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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May 05. 2021

첫 발자국

너의 세상을 응원해

빳빳한 지폐로 뽑아온 5만 원권 10장을 은행 봉투에 넣어 외할머니께 드리는 큰딸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동안 마음고생했을 손녀딸이 주는 거금에 할머니는 목이 매인다며 깊게 파인 주름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신다. 


오랜 기간 취준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온 딸은 집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여러 가지 일을 맡곤 했다. 

할아버지의 암투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취준생이었던 딸이 병간호를 맡았었고,

할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와 계실 때도 회사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식사를 챙겨드리곤 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네가 집에 있으니까 좀 하면 되겠네", "너는 쉬니까 괜찮지 않니?" 라며 자존심에 상처되는 말도 해버리고 말았다. 

취업이 힘든 청년세대의 고충을 말로는 안다고 하지만 내심 '왜 저렇게 나약하나'라는 한심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중2병을 앓고 난 후부터는 공부와는 크게 멀어지고 말았다.

우리 부부는 안되는걸 억지로 시키지 말자 라는 주의라서 다른 특기가 있는지도 함께 고민했다.

한 때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여군이 되겠다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곤 했다.

장교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아빠의 말도 있었고, 공부를 해보니 여군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은 지방대학을 갔다. 수포자(수능시험에서 수학 포기한 사람)인 딸은 수시전형에서 공대에 합격했고 부푼 꿈을 안고 먼길을 통학했다.

부푼 꿈은 전공의 수학에서 물거품처럼 톡톡 사라지고 말았다. 

모스부호 같은 암호를 마주한 순간 머릿속은 아득해졌고 결국 스트레스성 림프 염증까지 걸렸다.

 

자취를 하겠다고 졸랐지만 고지식한 우리 부부는 허락해주지 않았다. 

결국은 프로그램 전공자의 기본 자격증도 취득하지 못한 채 졸업을 했고 기나긴 취업의 터널에 빠졌다.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을 해가며 움직여봤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좌절에 익숙해진 딸은 자존감도 낮아졌고, 희망을 가지지 못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말을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기까지 했다.

마음이 아팠지만 본인만큼 힘든 사람이 있겠냐며 기다렸다. 때론 언제까지 이렇게 끝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답답해서 대화를 하면 말 몇 마디에 딸은 눈물부터 주르륵 흘렸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우리가 성인이 되어 자기 갈길을 찾았던 것처럼 스스로 찾아갈 줄 알았다. 

기다리고 지켜봐 주기로 했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내 일을 한 다시고 다른 부모들처럼 정보가 어두워서 치맛바람을 휘날리고 다니지 못해서 

아이가 저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들었다.

며칠 웃고 지내다가 문득 불안해지면 또 잔소리를 해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어두운 터널도 터벅터벅 걷다 보면 저 멀리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앞에, 그리고 내 옆에 어떤 두려움이 나를 감싸고 있지만 두려움을 이길 용기만 있다면 이기는 것이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첫 발자국.

어쩌면 취준생의 시절보다 더 큰 두려움과 거친 돌밭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발자국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걸어가길 바란다.




"위험하지 않는 것은 위대하지 않다. 재능 있는 사람은 많지만, 용기 있는 사람은 드물다." 

분명 어느 책에선가 읽고 노트에 적어놓은 글귀인데 출처를 모르겠지만,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딸에게 이 말이 어두운 터널에서 밝은 빛이 되어줄 이정표가 되길 바랄 뿐이다.

조금 헤매고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길 바라는 심정으로 무심히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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