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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소금물 같이

241121

by 모래

거울을 통해 바라본, 우는 것조차 포기한 얼굴. 그 얼굴을 가진 그녀가 서있다. 영원이라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서있다. 어른의 외양을 하고는, 아이의 내면을 가지고서는.


영원에, 그리고 또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그것은 있다고. 그녀만을 기다리면서 은밀하게 숨어 있다고. 나를 버렸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는 어머니처럼. 빨간 실로 연결된 두 사람은 윤회를 거듭해도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과 같다. 몇 번을 배신당해도 뒤돌아보게 만드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과도 같은 세계. 세계의 적막이 짓누른다. 누구를? 아마도 어제나 오늘 어머니를 잃었을 그녀를.


그녀는 간지러워 웃는다. 이때의 웃음은 듣기에 거북하고, 웃음이 멈추는 순간에는 벽을 쿵쿵 치는 소리도 들린다. 물컹한 미래와 단단한 과거는 둘 다 움켜쥘 수 없다. 한눈 판다면 그 짧은 사이에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테니. 열심히 쌓은 모래성도 성난 파도 한 번이면 산산이 부서지듯이.


순수함은 새벽의 것, 아침이 되면 금방 사라져 버릴 찰나의 것. 그녀는 그것조차 움켜쥘 수 없다. 내내 울었던 사람에게 새벽은 억지로 쥐어진 전단지와 같은 시간.


남은 것은 부은 눈과 코와 입. 가까스로 그 얼굴이라도 더듬는다. 입술까지 내려왔을 때, 활자를 더듬는 맹인의 그것처럼 필사적인 손짓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들은 생명보다 높은 무언가를 모르는 듯해서 혐오스럽다. 불도 켜지 않고 거울도 보지 않고, 마치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그렇게만 확인받을 수 있는 사람처럼.


언젠가는 소금물에서도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을 거다. 부은 눈 따윈 사치인 그런 세계. 아침이 되면 냉동실에 얼렸던 숟가락을 꺼내어 눈두덩이에 문지르곤 했겠지.


세계와 소금물은 차가운데, 그녀의 눈물은 너무도 뜨거워서, 이 사실을 아는 것만이 그녀가 느끼는 유일한 고통이기에. 영원은 이 고통에 있지 않나. 여기에 없다면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고통만이 실재한다, 고통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부재한다, 고 소리 내어 외친다. 창문 밖에서는 이것을 포함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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