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지 May 29. 2023

상추에는 콩가루를 뿌리세요

매년 이맘때쯤이면 산이나 밭에서 몸에 좋은 채소가 풍성하게 자란다. 이 즈음이 되면 우리 집엔 상추가 박스째 들어온다. 그것도 두세 박스씩 말이다. 채소가 어디 상추 뿐이랴 만은. 두릅, 부추, 당귀, 가죽순, 머위, 취나물, 쑥등 먹을 수 있는 나물이 넘쳐난다. 남편 회사 사람들도 나눠주고 이웃들도 나눔을 해보지만 딱히 줄어들지 않는다. 앞집의 신혼부부에게 한 움큼, 윗집은 시부모님이 주말 농장을 하셔서 그 집도 채소가 넘쳐나긴 마찬가지다.  삼겹살에 상추쌈을 해먹어보지만 줄어들지 않은 상추는 냉장고에 들락거리다 짓물러져 버려지기 일쑤다. 그러니 가져와도 다 해결을 못하고 버릴 때는 아깝기도 하고 죄짓는 마음마저 들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지시는 시어머니는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마당 한편에 텃밭을 일구신다. 상추며 열무, 고수나 파 등 흙이 있는 마당은 갖가지 채소를 심고 관리를 하신다.  꽤나 많은 논과 밭은 시골로 귀농을 한 시동생 내외가 경작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당신이 평생 해온 농사일에 뒷짐 지고 구경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아직은 초보 농부인 시동생에게 일머리를 깨우쳐 주곤 하신다. 파종의 시기와 요령은 평생 농사일을 해오신 어머니의 경험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시어머니의 자식사랑 앞에 간혹 당황스럽고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한 달 전 상추를 심어서 막 여린 잎이 솟아났을 때였다. 일정이 바빠 서둘러 귀경을 하려는데 아직 제대로 크지도 않은 상추를 어머니는 솎아내서 챙겨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필 비가 억수로 내리는 아침이라 나와 남편은 비 맞은 상추는 금방 상하니 1~2주 후 다시 와서 그때 양껏 가져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또 달랐다. 시골에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밭이나 논에서 거둬들인 농작물이 전부일터. 비 맞은 상추라도 푸짐히 싸주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도 모르고 아들 며느리는 대충 몇 번 슬쩍 뜯어 갔으니 몹시도 서운하셨나 보다.


집으로 오고 난 며칠 후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번갈아 전화를 하셔서 긴 하소연을 하셨다. 내 손발을 묶어서 나를 꼼짝 못 하게 할 작정이냐로 시작해서 평소 자식들에게 서운하셨던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동안 푸념을 하셨다. 상추를 왜 안 가져갔냐. 이제는 나를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할 거냐. 몇십 분 동안의 통화 시간 내내 상추 이야기에 대한 서운함을 반복하셨다. 이해는 하면서도 지쳤다. 그 서운함은 나로 끝난 것이 아니라 손주들한테까지 하소연으로 이어지다 보니 상추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식구들이 다 알게 되었다.


 

상추가 뭐라고.

이번 연휴 때 어머니께 다녀온 남편은 예상대로 상추가 든 박스를 몇 개 들고 왔다.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뿍 담고 자란 상추는 더욱더 파랗게 잎이 짙고 강해 있었다. 이 애증의 상추가 다 상하기 전에 해결해야겠기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매번 상추가 넘쳐나는 나는 상추를 버리지 않고 소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상추나물'을 하게 되었다.



상추를 깨끗이 씻어서 끓은 물에 살짝 아주 살짝 담갔다가 빼내는 정도로 데친 후 차가운 물에 다시 한번 헹궈서 물기를 꼭 짠 다. 탈 탈 털어서 집간장을 아주 조금(밥숟가락 2/3 정도) 넣고 들기름과 깨소금 그리고 비장의 무기인 '콩가루'를 가득 넣어 조물 조물 무친다. 콩가루는 많이 넣을수록 고소함이 더해지니 양껏 넣어도 좋다. 아직 초등학생 입맛인 막내딸도 이 상추나물은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상추나물과 겉절이를 해 놓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상추 잘 먹을게요. 상추가 정말 싱싱하고 맛있어요. 어머니 정성이 들어가서 그런가 봐요."

어머니는 상추 얘기에 또다시 울컥했는지 울먹이며 말씀을 하신다.

"나는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거라면 내 몸이 바스러져도 한다. 그러니 나 아무것도 못하게 하지 말어라."


성격이 급하신 어머니는 걸을 때도 천천히 걷지를 못하신다. 그러다 보니 간혹 걸음걸이가 꼬여 넘어지기도 하셔서 자식들이 걱정이다. 게다가 자식들 위해서 뭐라도 일을 하려는 순간에는 없던 힘이 솟아나는지 젊은 사람들보다 더 빠르고 날렵하시다.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늘 앞선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봄에 자라는 상추의 푸른 잎처럼 진하고, 잎사귀 딴 자리에서 또다시 잎사귀가 솟아나 자라듯이 그렇게 솟아나나 보다.

상추에는 콩가루를 뿌리세요. 고소함이 살아납니다.


작가의 이전글 어버이날 오마카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