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READ ENJOY

[READ]단 한 번의 삶 by 김영하

나만의 짬뽕 해석을 즐기다

by 샐리


나는 김영하의 책 '단 한 번의 삶'을 읽기 전에 '롭상 람파의 가르침'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다. 그리고 양자경 주연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았고, 지금은 김혜자의 주연의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과정이 '단 한 번의 삶'을 읽기 위한 사전 준비였던 게 아닐까. 이 책을 독창적으로 읽기 위한. 작가의 말을 나의 배경지식으로 해석하고, 내 삶과 겹쳐 이해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 책은 아무런 준비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김영하 특유의 예리한 통찰이 유쾌한 문장으로 흘러나와 독자를 매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멋대로, 짬뽕처럼 독서해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은, 아래에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독자는) 때로는 창조자인 작가에게도 맞설 것이다….

텍스트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어떤 의미에서 더 이상 저자와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텍스트는 독자에 의해 무한히 재생산, 재창조될 대상이다.” (p.94)


김영하는 독자를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창조자가 되기를 바란 걸까? 여하튼 멋대로 해석하길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책을 재창조하다시피 읽는 것에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니 죄책 감 없이 한번 선을 넘어 보기로 했다.







1. 도덕적 운과 롭상 람파의 만남


‘도덕적 운’이라는 챕터를 읽을 때, 나는 롭상 람파를 떠올렸다.

작가는 한 논문을 인용해, 인간의 도덕성조차 환경과 운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이 선량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단지 선한 의지뿐 아니라,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롭상 람파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삶은 단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카르마의 규칙'에 따라 운과 불운이 따른다고 말이다. 결국 삶이란 의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주어진 환경- 운’의 총합이라는 점에서 두 관점은 상통한다고 느꼈다. (롭상 람파가 실제 라마인지에 대한 논란은 보류하자)


김영하는 자기 파괴적 충동을 타고났지만, 글을 쓸 수 있었던 ‘도덕적 운’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을 롭상 람파의 논리대로 해석해서, 아마도 그가 쌓은 덕, 말하자면 그가 카르마에 제대로 응답해 온 시간들의 결과라 유추해 보았다.


티베트 고승의 환생자가 가르쳐준 사후세계 이야기







2. 어떤 위안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발견하다


김영하의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챕터는 ‘어떤 위안’이었다. 그 내용을 읽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떠올렸다.


김영하는 말한다.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p.213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같이 죽음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인생이란 결국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를 책임지고 해내는 일이라고. 그는 이렇게 썼다.


“삶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기대에 응답해야 한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p.126


삶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응답하는지가 결국 인생이라는 얘기다. 김영하는 이 철학을 '칵테일'이란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프랭클과 김영하 모두, 자신이 삶의 주체라고 강조한다. 내 칵테일은 어떤 맛일까? 부디 운과 자기 결정의 조화로운 믹스이길. 그리하여 최선의 맛이 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3. 멀티버스와 n개의 인생 콜라보


이번에는 유쾌한 상상력이 소환됐다. 멀티버스라는 초우주적인 세계관이 펼쳐지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내가 하마터면 살 수 있었을 n개의 인생 중 하나로 보인다…

어쩌면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딘가에는 내가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p.187


혹시 작가도 이 영화를 보았을까? 충분히 가능성 있단 생각이 들 만큼 이 챕터에서 멀티 버스의 향기가 느껴진다.


'내 삶이 ‘어쩌면’ 살아볼 수도 있었을 무한한 삶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면...

죽음 이후에도 내가 죽었음을 모를 것이고,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디엔가는 내가 존재했는지도 모르는 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


‘어쩌면’ 살아볼 수도 있었던 다른 삶이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르므로, 위로를 느끼는 아이러니다.








4. 천국보다 아름다운 작가의 위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혜자의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흔히 노인을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만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통념을 깼다. 드라마 속 김혜자는 80세가 넘은 천국의 유일한 할머니인데, 여전히 20대 청순처럼 청순 발랄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인간적인 아름다움, 매력은 여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김영하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김영하는 이 책을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라며, 너무 이른 나이에 써버린 건 아닐까 두렵다고 고백한다. 삶의 회고작은, 작가의 관록이 깊어질수록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나이는 50대 초반이다. 요즘 시대라면 아직 젊다고 할 수 있기에, 작가로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김혜자처럼, ‘작가가 나이 들면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는 건 일종의 허상 아닐까?

어느 날 '도덕적 운'이 맞아떨어져,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저 좋은 환경과 타이밍이 만들어낸 선물 같이 말이다.


그러니 그가 ‘평생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을 이 시기에 썼다고 해서, 그 내용이 결코 얕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라서 쓸 수 있는 글들일 터이니, 되려 작가를 위로하고 싶다.


또한 내가 이 책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건 내가 나이를 먹어서라기보다,

이제야 그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깨달음이 바로 내게 ‘어떤 위안’이 되었다.


위안 덕에 내 스스로가 대견하게 보였고,

그 순간이 어쩐지,

김영하 특유의 위트처럼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