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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Dec 23. 2022

목성, 토성, 북두칠성 땄던 이야기

@ 온타리오 주 Dark Sky

토론토 중심에서 북쪽으로 차로 1시간 거리에 오래된 천문대가 있다.


데이비드 던랩 천문대 

David Dunlap Observatory


온타리오주 리치몬드 힐에 있는 천문대로 캐나다 국립사적지. 1935년 설립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컸고 여전히 캐나다에서 가장 큰 반사경 망원경이 있다. 이곳에서 백조자리 X-1이 블랙홀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밝혔다. (위키피디아 요약)


고즈넉한 산책로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대형 천체 망원경이 있는 돔 건물과 소형 망원경 3개를 갖춘 관리건물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토론토 대학 소유였지만 지금은 시에서 운영하면서 정기적으로 일반인 대상 강연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Astronomy Family Nights>에 참여해 봤다. 이 90분짜리 프로그램은 세 파트, 즉, 우주 탐사에 대한 강연, 천체 망원경을 통한 행성 관측, Stellarium(컴퓨터용 3D 천문관)을 통한 별자리 보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달 로켓 발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미션에 대한 강연을 들은 후 행성 관측을 위해 흰색 돔 건물로 이동했다. 우리가 간 9월 말에는 목성과 토성이 관측 가능하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크다는 망원경의 대물렌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회전 돔의 일부가 열려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이 칠흑같이 깜깜했다. 수십 명 되는 남녀노소 참석자들 중 키가 작은 순서대로 관측하기로 했다. 점안렌즈가 바닥으로부터 2m 정도 떨어져 설치되어 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관측을 끝내고 내려오는 사람마다 탄성이 깃든 얼굴이다. 내 차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진행자가 같이 올라와주는데도 조금 무서웠다. 겨우 올라가 조심스레 렌즈에 눈을 대어 보니 진짜 목성이 있었다. 마치 초콜릿과 크림이 같이 녹고 있는 듯한 표면이 예쁘다. 이렇게 렌즈 안으로 쏙 들어오니 귀여운 구슬 같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잔디망원경도 쓸 수 있다고 했다. 이걸로 볼 별은 토성. 이 별은 고리가 선명해서 더 예쁠 거라고 남편이 귀띔해 줬다. 렌즈에 눈을 대어 보니 토성은 과연 고리 덕분에 더 신비롭다. 오래된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에서 토성은 저 고리를 흔들어 훌라후프를 했었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과 토성이지만 렌즈에 반사된 모습은 너무 작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구보다 천배 이상 크고, 몇억만 km 떨어져 있고, 수십억 년 전에 생긴 별 이 경통과 렌즈를 통해 빛을 따라 내 눈에 전달된다고 나를 속이면서, 사실은 그저 사람들이 눈을 댈 원통 끝에 작은 구슬 사진들을 오려 붙인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실내 돔에서 목성을, 잔디밭에서 토성을 봤다
NASA에서 찍은 목성과 토성


그다음 순서는 Stellarium이라는 천문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서 우주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다. 대형 스크린을 연결하니 진짜 밤하늘을 보는 느낌이었다.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진행자와 참석자들. 광년(light year)의 개념에서 출발해 주로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별들 사이의 거리며 나이 등을 줄줄 꿰는 남녀노소를 보면서 이 세상엔 덕후들이 많구나, 새삼 느꼈다. 영어로 배우는 지구과학이라 온전한 지적 즐거움을 느끼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진행자가 마우스를 움직여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로 급속 Zoom-in 하는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상상할 수도 없는 우주의 광대함과 영겁에 비해 그저 티끌, 찰나에 지나지 않는 내 존재가 단호하게 일깨워진다. 이럴 때면 내 일상의 근심, 걱정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은 캐나다는 인공적인 빛 공해를 차단할 수 있는 지역이 있다. 국립공원이나 천문대 근처의 이런 곳들을 국제 밤하늘 협회(International Dark Sky Association)와 왕립 천문학회(Roya Astronomical Society of Canada)가 밤하늘 보호구역(Dark Sky Preserves)으로 지정하고 정부 차원에서 관리한다.



