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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Jan 17. 2023

캐나다 한식 투어

여행은 먹는 게 반

캐나다 여행 중에도 하루 한 끼는 한국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20년 전 미국 배낭여행 때 햄버거만 먹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내 주머니 사정이 좋아졌구나, 한국 식당이 많아졌구나, 싶다. 미지근하고 기름졌던 내 위를 뜨겁고 개운하게 풀어 준 곳들을 추억해 보자.




한국식 중화요리, 래미향 (Edmonton)

어떤 유튜브 먹방에서 눈여겨봤던 곳이다. "아, 여러분 여기 짬뽕은 꼭 매운맛으로 드셔보셔야 합니다." 이걸 먹으려고 캘거리에서 2시간 운전해서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늘 짬뽕에 굶주려 있기 때문에 에드먼턴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이곳을 찾아갔다. 꽃게, 오징어, 새우가 짬뽕 그릇에 아낌없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진한 국물은 따로 포장해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감히 캐나다 최고의 짬뽕이라 말하고 싶다. 깐풍기도 양이 정말 많았다. 사장님의 넉넉한 장사 철학이 느껴지는 곳이다.



국밥집, 뚝배기 (Edmonton)

남편은 돼지국밥, 나는 나의 소울푸드 순대국밥, 아이들은 남산돈가스와 콘치즈를 시켰다. 뽀얀 국물에 부추를 얹은 국밥은 잡내가 하나도 없고 깔끔하. 부산 사람도 이건 부산의 맛이라 인정한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었다는 West Edmonton Mall에 있다. 대형몰에 있는 식당 특유의 분위기에 코엑스 같은 공기가 흘렀다. 한국처럼 테이블에 호출 버튼도 있고 바퀴 달린 서빙 카트까지 서비스가 모두 빠르다. 진정한 한국인의 정신을 여기서 만났다.



다양한 한식, 김치 하우스 (Jasper)

이곳은 외국 여행자들로 늘 만석이었다. 옆 테이블을 흘끗 보니 백인 가족들이 비빔밥과 BBQ 덮밥을 맛있게 먹고 있다. 젓가락질은 좀 서툴러 보인다.

주문하고 음식 나오는데 엄청 기다려야 했다. 두세명 밖에 없는 직원들이 배고픈 여행자들을 상대하느라 너무 분주해보인다. 여기도 그렇지만 앨버타든 온타리오든 외식업체 밖에는 직원을 구하는 "HIRING" 싸인이 늘 붙어있다. 22년 캐나다 인력난은 역대 최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건비도 오르고 물가도 올랐다. 그래도 덕분에 이민을 더 받겠다고 하니 신청자들에게는 청신호라고 할까. 나쁜 게 다 나쁜 게 아니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음식들이 꽤 현지화된 맛이지만 얼큰함은 놓치지 않았다. 이 맛에 기다림을 각오하고 이틀 연속으로 갔던 곳.



Korean Street Food, 한끼 (Banff)

밴프는 유명 관광지답게 식당이 다 비쌌다. 여행 블로그에 꼭 등장하는 퐁듀 집이랑 서울옥에 갔다가 다음날 굶을 뻔했다. 다행히 다운타운에 왔다 갔다 하며 한끼 픽업하기 좋은 이곳이 있어 돈도 시간도 꽤 절약했다.

이름처럼 한 끼로 적당한 분량을 먹기 좋게 포장해 준다. 치킨이나 컵밥을 봉지째 들고 근처 Bow River Trail이나 Two Jack Lake에 가서 테이블에 올리면 더할 게 없는 피크닉 상차림이다. Korean BBQ나 닭고기 컵밥은 호불호가 없을 글로벌한 맛이고, 설탕이 소복한 핫도그도 역시 맛있었다.



한식과 일식, 다모아 스시 (Drumheller)

중생대 어디쯤인 거 같은 이 황무지, Badlands의 한복판에서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동 아닐까! 주인아주머니는 한국 가족이 반가우셨는지 지도까지 펼쳐 들고 우리에게 여기저기 가볼 곳을 찜해주셨다.

짬뽕이 맛있다고 구글 리뷰가 알려준 곳이었다. 보통 짬뽕 맛만 확실하면 다른 메뉴는 안봐도 괜찮은 편. 우리가 시킨 모든 음식이 간이 적당하고 참 정갈했다. 채소가 듬뿍 들어있어서 여행 중 부족했던 야채 섭취에도 참 좋았다.



Korean Street Food, 강남 코리아 (Muskoka)

추수감사절에 단풍 구경을 하려고 헌츠빌에 갔다가 들렀다. 가게를 들어가니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는 싸이와 백댄서들의 사진이 벽 하나를 차지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화장실에도 한국 아이돌 사진들로 가득 차 있다. 묵은 얘기지만 한류 열풍으로 K-food가 인기이긴 한가보다. 한식진흥원 조사에서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 치킨이라고 한다.

