 적당한 사치를 마음껏 누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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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tea)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몇 년간 이런저런 차를 마셔봤다.

도시에 있는 한 절에서 *티탠딩으로 일여 년간 봉사하면서,

외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차를 내어드리기도 했다.

절에는 차를 잘 아시는 스님들과 손님들이 보시하는 소위 비싼 고급차도 맛보았다.


(*티탠딩은 바텐딩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절에서 만든 단어입니다.

3미터가량 되는 테이블에서 손님들과 대화하면서 차를 우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차가 점점 좋아지면서 차와 관련한 다양한 책을 읽었다. 보이차 워크숍에 참여해 보기도 했다.

분명 3시간 코스인데 팽주가 끝을 내지 않았고 슬슬 보유한 값비싼 보이차 구매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팽주의 현란한 말에 취해서인가, 카페인의 과다한 섭취 때문인가.

급기야는 땀이 삐질삐질 나고 어지러워서 네 시간 만에 줄행랑을 쳤다.

(그 후에도 1~2시간 더 이어졌다는 후문이 ^^)


차맛과 찻자리가 주는 분위기가 좋았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알아갈수록 왠지 나는 차의 세계와 맞지 않는 듯했다. 고급스러울수록 인정받는 취향과 뭔가 격식을 차려야 차를 잘 안다는 분위기에 살짝 반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우엉차 같은 대용차는 차나무 잎이 아니기에 차(茶)란 단어를 쓰면 안 된다는 엄숙주의에 갸우뚱해지기도 했다. 중국에서 재배되고 유통되는 차나무 밭에 엄청난 양의 농약이 살포된다고 하는 말을 듣기도 해서 더 신뢰가 가지 않기도 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차고 넘치는 요즘의 시장에서 고급화 전략은 돈이 된다. 비슷한 상품도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하고, 어떤 곳에서 유통하느냐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필수품도 아닌 취향을 파는 차(tea)의 세계에서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차 박람회를 갔는데, 명나라, 청나라 때부터 내려온 이가 나간 작은 찻잔 하나가 몇 백만 원에 팔고 있었다. 보이차 떡차는 수십만 원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맛도 좋을 테고,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야 유지가 될 터이니 찻집을 운영하는 이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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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찻집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해보았는데

취미가 아닌 비즈니스로 하는 찻집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편견 없이 차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내 눈에 예뻐 보이는 몇 가지 다구들

고요한 시간에 몸을 차분히 해줄 차

마음을 나눌 찻자리면 충분하다.


하지만 누가 알랴.

운명에 없던 부자가 된다거나, 보이차 맛에 푹 빠져들 수도 있지 않겠나.

그때가 되면 진열장 가득히 명품차와 비싼 차도구들을 가득 쟁여 놓을 수도.

다시 찻집을 한다고 매물을 보러 다닐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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