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커서 쌍꺼풀 수술하자. 대학생 되면 해줄게”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쌍꺼풀만 있으면 완벽한 앤 데,,,"
당연히 완벽할 리도 없었고, 쌍꺼풀 진 눈을 갖고 싶다는 욕망도 없었다.
“엄마, 나 무쌍으로도 괜찮아.”
당시엔 그게 단순한 반항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 없는 선택이다.
나는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쌍꺼풀이 없다.
엄밀히 따지면 눈을 크게 뜨면 속 쌍꺼풀이 존재하긴 한다.
눈 두 덩이에 지방이 많아 힘없이 눈을 뜨면 눈이 부어 보이거나 졸려 보인다.
하지만 눈에 적당히 힘을 주면 적당히 크고 길고 또렷한 눈매이다.
속쌍꺼풀이 길어서 눈이 좀 더 커 보이는 듯하다.
나는 그런 나의 눈이 좋았다.
9살인가 10살 때부터 안경을 썼다.
부모님이 다 시력이 좋으신데 어쩐 일이지 세 자매는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썼다.
외모에 관심이 있을 십 대 초반에는 한창 검은 뿔테가 유행할 터이라 안경으로 주로 멋을 부렸다.
그러다 고등학생쯤 되자 더 이상 두꺼워진 안경은 뿔테로는 커버가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선배 오빠를 좋아하기 시작한 후로는 두꺼운 안경을 쓴 내 모습에 자신감을 잃었다.
마이너스 시력임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는 안경을 잘 끼지 않았고 희미하게 보이는 상태로 다녔다.
대학에 가자마자 콘택트렌즈부터 맞혔다.
투명하고 작은 비닐 한 겹을 눈에 착하고 끼어넣자마자 세상은 환해졌고, 무거운 안경으로 짓눌렸던 콧등과 귀는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살 것 같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눈은 체감상 거의 1.5배가 커진 듯했다.
대학에 가고 살이 빠지자 눈은 더 커졌고, 쌍꺼풀 없이 큰 눈이 매력적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게다가 점점 무쌍 연예인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왠지 유행을 앞서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우 뻑뻑해!"
콘택트렌즈를 10년 이상 끼고 생활하니 눈이 뻑뻑하고 스크래치가 난 모양이었다.
그때 회사에 라식 수술 한 사람들이 있었다. 난 주저 없이 결정했다.
콘택트렌즈를 꼈을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새 세상을 사는 기분, 안구를 갈아 낀 시원하고 맑은 느낌이다!
렌즈를 끼고, 벗고, 뻑뻑해서 피곤한 눈상태가 아니라니, 삶이 질이 상승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 명암이 있는 법.
몇 년이 지나자 시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아무래도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퇴근 후 끼고 산 스마트폰 때문이었으리라.
야간 눈부심증에 차 불빛은 별사탕처럼 터졌고, 운전할 때는 다시 안경을 썼다.
라섹 초기와 달리 건조증도 심해져서 매일 뻑뻑해 아침에 눈 뜨는 게 곤욕이었다.
라섹을 한지 십여 년이 다시 지난 요즘은 시력저하, 건조증에 더하여 눈 가려움증까지 생겼다. 눈물이 자꾸 나서 마르면 눈 끝이 말라 허옇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평상시 안경을 썼을 때와 렌즈를 꼈던 일상과 비교해 보면 편리하긴 하다.
몸도 늙듯이 눈도 늙는다.
노안이 벌써 온 친구들도 있던데 아직 노안은 오지 않았다.
설상가상 마음에 들었던 쌍꺼풀 하지 않은 내 눈의 눈두덩이는 이제 조금씩 쳐지기 시작한다. "쌍꺼풀 없이 눈이 참 크네요"라는 말은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다.
건조증, 난시증상, 빛 번짐, 잦은 눈물,
게다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달고 사느라 더 혹사당하는 눈.
이런 눈으로도 아낌없이 계절을 감상한다.
오늘도 빨갛고 하얗고 노란 꽃들과 푸르름이 가득한 5월의 나무들을 충분히 감상했다.
이렇게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내 고양이 눈 맞춤을 한다.
여전히 살면서 보기 싫은 장면들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고 있다. 꽃밭에 버려진 담배꽁초, 도로에 널브러진 킥보드, 혐오로 가득한 댓글.
하지만 그 모든 걸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엄마가 원했던 '쌍꺼풀의 미'는 없지만,
나는 이 무쌍 눈으로 나를, 그리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무쌍, 통통한 눈두덩이, 뻑뻑해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고. 이젠 눈가주름도 시작된 나의 두 눈. 고맙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