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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Dec 05. 2022

토론토의 밤을 수놓는 조성진의 선율

@ The Royal Conservatory of Music


노화의 선물, 시누이의 선물


어릴 때부터 음감은 있는 편이라 자부해 왔지만 음질에는 둔한 편이었다(일명 '막귀').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음질에도 예민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요즘은 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웬만하면 휴대폰 스피커 대신  블루투스를 통해 다른 스피커로 쓴다. 이런 변화의 원인을 나름대로 짐작해 보건데, 시력이 나쁜 개들이 후각은 뛰어난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서 내 시력과 청력은 떨어지고 있지만, 대신 음질을 느끼는 능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미각도 같이 발달 중이다. 말이 돼, 안 돼). 어찌 보면 '황금귀'는 노화의 선물인 것도 같다.


캐나다에 온 지 만 두 달, 이곳에서 해가 가장 짧은 1, 2월을 보냈을 때였다. 오후 5시만 되어도 하늘이 깜깜해지는 환경에 여전히 적응이 안됐다. 시티패스로 웬만한 곳은 다 돌아다녔는데도 집에만 오면 갑갑하고 우울해졌다. 오만상으로 얼굴이 그늘진 나를 시누이는 딱하게 여겼고,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캐나다에 먼저 20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괜히 미안해 했다. 혼자 차 운전석에 앉아 엉엉 울었던 어느 날 밤은 시누이가 나를 자기 집에 데려가 재우고 다음 날 브런치를 사줬다. 조성진 콘서트 티켓도 시누이의 선물이었다. 나같은 사람은 고도의 음향기술이 집적된 콘서트홀의 효용이 크지 않다. 그녀는 날때부터 황금귀인데 자기가 가려고 몇 달 전 예매해 둔 공연을 기어코 양보한 것이다.



The Royal Conservatory of Music


왕립음악원이라고도 번역되는 이곳은 음악학교 겸 공연장이다. 다이애나 크롤, 사라 맥라클란, 글렌 굴드, 오스카 피터슨 등 캐나다의 유명한 음악인들이 여기서 공부했고, 매년 1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Koerner Hall의 2층 발코니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의자 바로 앞에는 허리보다 낮은 펜스만 있어 자칫 중심을 못 잡으면 1층 무대 중앙으로 떨어질 것처럼 무서웠다. 나의 요상한 흥분감은 고소 공포와 공연에 대한 기대가 혼합된 것이었다. 콘서트홀의 사방은 목재가 겹겹이 리본 모양으로 감싸고 있고 천정에는 보트나 활을 연상시키는 구조물들이 캐노피처럼 떠 있었다. 이런 분위기 너무 좋다. 따뜻한 조명을 타고 소리가 향기처럼 전해질 것 같았다.


오늘 토론토 무대는 조성진의 북미 투어 첫 일정이다. 아직 팬데믹이 한창이라 많은 콘서트홀들이 비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번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이라고 했다. 오늘 연주할 곡은 야나체크, 라벨, 쇼팽인데, 앞의 두 작곡가는 조금 생소해서 시작부터 걱정이 됐다.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곡은 아무리 갓성진의 연주라도 즐기기가 어려웠고, 미안하지만 이 곡을 유튜브로 틀었더라면 끝까지 못 들었을 것이다. 선택권이 많은 막귀에게 직관의 가치는 '집중해야 할 상황'에 놓이는 것 아닐까? 반면 후반부의 쇼팽 스케르초는 가슴이 저릴 만큼 좋았다. 가장 유명한 스케르초 2번은 시작부터 클라이맥스처럼 휘몰아치며, 고음과 저음이 대비되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10초만 듣다 여차하면 다음 곡 넘기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히 매력 만점이다. 거기다 조성진의 연주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거침 없으면서도 섬세하고 신중하다. 건반 위로 구슬이 떨어지듯 톡톡톡.


조성진이 연주 전후로 인사할 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이 때 내 얼굴을 사진 찍었다면 눈동자에 하트가 찍혔을 것이다. 이런 독주회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곡을 소화하는 음악성뿐만 아니라 상상 못 할 체력이 요구될 텐데, 손에 땀은 얼마나 날 것이며 허리는 얼마나 아플 것인가. 하늘이 준 재능이 있어도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야만 이런 무대가 탄생하는 거겠지.

Koerner Hall의 갓성진

 


젊은 거장에 대해


엄마가 되고 나니,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도 괜히 '엄마의 눈'으로 보게 된다. 나는 관심이 가는 능력자가 생기면 위인전을 읽듯이 나무위키에서 그들의 어린 시절을 찾아보는 편이다. 그들은 어떤 아이였으며, 어떤 약점이 있었을까. 어떻게 극복했을까.


조성진은 5살 때까지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고 한다. 6살에 친구를 따라 학원에 가면서 피아노를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흔한 위인의 성공스토리이지만,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한국의 많은 아이들이 5살에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친구들이 외국어를 접하는 나이에 한국어도 제대로 못했다면 그 부모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의 육아와 교육이란 '남들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천재 피아니스트 곁에는 비범한 부모가 있었다. 첫째가 걸음마가 좀 늦다고 엄청 가슴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별 것 아닌 것에 조바심 내는 내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그때까지 어떻게 참으셨던 거예요?" 그의 부모님 손을 부여잡고 비결을 물어보고 싶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인터뷰에서 조성진의 소감은 단순해서 더 인상적이었다. "더 이상 콩쿠르 준비를 해도 되지 않아서 기쁘고 연주 기회가 많이 생겨서 좋아요."




세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젊은 거장의 연주에 오롯이 집중하며 그가 걸어온 길을 내 맘대로 상상해 보며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우울했던 겨울밤에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준 시누이도 늘 고맙게 기억할 것이다.

The Royal Conserv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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