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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Dec 08. 2023

당일치기 바다여행

미국에서 1년 살기

집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머틀비치에 있는 뷔페에서 점심 먹고 해변에서 좀 놀다 돌아오는 오늘의 목표!

한국으로 치면 속초 당일치기 여행쯤 될까?

무한리필되는 점심을 위해 아주 가볍게 아침을 먹고 출발하니  12시 가장 뙤약볕이 내리쬘 때 머틀비치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건 좋았지만 해변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예쁘지 않았다.

금모래빛의 고운 모래사장이라기보다는 어두운 빛의 진흙과 모래가 날씨가 맑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칙칙해 보였다.

흠, 우리가 포인트를 잘못 잡은 건가?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이라기보단 그냥 동네 주민들이 놀러 나와 있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잘못 온 듯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점심 먹고 놀 거야. 옷 젖지 않게 조심해~"

내 말이 들리기는 하는지, 아이들은 맨손으로 모래를 파기 시작했고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깔깔대는 소리가 멀찌감치 모래사장에 앉아있던 우리에게까지 들렸다.



아이들은 밥이고 뭐고 바닷가를 떠날 생각이 없었지만, 애초에 우리의 목적이었던 해산물 뷔페의 오픈시간에 맞추기 위해 모래를 털어내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바닷가 주변을 둘러보니 휴양지다운 소소한 액티비티들이나 체험관들이 많았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것 같은데, 머틀비치가 원래 그렇게 예쁜 해변이 아닌가?

어차피 긴 해안선을 따라 전부 해수욕을 할 수 있을 테니, 점심식사 후엔 해변을 따라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2시였던 오픈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식당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엔 차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정작 식당 앞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2시 오픈인데 왜 차들만 이렇게 많고 사람은 아무도 없지?'

문을 열고 나가니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훅 느껴졌다.

다시 차에 들어가서 기다릴까? 하고 있는데, 주차돼 있던 차들의 문이 하나 둘 열리며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 다 비슷한 생각이었구나.'

한낮의 열기가 너무 강해서 일찍 도착한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눈치게임을 하듯 동태를 살피던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텅 비어있던 식당 앞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로 붐볐고 우리도 서둘러 줄을 섰지만 벌써 50명도 넘는 사람들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설마...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정확히 오픈시간에 입장을 시작한 사람들은 순서대로 자리에 안내되었다.

자리로 안내해 주는 직원을 따라가며 둘러보니 음식의 가짓수가 특별히 많거나 규모가 그렇게 큰 뷔페는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의 목적이었던 다양한 해산물들이 그득하게 쌓여있는 걸 보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금방 쪄낸 게 들이 잔뜩 쌓여 있어 그 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있었고, 한동안 먹지 못한 새우나 조개들도 눈에 띄었다.

아쉬웠던 건 생선들은 전부 굽거나 쪄서 소스에 범벅이 된 것들 뿐이었고 신선한 회를 찾아볼 순 없었다.

'미국 사람들은 회 안 먹나... 바닷가에서조차 회를 안 팔면 어쩌자는 거야.'



해산물 뷔페라고 하기엔 많이 아쉬웠지만 그것도 잠시, 자리에 앉자마자 사용인원을 확인받고는 바로 일어나서 음식을 가지러 갔다.

하루 세끼, 집밥의 무한반복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 얼마만의 해산물요리인가?

집 근처 대부분의 마트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을 보기가 힘들다.

수요가 없어서 판매를 안 하는 건지, 내륙지방이라 공급이 어려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쉽게 구입하던 신선한 해산물을 사기 위해선 중국계 아시안마트에나 가야 가능했다.

다 맛있어 보여서 이것저것 접시에 가득 담아 온 나와는 달리 해산물을 너무나 좋아하는 세 사람은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찜을 접시에 한가득 담아왔다.

"엄마, 이거 다 먹고 또 먹어도 돼요?"

"응, 여기 뷔페니까. 먹고 싶은 만큼 다 먹어."

"그럼 난 백 접시 먹어야지."

첫째 아이는 말 그대로 무한리필하며 테이블 가운데에 게껍데기를 쌓아갔다.

"엄마, 근데 여긴 왜 다리만 있어요? 내장에 찍어 먹어야 더 맛있는데. 몸통은 안 줘요."

그러고 보니 게찜 코너에는 길쭉한 다리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한쪽에서 게를 다듬고 있는 직원을 보니 몸통에서 다리만 떼어낸 후 게딱지는 전부 버리고 있었다.

쓰레기 취급받는 내장을 달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게딱지에 비벼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참 안타까웠다.



너무 오랜만의 만찬이라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 가까이 지났다.

