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에도 규칙이 있다
결혼생활 19년 차. 이제 나에게 있어 혼자 먹는 ‘혼밥’은 일상이다.
평일 점심은 약속이 없는 한 집에서 혼자 먹는다.
요리하고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머릿속에 to-do-list 와 같은 to-eat-list가 존재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요즘 큰 시련이 닥쳤다. 40대가 되면서 체중이 급격하게 늘은 것이다.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 먹으라는데, 인생 낙의 70% 이상이 음식에 있는 나에게는 정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많은 검색 결과, 나는 간헐적 단식과 운동을 선택했다.
오후 6시에 먹으면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공복을 유지하는 것이 간헐적 단식의 핵심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먹는 혼밥에 더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세끼를 다 거하게 차려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맛있고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싶었다.
한 끼가 더없이 소중해진 나는, 나만의 혼밥 규칙을 세우기로 했다.
1) 정성껏 차려 먹는다.
친정 엄마는 과자나 초콜릿도 그냥 봉지 째로 주시는 법 없이 내용물만 작은 찬기에 얹어 트레이에 올려 가져다주시곤 하셨다.
냉장고에 넣는 저장용기와 식탁에 두고 먹는 그릇도 구분해 사용하셨다.
반찬은 저장용기에서 먹을 만큼만 꺼내, 찬기에 덜어내 담곤 했다.
밥상 위의 그릇들은 같은 종류로 통일감 있게 놓여 있었다.
그렇게 자라온 나 역시 혼자 먹을 때도 잘 차려 먹고 싶었다.
식구들과 함께 먹을 때처럼 예쁜 식기에 음식을 올리고,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대접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음식의 종류나 색에 따라 그릇을 고르고, 정갈하게 나만을 위한 한 상을 차린다.
음식을 낼 때면 귀한 손님에게 드릴 것처럼 맛깔스럽고 깔끔해 보이도록 신경 쓴다.
식탁에 앉아 그렇게 차려진 음식을 바라보면, 마치 누군가가 날 귀빈으로 여겨 정성껏 차려준 상을 받는 듯해 기분이 좋아진다.
2) 영양소를 골고루 챙긴다.
귀한 한 끼에 5대 영양소가 빠짐없이 들어가도록 노력한다.
간편하게 한 끼 때우기에는 인스턴트 라면 종류만 한 것이 없지만, 그렇게 되면 영양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되도록 직접 요리해 먹으려 노력하고, 라면류를 먹게 되면, 단백질과 비타민을 채울만한 재료들을 곁들인다.
건강 검진을 하면 늘 지방량이 근육량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편이다.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려는 다짐은 늘 하건만, 실행은 마음먹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단백질 섭취라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40대 여성은 근육 유지를 위해 체중 1kg당 1g 정도의 단백질 섭취가 권장된다고 한다.
몸무게에 비례해 꽤 많은 단백질이 필요한 나는, 병아리콩, 렌틸콩, 닭가슴살과 반숙란을 항상 준비해 두고, 식사 중 단백질이 부족해 보이면 이 중 한 가지를 꼭 함께 챙긴다.
3) 설거지는 최대한 줄인다.
마음을 담아 정성껏 차려낸 자신을 위한 밥상일지도, 설거지가 많이 나온다면?
시리얼 한 그릇으로 때울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고, 설거지가 귀찮아 집에서 차려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 조리는 최대한 팬 하나로 끝내고, 칸이 나뉜 접시나 크기가 넉넉한 오목한 그릇을 자주 활용한다.
음식을 만들 때도, 담을 때도, 최대한 설거지가 덜 나오게 하는 것이 혼밥이 즐거워지는 또 다른 팁이다.
설거지 양이 아무리 적더라도, 반드시 식사 직후에 끝내도록 한다.
식후 설거지를 습관화하면 그릇이 쌓이지 않아 뒷마무리까지 즐거운 혼밥 시간을 보낼 수 있다.
4) 냉장고를 부탁해!
요리를 하다 보면 자주 식재료가 애매하게 남는다.
냉장실 서랍에는 당근 반 개, 애호박 조금, 데친 브로콜리 너 다섯 조각과 같은 자투리 채소가, 선반에는 차갑게 굳은 구운 고기나, 두부 반 모, 딱 1인분 남은 수프나 국이 종종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혼밥에는 이런 식자재가 참 유용하다.
덮밥을 만들어 국과 곁들이거나, 작은 주사위 크기로 자른 콥 샐러드를 만들어 수프와 함께 내면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이런 잔반들은 주먹밥이나 파스타, 토르티야의 속재료로 활용해, 1인분 식사를 만들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혼밥만을 위한 재료를 따로 준비하기도 하지만, 냉장고의 각종 재료들을 조합해 멋지게 한상을 차려 먹고 나면 왠지 그 식사도 참 만족스럽다.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만 몸이 여기저기에서 고장 신호를 보낸다.
이럴 때마다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은 음식이 당신이 됩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일주일에 다섯 번, 혼밥 시간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은 아무래도 그림자다.
아침에 잠에서 깨서 다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다른 가족을 챙겨야만 하는.
하지만 가족들이 각자의 직장으로, 학교로 모두 떠나고 나 혼자 집에 남아 있을 때면, 오롯이 나만을 위해 움직이는 그런 능동적인 존재이고 싶은 마음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안에서 나를 정성껏 챙기고 존중해야, 세상 속에서도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믿음으로 오늘도 나는 정성껏,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5대 영양소가 고루 들은 한 그릇 음식을 차려 나에게 대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