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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용주 Aug 23. 2019

고양이와 행동교정 전문가

고양이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준비가 안된 고양이 보호자가 폭증하며 고양이와 보호자 간의 문제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고양이 보호자들이 제기하는 주된 문제는 화장실 이외의 장소에 대소변 누기, 사람 또는 다른 고양이에 대한 공격성, 가구나 집기 부수기, 과도한 울음소리 등이 대종을 이룬다. 이러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은 개의 행동교정 프로그램에 이미 익숙한 터라 고양이에게서도 개와 같은 수준의 경이적인 행동교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향이 높다. 손가락만 하나 딱 하고 움직이면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의 기대와 희망에 편승하여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목적에 고양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자칭 고양이행동교정 전문가라는 타이틀의 인물들을 출연시켜 고양이와 보호자의 문제를 진단하고 드라마틱한 결과를 얻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고양이는 개가 아니며 훈련 및 행동교정이 현실적으로 매우 난망하다. 따라서 획기적인 문제해결은 애당초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닌 고양이의 매우 자연스런 행동인 경우가 많다.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현상인 것이기에 애시당초 치료나 교정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사진제공: Dr. C(https://www.instagram.com/dr_cheshire/)

가장 많이 그리고 유기와 학대처럼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배변문제를 살펴보자. 고양이는 대중들에게 거의 완벽에 가깝게 대소변을 가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재로 대부분의 고양이는 정해진 화장실을 100% 이용한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날인가 부터 고양이가 방 한가운데나 심지어 침대 한가운데에 소변을 보기 시작한다. 오래지 않아 심지어 대변까지 같은 장소에서 해결하기 시작하면 이미 보호자는 극도의 혼란을 넘어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어떠한 방법도 소용없다. 혼내고 때려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모 프로그램에 등장한 자칭 고양이 행동전문가는 보호자를 혼내는 것 부터 시작한다. 화장실의 위치나 개수, 크기 등에 문제가 있다며 혹독할 정도의 비판을 가한다. 그런뒤 더 큰 화장실로 바꾸고 더 많은 화장실을 제공해 주라는 솔루션으로 마무리한다. 한두주 후에 찍은 에필로그에서는 다소 개선된 상황을 보여준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가 지적한 것처럼 화장실의 위치, 크기 등이 문제였을까? 그리고 그것만 개선하면 쉽게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 가정을 비롯한 거의 모든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보호자의 문제의 원인은 기실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선, 해당 프로그램에 나온 제보자의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의 형태와 개수가 아니라 바로 사육공간의 크기와 사육개체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개체군의 성적 구성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부분이다. 상기 사례의 경우, 불과 30평 내외의 아파트에서 서너마리 이상의 고양이를 키우는 과밀한 환경 자체가 개체군 내의 영역다툼을 유발하며 이 과정에서 개체군 내에 누적된 스트레스나 일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증폭된 영역소유욕이 화장실 이외 장소에 대한 배변(영역표시 목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즉, 단순히 화장실의 개수나 형태 위치 등의 변화만으로는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운 것이다.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해법은 공간의 크기를 절대적으로 늘리거나 개체수를 줄이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사진제공: Dr. C, https://www.instagram.com/dr_cheshire/

고양이는 개가 아니다. 개와 같은 식의 짠하고 한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묘수는 대부분의 경우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그것보다 효과적이고 중요한 방법은 고양이의 진화적, 생리적, 심리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천천히 해결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문제의 열쇠는 보호자 스스로가 손에 쥐고 있다. 고양이에게는 애시당초 이른바 '고통령'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의 일방적 행동교정이 아닌 특정 행동을 야기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런 원인을 제거해 주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행동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고양이의 자연스런 행동이라는 인식이 바로 포인트이다. 


새롭게 고양이를 키우려는 예비 보호자들은 한가지만 명심하기 바란다. 당신이 키우려는 동물은 수만년 이상 홀로 생활하는데 익숙해진 고독한 방랑자이며 지독한 포식자이고 동시에 언제 다른 동물에게 잡아 먹힐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가득찬 가여운 영혼이다. 그들은 남과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것 보다는 겁주어 쫒아내는데 능하며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똥과 오줌을 뿌리고 발톱으로 자국을 남기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이 포식자와 평화로운 동거는 그들이 그저 인형가게에서 파는 것과 같은 털난 귀여운 인형이라는 생각을 고쳐먹는데서 부터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고양이의 문제아닌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의 흑기사는 어디에도 없다. 당신 스스로가 그 흑기사가 되기 전에는 .... . 방송국 관계자들에게도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싶다. 개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고양이에게서도 기대하지 말아 달라고. 그건 마치 물고기에게 새처럼 날아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여러분과 고양이의 평화로운 동거를 응원한다. 그러고 거기에 행동교정이 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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