뷔페 최장 기록을 세웠다며 뿌듯한 마음으로 일어섰는데, 우리와 같이 입장한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은 여전히 식사 중이었다.

정말 위대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갈 셈인가?


식당을 나와서 구글지도를 보며 해변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올라가다가 괜찮아 보이는 해변을 찾았다.

여기도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모래가 좀 더 곱고 부드러워 보였다.

공사 중인 콘도의 주차장이라 주차도 무료로 할 수 있었고, 자그마한 주차장 바로 옆엔 해변으로 이어진 길이 나 있어서 이동하기에도 편할 것 같았다.

허름하지만 작은 샤워실과 화장실도 있어서 가볍게 몇 시간 놀다 가기엔 이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서둘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놀 준비를 마쳤다.

모래놀이를 위해서 집에서 챙겨 온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들을 하나씩 들고는 곧장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천막을 챙겨 뒤따라 가 자리를 펴려는데 해변에는 천막설치가 금지되어 있었다.

하루종일 땡볕에 앉아있어야 할 것에 대비해 중고시장에서 일부러 튼튼하고 큼직한 걸로 골랐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작은 파라솔을 하나씩 세워놓고 주변에 둘러앉아 있었다.

햇볕을 피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고 오히려 파라솔 그늘을 피해 햇볕을 쬐며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래시가드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남자들은 수영팬티만, 그리고 여자들은 거의 비키니 차림이었다.

나이나 체형에 관계없이 최대한 몸을 드러내고 피부가 햇볕에 그을려 빨간대도 무심하게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겼다.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 사람은 우리 애들밖에 없었다.

뒷목까지 가려주는 챙모자를 쓰고 얼굴엔 하얗게 선크림까지 꼼꼼하게 바른 모습이 정말 튀어 보였다.

일부러 노란색으로 산 모자덕에 더욱더 눈에 잘 띄었다.

새카만 골프우산 아래 나란히 앉아 타올로 다리까지 덮고 있는 우리도 눈에 띄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괜히 신경이 쓰여 자꾸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긴, 놀러 나왔으면 햇볕도 좀 쬐고 그을려야지.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 건 아니지.'

과감하게 우산을 접고 뜨겁게 달궈진 모래사장 위에 드러누웠다.

여전히 쨍한 햇볕에 눈이 부셨지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자니 이제야 진정으로 해변을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왠지 얼굴에 기미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슬그머니 우산을 다시 펴고 그늘로 들어갔다.

역시 우리에겐 그늘이 더 익숙하고 편했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건 연습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조금만 남들과 달라도 눈치를 보고 '내가 이상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너무 싫으면서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래시가드를 입던 비키니를 입던 뭐가 그렇게 중요해?

우린 여기에 놀러 왔고, 다른 사람들도 놀러 왔어.

우린 햇볕에 타서 피부에 화상을 입는 게 싫고 그래서 이렇게 가리는 게 좋아.

저 사람들을 언제 또 만나겠어.

저들이 뭐라 하든 전혀 상관없고, 어쩌면 저 사람들은 우리가 안중에 없을지도 몰라.

신경 좀 그만 써!



재활용 플라스틱 두부각과 샐러드통 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나게 땅을 파고 성을 쌓기를 반복했다.

일부러 바다 가까이 지어놓고 결국 성들이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려 무너지면 그 자리에 다시 쌓아 올렸다.

아예 갯벌에 철퍼덕 주저앉아 계속 땅만 파면서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연신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점점 현실감이 사라졌다.

배는 부르고 모래사장은 따끈따끈하고 한결 누그러진 햇살아래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잠이 쏟아졌다.

어느 정도 놀았으니 이제 집에 가면 좋겠는데...



좀 있으면 해도 질 것 같고 슬슬 집에 가야 하는데  아이들은 오늘도 역시 도통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조만간 꼭 또 바다에 가기로 약속하고 슬슬 정리를 하는데, 낮에도 음침해 보였던 샤워실은 저녁이 되자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결국 샤워는 집에 가서 하기로 하고 야외에 있는 샤워기에서 겉에 뭍은 진흙만 대충 닦아 낸 후, 옷 사이사이에 모래가 가득한 채 아이들은 그대로 차에 올랐다.

집에 돌아간 후 차 안에 떨어진 모래들을 치울 생각에 남편은 꽤나 심란해 보였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온몸에 달라붙은 모래들이 없어질 때까지 씻고 또 씻었고, 남편과 나는 차 안의 모래들을 털어내느라 애썼다.

이렇게 우리는 왕복 650km의 바다 소풍을 무사히 마쳤다.

기대했던 만큼의 예쁜 해변이 아니라 처음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오랜만에 맛본 해산물, 모래놀이, 파도, 휴식으로 가득했던 그래서 더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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