여기 사장님은 한국에 살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끔 퇴근길에 사온 프라이드 치킨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캐나다에 와서도 늘 치킨집을 여는 꿈을 꿨는데, 어느 날 헌츠빌의 팀 홀튼 건물이 비게 되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온타리오 주지사도 왔다 갔다고 하니 성공하신 듯하다.

우리도 이곳의 시그니처, 치킨을 맛봤다. 아주 바삭바삭 하고 간이 잘 되어있다. 주먹만한 크기에 짜고 기름이 흐르는 파파이스 스타일 치킨과는 확실히 다르다. 감자탕도 시켰는데, 고기가 아주 부드럽게 잘 익혀졌다.

그런데 감자탕이 플라스틱 그릇에 나와서 아쉬웠다. 아직 성장기 아이들을 키우는 나는 플라스틱 그릇에 뜨거운 음식이 담겨 나오면 경기를 일으킨다. 캐나다는 넓은 땅을 믿고 일회용품을 심각하게 남용하는 것 같다. 꼭 여기가 아니라도 일회용품으로 서빙하는 집을 종종 봤다. 일회용 그릇과 수저를 쓰면 환경에도, 건강에도 안 좋지만 무엇보다 맛이 떨어진다. 음식을 입에 넣을 때 종이 맛이 날 때도 있다. 넓은 땅이 있어 쓰레기에 관대한 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인력난도 원인인 거 같으니 불평은 여기까지.



일본식 돈가스, 돈돈야 (Montreal)

몬트리올 미술관 근처 숨겨진 작은 식당이다. 소담하고 복작복작한 작은 홀 안, 오픈형 주방에서는 요리사가 열심히 음식을 하고 있고, 바로 앞 테이블에는 우버이츠 기사가 배달할 음식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작다. 홀도 작고 우리가 앉은 네 명의 테이블도 작다. 음식 양도 작다. 돈가스, 우동, 팝치킨이 모두 맛있었다. 남산돈가스 아니고 일본식 돈가스 스타일이다. 진짜 맛있었는데 가격 대비 양이 너무 적었다. 비싼 몬트리올 시내에 있어 이해는 된다.



철판 BBQ와 다양한 한식, 만수 BBQ (Dieppe)

결국은 이곳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니, 여기서 먹기 위해 캐나다에 온 건지도 모른다.

외국의 한식당은 한국 본토의 맛과 현지인들의 입맛 사이에서 지혜로운 줄타기를 해야 할 것이다. 자칫 본토의 맛을 놓치면, "이게 무슨 한식이냐!" 며 한국계 손님들에게 악플이 달리기 십상이고(내가 많이 욕해봐서 안다), 그러다 너무 현지인 입맛을 못 맞추면 수지도 못 맞출 것이다. 이 아슬한 곡예를 성공하면서 오히려 본토보다 고급스런 맛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만수 BBQ다.

주문한 음식이 모두 찐이었다. 특히 육개장은 입에서 녹는 고기와, 진하고 기분 좋은 여운는 국물, 알맞게 탱글한 당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참깨 맛이 나는 특제 비빔밥 소스는 맵지 않고 개성 있었으며, 아보카도와 파프리카가 비빔밥에 잘 어울린다는 건 귀한 요리팁이었다. 애들 입맛 저격하는 BBQ와 초밥의 신선함은 두 말 하면 다 뺏긴다.

만수 BBQ는 뉴브런즈윅 주의 디에프(Dieppe)와 멍턴(Moncton), 두 군데에 있는데, 디에프가 본점이고 멍턴이 2호점이라고 한다. 본점의 김만수 사장님은 서울에서 김치 장사를 했고, 마장동에서 고기를 배운 분이라 한다.

나는 PEI와 노바스코샤로 가는 여행길에 이곳을 세 번 들른 셈이다. 처음은 디에프의 본점, 두 번째는 몽튼의 2호점, 그리고 세 번째는 2호점에서 도시락을 싼 것이다. 본점에서는 현지인들로 만석이라 잠시 기다렸다가 테이블에 앉았다. 한국 손님이 왔다는 걸 안 김만수 사장님은 계속 김치, 만두 같은 걸 우리에게만 특별히 서비스로 주셨다. 정말 감동이었다. 2호점에 갔을 때는 거기 사장님께 본점만큼이나 맛있다고 했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본점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영광입니다"라는 겸손한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과연 맛도 서비스도 마음도 최고인, 뉴브런즈윅의 자랑, 만수 BBQ다.


추억해 보았다.


PS. 토론토, 밴쿠버는 한식당 천국이니 생략하기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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