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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Sep 06. 2022

미국 초등학교 입학하기

미국에서 1년 살기

공교롭게도 한국 학교의 여름방학식 바로 다음 날 출국하게 되었다.

1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와서 다행이라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단 일주일 만에 다시 등교를 해야 하는 현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소중한 여름방학은 한순간 사라져 버리고 낯선 미국 초등학교에서의 새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초등학교는 보통 8월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지만 우리가 선택한 학교는 4개의 트랙(track)으로 나뉘어 각 트랙마다 새 학기 시작일이 조금씩 다른 Year-round 시스템이었다.

Year-round는 각 트랙마다 9주 수업 후 3주간 방학을 하기 때문에 같은 학년 학생이라도 어느 트랙이냐에 따라 방학기간이 달라진다.

3개의 트랙이 등교하는 동안 나머지 한 트랙은 방학이기 때문에, 1년 동안 최대한 미국 여러 곳을 여행 다니고 싶었던 우리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번의 방학은 최고의 기회였다.

애초에 이 학교에 배정을 받을 수 있는 집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캐리(Cary)에는 이어 라운드(Year-round) 학제인 학교가 꽤 많은데, 한인마트가 있는 중심부의 학교는 인기가 많아 항상 캡트 상태였다.

캡트(capped)는 학교가 정한 최대 수용인원이 꽉 찼다는 의미로 그 학교에는 배정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집을 알아볼 때는 가까이에 있는 학교가 캡트 상태인지 꼭 확인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 학교 근처의 집을 구했는데, 정작 등교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로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캐리의 유입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서 그런지, 우리 학교도 이듬해부터는 계속 캡트 상태라 우리 추천으로 이쪽 지역으로 오려던 분들이 아이들 학교배정이 어려워져 결국 집을 다른 곳에 구해야 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초등 1학년과 5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갔는데, 첫 아이는 11월 생이라 그대로 5th grade, 작은 아이는 4월 생이라 2nd grade로 배정이 되었다.

하지만 교육청 인터뷰 때 둘째가 적응하기 쉽도록 1st grade로 낮춰달라고 요청했고, 영어 테스트를 통해 아직 알파벳도 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영어 수준을 알게 된 선생님은 흔쾌히 변경해주었다.

초등은 5th grade까지만 있어서 만약 큰 아이의 생일이 빨랐다면 큰 아이는 middle school로 배정되어 두 아이의 학교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아이의 생일이 늦어서 같은 초등에 다닐 수 있는 것 또한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이제 같은 트랙만 배정받으면 완벽한데, 형제자매는 웬만하면 같은 트랙에 배정해주지만 워낙 전입학생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지역이라 8월부터 시작하는 인기 많은 트랙은 둘이 같은 트랙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미 시작한 지 일주일이나 지난 4 트랙을 선택했고, 등교 날짜가 정해지면 이메일로 날짜를 받고 등교를 하기로 했다.

이미 새 학기가 시작된 터라 하루라도 빨리 이메일이 오기를 바랐지만 담당자가 바쁘다는 얘기만 계속 듣다가 결국 이틀은 그냥 지나가고, 주말을 지난 월요일에야 이제 등교를 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이미 시작된 지 2주나 지난 반에 들어가는 게 아쉬웠는데, 오히려 아이들은 그나마 방학이 2주 당겨졌다며 7주만 등교하면 방학이라고 좋아했다.

지나고 보니 한여름과 한겨울을 피해 초봄, 초여름, 초가을, 초겨울 네 번의 방학을 하는 4 트랙은 성수기를 피해 여유 있게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 최고의 트랙이었다.


등교 첫날, 사무실에 들러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 후 배정된 반으로 갔다.

먼저 1st grade 인 둘째네 반.

인상 좋은 여자 담임 선생님이 반갑게 아이에게 말을 걸며 자리에 안내해 주었고, 아이가 영어를 아주 조금 알아들을 순 있지만 쓰는 건 알파벳도 잘 모른다고 하니 어차피 1학년은 파닉스를 배우는 시기라 문제없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학교에 ESL 프로그램도 있어서 도움을 받으면 금방 적응할 수 있다며 오히려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담임선생님은 1년 동안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아이가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큰 힘이 돼 주었다.

곧 수업을 시작해야 해서 아이에게 인사하고 교실을 나서는데, 워낙 또래보다 큰 편인 아이가 한 살 어린 친구들 사이에 앉아 있는 걸 보니 괜히 더 짠했다.

더 이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으니 부디 잘 적응하길 바라며 큰 아이의 반으로 향했다.

큰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유쾌한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말이 빠른 편이고 유럽 억양을 갖고 있어서 귀를 쫑긋 하고 안내 사항을 듣느라 애를 먹었다.

한국에선 5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남자' 담임선생님이라 더욱 새로운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아이에게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반을 나왔다.

학교를 나오며 화장실도 들려 보고 카페테리아도 들어가 보며 이곳저곳을 슬쩍 둘러봤는데,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고 실감이 안 났다.

나도 이렇게 얼떨떨한데, 아이들이 금방 적응할 수 있을까?

등교 첫날이지만 아이들의 스쿨버스 배정도 이미 끝나서 하교 때부터 스쿨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등교 첫날인데 데리러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우린 우리대로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았고,  내리는 곳을 정확히 알아야 내일부터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있기도 하고,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타고 오는 거니 괜찮겠다 싶어서 그대로 강행했다.

하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8시 20분에 등교해서 낯선 환경을 혼자 견뎌내고, 점심을 먹고, 또 알아듣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오후 수업 시간들을 지나 오후 3시 50분이 되어서야 난생처음 타보는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라니.

1학년 둘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등교 첫날이었던 것 같아 돌이켜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미안하다.


미국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아이들이 없는 낮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나 길다고 생각됐다.

더군다나 1학년인 아이는 한국에선 4교시 후 12시 땡~ 하면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하교시간이 돼서 걱정 반 설렘 반 인 기분으로 아이들의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영화에서나 보던 노란 스쿨버스가 보이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노란 스쿨버스에서 아이가 뛰어내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달려온 아이들은 걱정했던 것보단 밝은 모습이었다.

궁금한 게 많았던 우리의 질문 공세에 별로 자세하지 않은 대답만 해주던 아이들은 "그래서, 재미있었어?"라는 엄마 아빠의 질문에 우리를 안심시켜주려는 듯 "응!"이라고 해주었다.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을 조금씩 사라지게 해 주었다.


우리들보다 더 의연하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 아이들.

이렇게 본격적인 미국 초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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