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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Dec 30. 2022

내가 배우는 불교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박완서)


캐나다 생활 초기, 여러 일을 맡겼던 업체의 실수를 알게 되었다. 나는 계획에 없던 비용을 쓰게 되었다. 진작에 모든 것을 직접 챙기지 않았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정착과정도 험난했다. 캐나다인들이 친절하다고 했나. 물론 그들은 늘 웃고, 말로 하는 감사와 사과에 능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연이은 거절, 보류, 무응답, 말바꿈을 맞닥뜨리며 무척 실망했다. 나중에야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 당시 내가 접한 캐나다인들은 그랬다.


그 겨울은 눈이 무척 많이 왔다. 최근 10년 중 가장 많은 눈이 오는 거라고 했다. 주택 생활을 처음 해보는 아이들은 뒷마당에 쌓인 보드라운 눈 위에서 뒹굴며 겨울을 온전히 즐겼다. 집 밖으로 나가면 온 세상이 하얘서 눈이 부셨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비호의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기분이 좋다가도 억울함으로 눈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다른 캐나다 살이 글에는 행복한 경험담 뿐이던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웠다.



복잡한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딱 1권 갖고 온 내 책이 있었다. 직장 동료가 선물로 준 박완서 작가의 유작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그냥 표지가 예뻐서 선택된 이 책이 내 타국 생활에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어줬는지. 책이 끝나는 게 아쉬워서 아껴가며 읽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작가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 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 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그 수녀님은 아직 서원도 받기 전인 예비수녀님이었다. 그러나 학덕 높은 현자보다도,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일컬어지는 성직자보다도 더 깊은 가르침을 나에게 주었다...(중략)...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나에게 하는 얘기였다. 고작 그 정도 갖고 그렇게 힘들어하냐. 불행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거야.



너무 괴로울 때는 법륜스님 유튜브를 들었다. 거기에는 괴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는 것은 야비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코로나로 자식을 잃은 사람, 아내가 자살한 남편 등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며 함께 울었다.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따로 공부도 해보고 법륜스님의 마음학교를 등록해서 기초반도 수료했다. 법륜스님은 끊임없이 말했다. 

원하는 걸 다 이룰 수도 없고, 다 이룬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불교의 교리는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에 집중되어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내 삶에서 힘든 일을 계속 맞닥뜨릴텐데 그 때마다 이겨낼 정신력을 기르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았. 불교 책을 구할 수 없어서 나무위키를 보고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필사했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명색과 유식의 가르침이다. 

명색(名色) - 어떤 물질에 우리가 의미(또는 이름)를 부여하면 그때부터 그것에 대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 행복에 의미를 부여하면 행복해지고, 불행에 의미를 부여하면 불행해진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괴로울 때, 스스로가 '불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식(唯識) - 오직 생각의 문제라는 것.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체유심조를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눈, 코, 귀, 입, 피부 등을 통해 시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들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유식'의 핵심이다.


이 개념을 내 상황에 대입하면서 나만의 표현으로 바꿔 지속적으로 뇌에 주입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중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Cham Shan Temple이라는 사찰이 있다. 올해 4월에 여기 기도하러 처음 갔었는데, 오늘은 캐나다 생활 만 1년 기념으로 다시 다녀왔다.




처마가족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붉은 등이 가득 달려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불교사원이지만 빨강, 초록으로 꾸며놓으니 크리스마스 스피릿이 느껴진다. 중국 불상들은 거의 다 황금색이고 팔이 여러 개이기도 하고 어쩐지 좀 더 요란스러운 느낌이다. 그래도 사찰 특유의 세상과 동떨어진 초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신자가 아닌 사람도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한 곳인 것 같다. 여기저기 기부함과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요즘 종교는 다 기복신앙이라며 남편이 혀를 끌끌 찼다. 나도 끄덕이며 한 불상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내년에도 마음이 괴로울 때는 현상의 다른 면을 보는 용기를 달라고.

 불행보다 행복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혜를 달라고.


지나고 보니 올해 초 가장 힘들 때도 사실은 온 우주가 마음을 모아 나를 위로해준 것 같다. 내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 한 남편. 영어가 부족한 나의 입과 귀가 되어 물심양면 도와준 시누이. 걱정 끼치지 않고 학교에 잘 다녀준 아이들.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내 어깨에 짐을 얹었다면 나는 무너져서 한국행 짐을 쌌을 것이다. 가족들 뿐만이 아니다. 동료가 준 책 한 권. ESL 수업 과제로 받은 행복에 대한 아티클. 법륜스님 채널.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또 지나고 보니 사실 별 일도 아니었다. 무시하기엔 큰 돈이긴 했지만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미 가진 것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이곳에 온 지 1년이 지나며 나는 많이 단단해졌다.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부자가 되거나 권세를 잡거나 전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개인의 특별한 능력이듯이 행복해지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성공한 소수의 천부적 재능과는 달리 우리 인간 모두의 보편적인 능력이다. 창조주는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고 창조하셨고, 행복해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춰주셨다.

나는 아마도 이 보편적인 능력을 발현시키기 위해 수업료를 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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