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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고 불은 불이다

240510

by 모래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그래서 평생 서로 모르는 채로, 완전히 별개의 삶을 살고 싶은 이상한 종류의 욕심. 때론 이기심, 혹은 무관심. 하지만 나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원초적인 필요성에 가깝다. 가까워지든 멀어지든 그것만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남아있는 채로 붉어지고 노래지길. 불의 형태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태워버리는 것만이 불이 가진 미덕.


한순간 희뿌옇게 타고 남아버린 재처럼. 외면하려 했던 것들은 언제나 지름길로 오고야 마는 것인지. 고요히 응시하기만 해도 그것들은 새까만 마음보다 커져서. 이상한 오기로, 어릴 때부터 나는 욕심이 가득한 아이였어! 하고 선언하듯 뱉어버리고는, 아무도 없는 어딘가 한구석에 무릎을 안고 쪼그려 앉으면. 세상은 나 빼고도 잘 흘러가는가, 타인은 나 없이도 잘 살아가는가. 이상할 정도로 외롭기만 했던 깨달음도 인생의 한 부분인 걸 알면서도.


내 글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피 딱 그 정도로, 내가 이 세상에 위치해 있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발화하지 못하고 수그러진 불꽃처럼, 흩어져버린 나의 언어들에게 이제는 안녕을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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