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락 Dec 14. 2023

미국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 첫 번째 이야기

미국에서 1년 살기

"너희 Raleigh에 왔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미국 공항 도착사진에 MS언니의 댓글이 달렸다.

MS언니는 나의 첫 직장동기인 MK언니의 친언니로 MK언니의 미니홈피에서 댓글로 시작된 인연이 카카오스토리로 이어져 지금까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공유해 왔다.

지난 10년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언니가 NC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언니가 미국에 살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국에 산다고 하면 막연하게 LA나 뉴저지 근처에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뜬금없는 우연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꼭 만나야 하는 인연.

언니는 얼마 전까지 뢀리에 살다가 여기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Greensboro로 이사 갔다며 시차가 적응되고 익숙해지면 놀러 오라고 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정착에 필요한 것들이 어느 정도 다 정리가 되었고 새로운 환경들도 어느덧 일상인 듯 익숙해졌다.

마침 MK언니도 딸과 함께 언니네 온다고 해서 그때에 맞춰 드디어 언니들을 만나러 그린즈버러로 향했다. 

언니네 집은 조용한 주택가 안에 자리 잡은 예쁜 싱글하우스였다.

얼마 전에 중고 프린터를 사러 갔다가 봤던 눈이 휘둥그레지는 집들보다도 더 넓은 뒷마당엔 잘 관리된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었고 자그마한 앞마당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예쁘게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우리가 차고에 주차하는 내내 손을 흔들며 반겨준 언니는 내가 생각해 왔던 그대로였다.

분명 첫 만남이었는데도 오랜만에 만난 사촌언니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에 그동안 우리가 글로 나누어왔던 마음들이 참 두터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MK언니도 미국에서 만나니 왠지 신기하고 더 반가웠다.

집으로 들어가며 서로의 근황을 묻느라 정신없는 우리와 달리 아이들은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분명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 자기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친근하게 대하는 게 아직은 어색한 것 같았다.


집 안은 언니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맥시멀리스트를 자처하는 언니답게 집안 곳곳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과 고양이 물건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게스트룸에 들어서니 언니가 얼마나 신경 써서 우리를 맞을 준비를 했는지 느껴졌다.



특히 게스트룸 화장실은 너무나도 따뜻한 환대가 느껴져 아이들의 마음마저 사르르 녹여버렸다.

짐을 내려놓고 기분 좋게 손을 씻고 내려가니 식탁 위엔 이미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가장 먼저 식탁에 자리 잡고 앉은 둘째 아이는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에 먹던 음식들과는 비주얼부터 다른 이 신기한 요리들을 어서 빨리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이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전에 언니와 전화통화를 할 때, 먹고 싶은 거 없냐는 물음에 웃으며 미국 가정식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국에 도착해서 삼시 세끼를 내내 한식으로 해 먹던 시기라 뭔가 느끼한 미국식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온다고 괜히 언니가 신경을 쓰게 될까 봐 그냥 평소에 언니네가 먹는 걸 먹으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니가 준비해 둔 저녁식사는 마치 추수감사절 만찬을 방불케 했다.

첫째 아이는 처음 보는 칠면조 구이가 책에서 그림으로 보던 거와 똑같다고 신기해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사실 우리도 평소에 한식만 먹어. 그래서 미국 가정식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이것저것 준비해 봤어."

그랬다. 

언니네 가족은 추수감사절에조차 잡채나 갈비찜을 해 먹는 정통 한식 파였다.

신경을 덜 쓰게 한다는 게 오히려 더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걸 알고 너무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언니는 모처럼 식구들이 많이 모여서 파티 같고 좋다며 맛있게 잘 먹으면 그게 제일이라고 했다. 



배불리 만찬을 즐기고 난 후 아이들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커다란 TV로 게임도 하고, 고양이도 졸졸 쫓아다니며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나에게 살며시 다가와서는 "엄마, 여기 진짜 예뻐요. 근데 이모는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요?"하고 물었다.

미안하다. 너희의 유년시절은 엄마의 친구들에게 모두 공개되었단다.

언니를 비롯해서 가까운 친구들 몇몇에게만 공개된 카카오스토리에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 뿐만 아니라 힘들고 마음 아픈 순간들까지도 함께 공유하며 서로 따뜻한 공감과 격려의 댓글을 나누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도 아직까지 연락이 끊기지 않고 1년에 한 번이라도, 아니 몇 년에 한 번이라도 계속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도 서로의 근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MS언니처럼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이런 사이도 편하게 느껴지는 건 비록 SNS상이었지만 그동안 우리가 주고받은 글에 서로의 마음과 공감이 더해져 쌓아 진 정이 그만큼 두텁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겐 너무나도 큰 힘이 되어준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스토리를 비공개로 돌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아이들이 '이모집은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언니는 아이들이 다양하고 재밌는 경험의 기회들을 갖게 해 주었다.

한국에선 진드기에 대한 공포로 잔디밭에 들어가지도 않던 아이들은 스프링클러를 틀어주자 온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신나게 뛰어다녔다.

가끔씩 마당에 찾아오는 작은 동물들을 위해 언니가 매달아 놓은 먹이통에 먹이를 가득 채워주고 다람쥐나 토끼, 새들이 올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기도 하고 자그마한 텃밭에 물을 주며 싱싱한 방울토마토와 깻잎을 따보기도 했다.

2박 3일 내내 나의 바람대로 온전한 미국 가정식을 재현시켜 준 언니 덕분에 아메리칸 브랙퍼스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오믈렛이나 와플 만들기에도 아이들이 나섰고, 맛있는 바비큐로 저녁식사를 한 후에는 아이들의 로망이었던 스모어도 직접 만들어 보았다.



집으로 돌아간 후 아이들은 언제 또 이모집에 놀러 갈 건지 궁금해했다.

그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알게 모르게 위축되고 불안했던 아이들이 2박 3일 동안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한결 마음이 안정된 것 같아 고마웠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냄비밥을 짓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언니는 전기밥솥과 캡슐커피 메이커를 빌려주었다.

안 쓰고 보관만 하던 거니까 일 년 동안 마음 편히 잘 쓰라는 말과 함께 직접 만든 머그컵도 같이 선물로 주었다.

그동안 댓글로 익히 알고 있던 언니의 따듯한 마음은 직접 경험해 보니 그 이상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역만리타국에서 가까운 곳에 마치 가족처럼 챙겨주는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