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동물보호론자들의 오버 액션
멸종위기, 무서운 말이다.
어떠 종에 속한 모든 개체가 절멸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의미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종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이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다. 국내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른바 동물보호운동가들이 이러한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특정한 종이 처한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는 크게 두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CITES(멸종위기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IUCN(국제자연보호연맹)이 발표하는 레드리스트이다. 전자는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을 국제거래를 통제할 필요가 있는 종과 그렇지 않은 종으로 구분하고 다시 거래통제가 필요한 종을 I, II, II급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다. 통상 CITES 부속서 I에 속하는 종은 국제교역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의미하며 부속서 II는 현재는 멸종위기에 처하지 않았지만 교역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을 경우 멸종위기로 이행할 수 있는 종을 의미한다. 부속서 III등재종은 멸종위기와 관련없이 적절한 수준의 교역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종을 포함한다(통상 부속서 I 또는 II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당사국간의 협의가 필요한데 부속서 III 등재는 이러한 협의절차가 불요하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IUCN은 CITES보다 더 세부적으로 각 종의 멸종위기 상황을 평가하고 있다. 관련정보가 있다는 전제 하에 모든 종은 'least concern(큰 주의가 불필요함)'부터 'extint(절멸)'까지 총 7단계로 세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각 종에 대한 CITES와 IUCN의 평가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CITES에서는 부속서 II에 등재하고 있으나 IUCN에서는 least concern으로 분류하는 등 두 기관의 평가가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IUCN은 학술적 성격이 짙은 기관이기에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멸종위기 단계를 정하는 반면 CITES는 정치적 성격이 짙으며 임의의 종을 부속서 등재종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국가간의 협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즉, IUCN에서는 임의의 종을 멸종위기(endangered endangered 이상의 단계)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CITES 부속서에는 등재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또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국내 관련법은 멸종위기와 관련한 두가지 지표 중 CITES 부속서 등재여부를 멸종위기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즉 CITES 부속서에 등재된 종은 기본적으로 멸종위기종으로 통합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우선 CITES 부속서에 등재된 모든 종이 실질적 의미의 멸종위기종이 아니라는 사실이 멸종위기종과 관련한 대응의 철학적 법적 기반자체를 흔들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속서 II는 현재는 멸종위기가 아니지만 향후 가능성이 있는 종의 그룹이다. 부속서 III은 이러한 부속서 II보다도 약한 수준의 위기 아닌 위기에 처한 종을 의미한다. 즉, CITES 부속서에 등재된 모든 종을 멸종위기종이라 뭉뚱그려 판별하는 현행 우리의 법체계 자체에 심대한 오류가 있는 것이다. 부속서 II 이하의 종은 멸종위기종이라 판별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CITES의 적용 대상거래이다. CITES는 회원국 각국의 국내거래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국가간 거래에만 집중하고 있다. 세계 어떤 국가를 보더라도 CITES 등재종의 국내 거래를 국제거래에 준해 통제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유럽 주요국 등 모든 선진국은 CITES를 국내 거래에 적용하지 않고 있다. 즉 부속서 I의 종이라도 국내 거래에는 거의 제약이 없거나 형식적 제약만 존재하며 부속서 II의 종은 사람의 생명에 위해가 되거나 해당국의 생태계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국내거래를 통제하지 않는다. 결정적 문제는 최근의 야생동물 국제거래 및 인공증식 풍조와 관련된다. CITES는 기본적으로 국제거래를 통제 내지 모니터링하여 야생개체군의 감소를 막기 위한 협약이다. 그런데 최근 수십년간에 걸친 비약적인 인공증식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더 이상 야생에서 대규모로 부속서 I이상의 종을 채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장 흔한 국제거래 야생동물 중 하나인 앵무새를 예로 들자면 이미 수십년 전부터 히야신스 매커우를 비롯한 상당수의 부속서 I 등재종이 매우 성공적으로 인공증식되고 있다. 인공증식된 개체는 야생채집개체에 비해 다루기 쉽고 사육상태에 잘 적응한다. 당연히 야생채집(통상 불법적인 방식) 개체에 비해 상업적 가치가 높다. 사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야생개체를 수입하지도 찾지도 않는다. 거래되는 모든 개체는 이미 수대 이상에 걸쳐 인공증식된 개체들이다. 이에 따라 CITES는 상업적 목적으로 인공증식된 부속서 I 등재종은 부속서 II 등재종에 준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동물보호운동가는 이러한 CITES의 규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업적 목적으로 인공증식된 부속서 I 등재 앵무의 수입허가와 관련하여 환경당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불필요한 오버액션으로 발생한 헛발질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인공증식 개체의 증가는 궁극적으로 야생개체군의 절멸을 막는 중요한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이들의 헛발질은 자신들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원적 부정으로까지 여겨져 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인간은 자연생태계를 지배하고 이를 이용하였기에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최근 수십년 래 인공증식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며 야생채집된 동물들이 국제거래되는 사례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동물을 키우고 죽여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생존방법인 현실 속에서 동물을 죽이지 않고 더 나아가 야생의 동물이 아닌 인공증식된 동물을 합법적 둘레 안에서 이용하는 것이 비난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 더 나아가 그 동물이 사실은 멸종위기종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지닌 비멸종위기종이라면 이들의 비난은 번지수를 잘 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환경당국과 동물보호관련 운동가들은 부디 멸종위기종이라는 엉뚱한 명칭으로 잘 못 불리고 있는 수많은 CITES 부속서 II 이하 종의 적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이에 걸맞는 정책을 수립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이러한 재정의와 재대로 된 접근 없이는 한정된 예산하에서 결국 무의미한 행위만을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 화: 한국은 동물밀수의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