토랜스 배런즈 다크 스카이 보호구역

Torrance Barrens Dark-Sky Preserve


온타리오 교외의 불모지로 알려진 무스코카의 토랜스 지역은 1999년 캐나다 왕립천문학회에 의해 캐나다 최초의 '밤하늘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단단하고 평평한 암석의 독특한 풍경으로 별 관측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캐나다관광청 블로그)

보호구역 주차장에 설치된 표지판


토론토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무스코카(Muskoka). 이곳에서는 날씨 운이 좋으면 은하수와 오로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없는 운도 만들어보려고 날씨앱을 여러 번 체크해서 방문했다. 이런 곳도 찾아주는 구글맵은 언제나 경탄스럽다. 저녁 7시 주차장은 이미 다른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9월의 해는 짧아 곧 깜깜해졌다. 다들 같은 목적으로 온 방문객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휴대폰이나 플래시를 켜서 인공적인 빛을 만들어내는 것에 극도로 조심했다. 공터로 이동하기 위해 수풀 사이를 헤치고 잠시 걸어야 할 때만 휴대폰 플래시로 길을 밝혔다. 공터에 들어서자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360도 밤하늘이 펼쳐졌다. 이렇게 하늘만 있는 곳으로 왔다. 평생 본 별들보다 더 많은 별을 본 것 같다.


하지만 날씨를 여러 번 체크하고 온 것이 무색하게 보름달이 너무 환해서 온전한 Dark Sky가 아니었다. 캐나다의 달은 한국의 달보다 더 크고 밝은 것 같다. 보름날 동네를 걸으면 집 위로 낮게 뜬 달이 너무 커서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 것과 관련 있을까,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일까. 추수감사절이었던 이 날도 엄청 크고 밝은 보름달이 떴다. 오로라는 애초에 가당치 않았고, 살짝 기대했던 은하수도 물 건너간 듯하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과학덕후인 남편과 첫째는 기어코 북두칠성을 찾아냈다. 첫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정말 7개의 별들이 북두칠성의 영어식 이름 Big Dipper에 걸맞게 국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근래 아이들이 오락게임을 좋아해서 너무 자극적인 즐거움에만 익숙해진 걸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깜깜한 밤하늘에서도 재미를 찾는 모습이 예뻤다.

북두칠성을 찾아보세요




과학자들은 너무 멋있다. 압도적인 지능. 진리 추구. 논쟁과 대립... 다음 생이 있다면 과학자로 살아보고 싶다. 안타깝지만 현생의 나는 그 쪽 재능이 전혀 없고 취미로 보는 SF 영화도 내용을 소화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 영화는 원작을 읽고 블루레이까지 샀던 영화, 1997년 <콘택트>이다. 주인공인 과학자 엘리(조디 포스터)가 외계인을 찾기 위해 우주선을 탔다가 돌아오는 내용이다. 우주 장면이나 어려운 과학 이론 설명 없이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영화 내내 칼 세이건의 통찰력 있는 대사들이 하늘의 별처럼 쏟아지는 명대사 맛집이다. 아마 제일 유명한 건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답하는 이 대사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주는 그 어떤 것보다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그래서 만약 이 넓은 공간에 우리뿐이라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죠.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좋았던 점은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면서도 그 둘이 본질적으로 진리 추구하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메시지였다. 청문회에서 무신론자인 엘리의 발언은 마치 신앙 간증 같다.

저는 경험했습니다. 증거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제가 우주에서 본 것은 우리가 얼마나 하찮고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드물고 소중한 존재인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본 것은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해있고 우리 중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걸 모두와 나누는 거예요.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가 그 경외심과 겸허함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번에 다시 떠올린 부분은 엘리가 우주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뱉은 대사다. 그녀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인류의 대표가 되어 우주로 향했으나, 과학자로서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탄식한다. 이 때의 조디 포스터의 연기는 완벽하다.

너무 아름다워... 한 편의 시 같아... 여기는 과학자가 아니라 시인이 와야 했어!"


칠흑 같기만 한 밤하늘은 조금 더 수고해서 보니 낭만과 경이로움으로 차 있었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굳이 25년 전 영화까지 끌어오는 것도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시인이 아니어도, 내 인생에 영화와 소설이 있어 다행이다.


학교 기부행사 때 구입한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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