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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1986년생 미국 백인 가정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

by 샐리

‘배움의 발견’은 모르몬교 신앙을 가진 가족의 삶을 다룬 책입니다.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타라가 당한 일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딸로서, 여자로서, 몹시 화가 나는 일들입니다. 아래에 자세히 타라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타라 웨스트오버를 기억해주세요.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모르몬교 광신도인 부모에게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벅스 피크'라는 가족이 경영하는 시골의 폐철 처리장에서 16살까지 고철들을 분류하는 위험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부모는 그녀에게 모르몬교의 교리만 가르치고, 학교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출생증명서도 없어서 나라에서 주는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화장실에 다녀온 뒤 손을 씻어야 한다는 기본 위생 관념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신 질환과 종교관이 결합한 망상으로 가족들을 괴롭힙니다. 공교육과 정부, 현대 의학 모두를 거부하고 자신만 따르도록 강압합니다. 그리고 종말이 온다고 생각해, 지하에 큰 벙커를 짓습니다. 상식밖의 많은 무기와 비상식량을 모으며, 내내 불안과 공포 속에 삽니다.


어머니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가끔 현실에 발을 디딘 모습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아버지에게 동조하며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합니다. 그녀는 타라에게 양약을 먹으면 불임이 된다고 주장하고, 가족들이 아프면 자신이 제조한 검증되지 않은 약초물을 먹게 합니다.


타라는 이런 고난을 헤치고, 셋째 오빠 타일러의 권유로 17살에 대학교에 가게 됩니다. 다행히 타라는 학습능력이 뛰어나 브리검 영 대학교의 최우수 학부상을 받으며 졸업합니다. 그 후 장학금으로 케임브리지대 석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 박사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겪은 유년시절을 책으로 집필해 내었습니다.







세상에 없는 아이였던, 타라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이라도, 복지의 사각지대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그만큼 크고 치명적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절대적일 수 있는지 타라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타라의 부모는 고의로 출생을 숨기고 법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아 타라를'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타라는 학교에 다니고, 아프면 병원 치료를 받을 기본 권리들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타라가 자신들의 소유물이라 생각해서 그랬을까요? 부모가 타라를 엄연히 다른 인격체존중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저의 어린 시절이 겹쳐져,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과격한 일은 오래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꽤 벌어지고 있습니다. '착한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자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혹은 ''이라서 나머지 가족을 더 잘 공감해 주고, 조용히 순응해줬으면 하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책임만큼이나 그들의 절대적인 권력을 용인해주는

사회적 풍조는 참 위험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여자답다’, ‘착하다’는 말들로 가스라이팅 되곤 합니다. 어리석은 인정 욕구를 이런 말들로 채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타라가 힘들게 얻은 '교육' 힘을 응원했습니다.



부모의 가스라이팅도 범죄가 됩니다


“가난과 무지는 수치스러움을 느낄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더 본질적인 감정—나를 보호해주지 않은 부모에 대한 감정-이 수치스러웠을 뿐이다. 우리는 감정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 나의 속 감정은 무엇일까.” '배움의 발견, p.178


이 문장은 타라가 연인을 집에 데려가 부모님께 소개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사고로 얼굴의 반이 일그러졌기 때문에 부끄러웠던 것도 아니고, 가족의 가난함에 자신의 체면이 깎일까 두려웠던 것도 아닙니다.


바로 넷째 오빠 ‘숀’ 때문입니다. 숀은 타라에게 반복적으로,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른 인물입니다. 타라는 어릴 때 숀에게 맞다가 기절하기도 했고, 칼에 찔릴뻔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이를 외면했습니다. 오히려 숀을 부추겼다고 타라를 탓했습니다.


어린 타라는 그렇게 자존감을 잃어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집을 떠나 멀리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자,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들이 결코 사소한 다툼이 아닌, 끔찍한 아동 학대였다는 사실을요.


평소 그녀의 부모는 모르몬교의 교리를 앞세워 사탄과 세상의 종말로부터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며,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처럼 꾸몄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한 양이 되라고,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타라를 심리적으로 지배했습니다. 실제로는 잘못된 양육법으로 자녀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 무책임하고 비열한 범죄자이였음에도 말입니다. 타라는 숀의 살벌한 폭력을 묵인하고 나아가 자신에게 죄책감을 씌운 부모에게 사무치게 분노합니다. 그런 고통에 공황을 겪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종종 이런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너를 사랑해서 그랬어.”, “너를 위하는 마음이야.”

라며, 자신을 포장해 상대의 신뢰를 얻고, 점차 상대의 시야를 흐리게 만든 다음, 결국 이용하는 사람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은근한 압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나요.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낀다면, 『배움의 발견』을 읽고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오길 바랍니다.


정말 좋은 사람, 정말 당신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결코 당신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옳은 길을 가도록 지지 해줍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사랑해



그런데 타라는 뜻밖에 부모의 사랑을 끝까지 갈구합니다. 왠지 타라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 주체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더 힘들다'는 타라의 고백은 제 가슴이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족 내 폭력과 배신 속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타라의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타라는 자신의 유년기를 담담하게 기록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부모에 대한 직접적인 분노나 원망의 표현이 현실에 비해 너무 적어서 의외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조심스럽고 절제된 문장들 속에 타라의 마음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부모가 책을 읽고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이요.


타라는 'Educated'됨으로써 세상의 상식과 지성을 갖게 되었지만, 그 대가는 가족이었습니다. 부모의 왜곡된 사고방식을 더이상 따를 수 없었기에, 갈등은 불가피했습니다. 결국 외할머니의 장례식에도 초대받지 못해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타라는 포기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자신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간청하지만 끝내 거절 당합니다. 또 자신의 부모와 사이가 멀어진 이모를 찾아가, 그녀에게서라도 가족의 온기를 느껴보려 합니다.


상처를 준 부모인데도, 타라는 여전히 그들을 원합니다. 이것이 천륜이란 걸까요?


하지만 저는 타라가 자신을 다치게 한 존재를 사랑하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단단한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로, 단번에 '잘못된 인연'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했습니다.


가족과 연결되어 싶고, 동시에 힘들게 쌓아온 ‘Educated’를 잃고 싶지 않은 타라.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녀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타라는 그런 부침에서 벗어났을까요?






P.S. ‘Educated’의 다양한 해석


책의 제목인 'Educated'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타라가 학교에 다니고 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다 보니, 'Educated'는 단순히 학문이나 지식의 축적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타라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Educated’을 받아 왔습니다. 모르몬교 교리를 비롯한 부모의 왜곡된 세계관 역시, '가정교육’이자 타라의 첫 'Educated'였습니다. 내용이 옳든 그르든 간에요.


그리고 후에 박사가 될 만큼 많이 공부하면서, 부모의 '가정교육'을 의심하고 전에 배운 것들을 깨뜨려 나갑니다. ‘비판적 사고’와 ‘분별력’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타라가 말하는 진짜 ‘Educated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결국 'Educated'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히 학교 교육을 넘어, 내면의 각성과 자아의 재정립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번역 제목인 '배움의 발견'은 그 의미를 잘 전달합니다. 타라는 다양한 방식의 배움을 거쳐 세상을 보았고, 결국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으니까요.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 문득, 제 자신이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어떤 Educated을 받아 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말입니다.


타라가 가족과 자신의 배움 사이에서 완성형이 아니듯, 저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더 새로운 내가 되길 바라며 브런치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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