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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용주 Sep 04. 2019

기업이 아닌 기관의 생존을 위한 스타트업 지원정책

스타트업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스타트업이라고 좌판을 벌여 놓은지 어느덧 1년여가 되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초기 팀 멤버가 도망가고 새로운 팀 멤버를 찾고, 회로 설계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기구설계라는 허들을 넘어 시제품이라고 생긴 물건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있다. 그간 적지 않은 지원기관의 문을 두드려 보았고 실망하고 좌절했다. 하지만 아직 꿋꿋이 생존하고 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뛰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이 있는 상태에서 지난 1년여를 회상해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으로 점철된다. 


필자 역시 중소기업을 비롯한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공기업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 최근 1년여간의 경험은 내 과거의 행적과 사고방식을 돌이켜 보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를 경험한 사람으로 국내 스타트업 지원 정책의 몇가지 심대한 문제를 지적해 보려고 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지원정책은 한마디로 비효율적이다. 지원에 실질적으로 동원되는 자원보다 그 지원금을 집행하거나 홍보하고 더 나아가 신청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과도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최근 각 기관은 너나 할것 없이 앞다퉈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각종 공기업가 정부산하기관부터 지방정부까지 수백곳 이상의 기관이 이런저런 경진대회와 자금지원, 경영컨설팅을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물론 각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수십장에 이르는 지원서와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적게는 수주에서 길게는 수개월이 소요된다. 전체 지원금액은 다 합쳐봐야 1억원 내외이지만 십여가지 이상의 이런저런 세부프로그램으로 나눠놓아 뭐가 뭔지 담당자도 혼동될 정도이다. 스타트업은 백수가 아니다. 하루 열몇시간 이상을 일만해도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 인건비는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 500만원짜리 지원 프로그램에 수혜자가 되기위해 두세명이 들러붙어 1달을 준비하고 결과를 받아 보는데 2달이 걸리며 수혜 가능성이 10%라면 해당 지원사업은 이미 지원사업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각 지원기관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기관의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예산을 쪼개고 각 사업의 지원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수혜 금액보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 지원프로그램이 난잡하게 많다보니 각 프로그램을 홍보하는데에도 비용이 크게 발생하며 그 홍보효과 또한 반감된다. 여러모로 배꼽이 배보다 큰 형국이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지원하고 싶다면 지원제도 자체를 간소화하고 지원창구를 일원화하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120페이지에 달하는 과기부 지원 프로그램 안내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별도로 밤을 세워 공부해야 할 수준이다.
내가 어떤 프로그램의 수혜대상자가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 조차 힘든 뷔페식 지원제도. 우리는 제대로 된 한끼가 더 절실하다.


두번째로 각 기관은 자꾸 창업가를 가르치려 든다. 창업가는 학생이 아니다. 학생 창업가도 있지만, 대부분의 창업가는 이미 적지 않은 교육과 경험을 쌓은 상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 내지 스타트업지원프로그램은 창업자에게 경영관련 교육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경영컨설팅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경영교육은 번지수를 한차마 잘못 찾은 것 같다. 적지 않은 수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교육과 최고의 경험을 쌓은 이들이다. 이들에게 무언가를 자꾸 가르치려는 생각이 있는 한, 그 지원제도는 실패할 것이다.  물론 그런 교육 프로그램의 강사진의 역량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교육을 누가 받아야할지 혼돈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세번째로 각 기관은 자신들의 사업을 시혜성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세금이 들어가니 언뜻 시혜성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하겠지만 스타트업이 무상으로 지원받건 대출로 받건 지원받은 금액은 결국 국민경제의 일부로 환원된다. 돈을 빼먹겠다고 작정하고 덤비는 사기꾼이 아니라면 적지 않은 스타트업 CEO는 급여조차 받지 않고 사업에 매진한다. 스타트업이 지원받아 사용하는 돈은 결국 물품구매나 급여, 세금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경제학의 기초만 알아도 이렇게 흘러들어간 돈은 결국 승수효과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 시킨 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한마디로 스타트업에 지원된 돈은 우리 경제를 살찌운다. 지원받은 스타트업이 망해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하더라도 결코 낭비나 시혜가 아닌 것이다. 


정부 및 관련 산하기관들은 진짜 스타트업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 어쩌면그들은 애시당초 스타트업이 잘 되는데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스타트업을 핑계로 더 많은 예산을 받고 인력을 충원하여 조직을 살찌우고자 할 지 모른다.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이지만 수출을 해본적이 없는 이들로만 이루어진 과거 필자가 근무했던 조직이 자꾸 머리속에 맴돈다. 원죄가 깊은 것 같다. 



심용주

우주라컴퍼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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