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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May 19. 2021

유튜브는그냥 보기만 하는 걸로.


책을 읽으려 책상 앞에 앉아서 휴대폰 화면을 연다. 

어김없이 유튜브를 켜고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올라왔는지 가볍게 터치해본다.

수많은 이야기와 먹방 티브이를 보면서 30분이나 한 시간을 훌쩍 보내곤 했다.

젊은 여성의 요리 솜씨와 먹는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가끔은 침을 삼키기까지 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도 너도나도 일상의 모습을 담은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됐다.

외국의 생활은 스케일이 다르구나. 음식과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느긋하게 보여주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넘의 집 장바구니 구경은 왜 하고 앉았냐고 핀잔을 듣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 사람들이 먹고 쓰는 것들을 고개 끄덕이며 좋아요를 눌러댔다.

처음부터 이렇게 유튜브에 빠져들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게 실수였다.

나는 휴대폰으로 누리는 거라곤 카톡과 블로그 그리고 메일이 전부였는데 어느 날부터 보이는 그 방송이 꽤 흥미롭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기로 했으면서 글과 책은 저 멀리 던져두고 방송을 보는 것으로 한두 시간 훌쩍 보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나는 결국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자기돈으로 사서 써보니 정말 좋은 아이템들을 믿었고, 믿음이 갔다.


해외에 사는 유투버들은 대형마트에 다니면서 음식 브이로그를 찍고 장바구니를 보여주는 방송을 위주로 했기에 가끔 나도 저런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기껏해야 아파트 앞 상가 마트에서 사 온 콩나물과 두부로 밑반찬을 해대던 나는,

드디어 오늘 대형마트에 회원가입을 했다.

 (사진출처:pexels)


미국의 본사를 두고 있는 그 마트는 연회원 가입을 하고(회비가 38,500) 입장을 할 수 있다.

아니 내 돈 주고 물건 사러 가는데 연회비라니? 그만큼 물건의 품질이 좋다는 뜻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무거운 카트를 밀고 입장을 한다. 

높은 천정까지 쌓여있는 물건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잠시도 쉴 틈 없이 둘러본다.

가격은 하나 같이 10원 20원을 떨궈주는 것 같다. 

19,990원 이랄지 29,900원 이랄지. 간신히 1만 원대와 2만 원대를 넘기지 않겠다는 마케팅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싸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 참을 눈알 튀어나오게 걷다가 눈에 띄는 상품을 발견했다.

이거 이거 그 유투버가 말하던 거잖아? 이게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사자.

이 머스터드 소스도 맛있데, 양이 좀 많긴 하지만 유통기한이 기니까 이것도 사자.

우와~ 이 빵 봐, 이것도 이렇게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으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니까 이것도 사고.

헉! 이 때깔 좀 봐, 역시 고기는 **산 아니니, 한우는 너무 비싸서 못 사니까 이걸로 스테이크 해 먹자.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게 이 마트 고기래. 

이제 나도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에서 벗어나는 건가? 

카트에 산처럼 쌓아서 밀고 가는 사람들 보자니 바닥만 채워진 내 카트가 초라했다.

하지만 난 꼭 필요한 것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최대한 소비를 자제했다.

사실 새가슴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것은 주로 시댁에서 보내준 채소들이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큰 나뭇가지에서 따온 옻순이며, 논두렁 밭두렁 옆에 넓적하게 펴 있는 머위대, 

산속 깊은 곳에서 캐논 취나물, 돌아가신 아버님이 만들어 놓은 방죽에서 자란 미나리, 뒷산에 지천으로 깔린 고사리 등이 맛있는 요리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 아, 최근에 담아주신 엄나무순 장아찌까지.


옻순에 어니언 드레싱이 어울릴까?  머위대 나물에 치즈를 갈아 넣어야 하나? 

고사리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볶으면 어떤 맛일까?  

일찍 출근하는 딸은 밥을 먹어야 속이 편한데 베이글에 기름기 많은 치즈와 메종 머스터드를 발라서 먹으면 

부글거리며 가스가 차는 건 아닐까...

양이 겁나 많은 쇠고기 다짐육은 패티를 20장을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 두고 나니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항상 퇴근하면서 동네 마트에서 간단하게 1~2만 원어치 장을 봤다. 생필품은 로켓으로 배송되는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했으니 불편할 일도 없었다. 

먹는 거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장을 보지 않는 게 습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식비도 큰 부담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골에서 보내주는 토종 먹거리가 보관되어 있는 행운이 있어서 더욱이 대형마트는 가지 않았다.

오늘 장 봐온 돈이면 시골 부모님 용돈 한번 더 드릴 텐데 라며 살짝 후회가 들기도 한다.

게다가 나는 밀가루와 유제품은 먹으면 바로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생기는 저질 소화기간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지. 

유튜브 따라 하기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까 살짝 예상해본다. 

대형마트도 유튜브도 잘못한 건 없다. 다만 보여주는 방송의 효과를 나처럼 순진하게 따라 하지는 말자.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함박스테이크에 치즈를 얹고 아스파라거스를 살짝 볶아 올리고 미니양배추를 구워 이쁘게 플레이팅 해서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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