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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았던 이야기

230926

by 모래

비를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우산을 씌워줄 누군가, 울고 있는 나를 안아줄 누군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영영 오지 않았으면 하기도 했다.


끝맺음은 언제나 어렵다. 이번에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실패하는 관계들은 항상 생긴다.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이 가장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어리다.


어젯밤에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내일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내 가장 깊은 마음속을 파헤쳐보면, 나보다 나를 사랑해 달라고 외치는 어린애가 있다. 언제나 어설프기만 한 이 마음이 들키기 싫어 이번에도 도망치는지 모른다.


창문을 열자 한창 비가 내린 후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로 불어닥쳤다. 그 순간, 세상으로부터 내가 부유하는 것처럼 느꼈다면 이상할까.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그 모든 가능성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울어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문득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진다. 언제로 돌아갈지는 세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싸우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았다. 너는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 오기로 말했을 때가 있었다. 늘 모순 덩어리인 나답게, 그래도 이해한다는 대답이 돌아오길 기대했었던 것 같다.


무언가 다른 것에 집중을 하려 책을 읽고 있는데 사랑이야기만 나오면 슬퍼진다. 내 사랑은 이렇게 나약한데 다른 이들의 사랑은 왜 대단하기만 한 건지. 다들 용감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닳아버리는 게 더 무서운 나는 실로 겁쟁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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