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지 Mar 14. 2021

소고기에도 등급이 있다는데

짝퉁가방

세탁소 아주머니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신다.

항상 선불 결제를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덤덤한 성격인 내게는 조금 과한 친절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들어가도 모른 척하는 것 보다야 백번 기분 좋은 일이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세탁물을 맡기고 막 돌아서는 내게 아주머니는 내 팔에 걸린 가방을 보더니 

역시 좋은 건 다르다며 엄지를 세운다.

내 가방? 하고 내려다본 가방은 오래전 지인의 뒷거래를 통해 산 짝퉁 가방이었다.

아주머니는 미국사는 딸네 갔을 때 자기도 그 가방을 샀는데 

현지라고 해서 싼 줄 알았더니 거기도 비싸다며 알은체를 했다.

나는 뜨끔해서 말도 못 하고 네네 하며 선물로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솔직히 나는 그 가방의 현지 가격이 얼마인지, 우리나라에서 사면 백화점 정상 가격이 얼마인지

몰랐다. 

내심 그 가격이 궁금했는데 아주머니는 마치 내가 물어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격을 말한다. 

난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언제쯤 갔다 드릴게요 사모님이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거렸다.

가방을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명품백과 동일 취급을 받고 나니 오히려 비싼 가격을 주고 산 아주머니께 미안한 마음까지 생겼다.


A급 짝퉁 

십 년도 훨씬 전이었던 것 같다. 직원이 몇 명을 조용히 회의실로 불렀다.

언니들이 특별히 친해서 그런 거니까 이거 언니들 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그래 아마 그때 몇 명이서 샀던 것 같다.

짝퉁도 급이 있어서 아무나 한테 팔지도 못하고 경로도 알면 안 되는 뒷거래로 샀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나였고 그게 A급인지 진품과 가짜가 어디서 차별이 되는지 전혀 모르고 

그저 명품백이라며 하나씩 샀다. 

멋 모르고 들고 나와보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전부 들고 다닌 명품 백이었다.

하나같이 모양도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한 그 가방을 나는 몇 번 들고 다니다 누구를 줬는지 버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명품

A급은 어떻게 나올까?

언젠가 이탈리아의 구두 장인(匠人)의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명품의 탄생과정을 직접 촬영한 것이었다.

모든 가공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했고, 몇 날 며칠을 햇빛과 공기와 온도로 다져진 가죽을 재단하고 꿰매는 일까지 오래 훈련되고 숙련된 솜씨로 빚어냈다.

명품의 탄생은 그렇게 오랜 시간 걸쳐서 다듬어지고 숙성되어 나오는 결과물인 것이다.


A급 인생

지금까지 살면서 A급으로 살아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최고의 높은 레벨에서 무언가를 누리고 혜택을 보면서 살아온 적이 있는지 말이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부로 인해 잠시나마 A급 언저리에서 살아온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부터는 나는 줄곧 C나 D 쯤 어디였던 것 같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형편도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최고의 자리 나 명품을 누리고 산 적도 없다.

늘 B급에서 헤맸거나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


우리는 왜 A급에 다가가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치며 살아갈까.

한우 등심 한번 먹으려면 A에 플러스 기호가 몇 개가 붙어 있어야 하고,

핸드폰 만한 핸드백 하나에 한 달 월급을 기꺼이 쓰는 건지.


다행인 건지 미련한 건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명품 물욕이 없다 

짝퉁 가방도 그때 이후로 관심도 없거니와 쇠줄이 주렁주렁 달린 가방을 들고 

거기에 맞는 옷과 구두를 입을 만큼 열정도 없다.

인터넷에서 5만 원 주고 산 백팩에 두꺼운 책 한 권을 넣어도 무겁지 않고 

도시락을 넣으면 든든한 가방이 편하고 좋다.


막연히 내 삶을 B급으로 분류하기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A급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탈리아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치열하게 공을 들여야 한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만들어야 완성된 후 모양과 제품의 제 기능을 완벽하게 해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충 모양만 명품처럼 만들게 되면 얼마 가지 못해 하자가 생기고 버려야 한다.

명품의 기본은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빛나는 모습이 나오는 게 매력일 것이다


내 인생은 어떤 급일까?

세상의 잣대로 보면 낮은 등급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잣대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가 노력해서 번 만큼 그 안에서 아껴 쓰고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베풀고 나누면서 사는 게 내 인생급이다.

어렵게 살아온 부모님께 도움을 바랄 수 없고 힘든 세대에 속해 있는 자녀에게 별다른 요구도 없다.

이것이 B급 인생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혈액형도 B형이 좋은데.




작가의 이전글 내가 놓친 의로운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