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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명

240328

by 모래


0.

언젠가부터 나는 계속해서 '나'를 항변해야할 것 같은 기분에 빠져 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말이다.


왜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고 싶어지는 것일까. 두 번의 수술로, 내 기억력은 많이 나빠졌다. 내 안의 방어기제 때문인지, 힘들었던 기억들은 유독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장면 사이, 기억나지 않는 회색의 지대들은 계속해서 지어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것은 아마 과거를 통해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거나, 때로는 발명하고 싶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1.

나이가 들면, 이전에 몰랐던 순간들이 눈에 선연해진다. <흰>을 다시 읽었던 순간이 유독 그랬다. 죽은 언니에게 바치는 삶의 하이얀 순간들. 다시 읽었던 <흰>은 현재와 맞닿은 생명의 이미지로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글을 읽고 쓰는 것만이 나를 현재에 잡아두고, 과거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꾸도록 만든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이 감상도, 내가 더 나이가 들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만이 영원한 것처럼 말이다.


-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58p, 파도)


영원한 게 없다는 것은 오히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인생은 풍랑이 이는 파도와도 같다. 이 슬픔이 지나가면, 새로운 감정이 몰아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지만 또다른 슬픔도 함께 찾아오겠지.


- 영원을 우리가 가질 수 없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되었던 시간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93p, 백열전구)


2.

나이가 들어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가끔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대게, 내 몸에 생긴 어떤 흔적 때문이었다. 눈 주위에 생긴 멍이나, 손목에 생긴 찢어진 상처 같은 것들. 한번은, 내 얼굴로 씨디가 날아오는 꿈을 꿨다. 날카로운 씨디는 날아와서 내 살을 날카롭게 찢었다. 나는 학교를 며칠 쉬면서, 찢어진 상처가 아물길 바랬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흉보는 법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법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 상처들이 나는 지독히도 부끄러웠다. 멍이나 상처를 숨기는 법, 적당한 변명으로 학교나 학원을 쉽게 빠지는 법을 배웠다.

이때의 나는 아무 곳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었다고 느꼈다. 나는 중학교를 전학했다. 이번에는 어울릴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친구들이 선택하지 않는 학교를 골라서 갔다. 공부라는 핑계를 대고, 또 어울리지 못했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어딜가든 학교의 중심 무리와는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대체 왜 그러냐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대답할 말을 몰랐다.


3.

보다 못한 아빠가 경찰을 불렀던 적이 있다. 나는 엄마나 아빠가 잡혀갈까봐 무서웠다. 적당한 거짓말과 약간의 진실을 섞어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지독하게 싫어졌다. 무엇보다,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과연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지. 책임이 있다면, 겨우 열다섯이던 내가 어떻게 그 책임을 져야하는지. 경찰이 진짜 우리 집에 왔었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 이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4.

학교를 결석했던 어느 날, 엄마는 내 눈 주위에 생긴 멍을 엄마는 달걀로 매만져 주었던 게 기억난다. 나는 엄마의 무릎을 배고, 태연히 휴대폰을 보았던 것 같다. 웃긴 영상을 보며, 가끔은 아무렇지 않게 웃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엄마만이 내 편이라 느껴졌을까. 지금 와서는, 그게 아무렇지 않아서는 안되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엄마에게 혼나고 나서 엄마가 다시 나를 안아주었을 때만큼 엄마의 사랑이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은 없었다. 조금 크고 나서, 엄마는 더이상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싸우면서 했던 말들을 무마하려는 듯 좋은 말을 해줬다. 너는 무엇이든 잘해낼 것이며, 지금도 잘하고 있으며, 하나뿐인 나의 소중한 딸이라고. 그때 엄마의 말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한동안 나는 말을 믿지 못했다. 사랑과 애정을 고백하는 그런 좋은 말들이 아무런 울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행동과 동떨어진 말, 말을 내뱉는 행위 자체는 어떠한 의미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미숙하고도 아픈 기억들이다.


5.

나름대로, '정상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깨쳤다. 듣고 싶은 진실을 들려주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삼킨다. '나'에 대해 생각할 때 생생히 다가오는 혼란스러움과 부끄러움만은 변함이 없다. 과거의 기억들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가 말하는 나의 본성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딘가 어긋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가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렇지 않아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쉬이 잊히지 않는 말들이 있다.


6.

산길을 걷다가 엄마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나는 아무리해도 과거의 내가 너무도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그렇게 혼자서 동떨어져서 외롭고, 그 외로움을 해결할 방법도 모르고, 탓할 사람도 없다고 느끼면서, 지독히도 혼란스러웠던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고. 그래서 나는 아마 오랫동안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7.

어긋난 채로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을 생각한다. 허리가 굽고, 얼굴은 비스듬히, 다리를 절뚝이면서. 끝끝내 엄마가 우려했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걸어가는 동작 하나하나가 그 몸뚱이에는 벅차보인다.


성인이 되고,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주 다른 사람들, 각자의 문제를 품고도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처럼 잠시 등을 맞대보다 멀어져버리는, 가깝고도 먼 사람들. 대게는 가벼운 이야기를, 가끔은 깊지만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은 일년에 한번쯤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지만 각자만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그 사실이 슬프다. 그 아픔을 묻어두고 약간 결함이 생긴 몸뚱이로도, 다들 어디론가 걸어간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딘가로 다들 걸어가고 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나의 절뚝임은...

내가 유달리 눈물이 많은 이유, 아이들이 짓는 무해한 웃음을,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을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 어떤 사람이든 알고 싶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이유,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모르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이유.


나의 장점도 단점도 다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외롭고 슬픈 순간에도, 절대 죽고 싶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떠한 상처가 나도, 죽을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가장 원망스럽던 순간에도,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의 누군가나 살아있는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는 습관처럼 사랑하고, 정해진 결말처럼 무너지곤 했다.


8.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부모를, 내 가족들을, 내 친구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대로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무엇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고 싶다. 나의 어두운 기억과 외로움과 슬픔까지 모두 안아주고 싶다. 그것들을 직면하고 쓰는 것만이 내가 기억하고,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나는 내가 천천히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 이 순간들을, 다양한 형태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제대로 나이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글이 왜곡된 기억이여도 좋다. 그것들이 나에게는 (그리고 혹시 이 글이 닿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끝끝내 이해되지 않을 때...

그것이 '나'를 계속해서 발명해내고 있는 증거라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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