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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국어 교과서 있으세요?

국어 교과서는 친절한 글쓰기 안내서였다

by 샐리

나는 요즘, 현직 작가 선생님께 글쓰기를 배우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예전에는 '글쓰기 모임'에서 각자 쓴 글을 나눠 읽고, 서로 합평하며 글쓰기를 익혔다. 친구들끼리 만든 모임이다 보니, 수다로 끝나는 때가 많았다. 물론 그 덕에 즐겁고 꾸준히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내 글솜씨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워 보면 달라질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현직 작가님의 수업을 알게 되었다. 수업료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신청을 결심했다.


역시나, 작가 선생님은 레벨이 달랐다.

글을 써서 제출하면, 선생님은 한 줄 한 줄 꼼꼼히 분석하고 날카롭게 지적해 주신다. 그러고 나서는 나의 장점을 알려 주시며, 따뜻하게 격려해 주신다. 덕분에 내 초고는 줄줄이 지워지고, 너덜너덜해지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괜찮은 한 편의 글이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중학교 아들의 국어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아이가 “엄마, 여기서 퀴즈 좀 내줘” 하고 국어 교과서를 가지고 왔다. 책을 펼쳐보니, 아이가 공부하던 단원은 다름 아닌 ‘맥락을 담은 글쓰기’였다. 그 순간, 내가 듣고 있는 글쓰기 수업이 순간 떠올랐다.


맥락에 맞게 글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가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요.”

작가 선생님이 늘 강조하시던 그 '맥락'을, 중학교 국어책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뜻밖의 만남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학생, 나도 글을 잘 쓰지 못해서, 고민한단다


그리고 서둘러 국어 교과서를 읽어보았다.


“누구나 글을 쓰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다정할 수 있을까. 예전 내가 쓰던 교과서엔 없던 친절함이다.

글쓰기가 나아지지 않아, 수업까지 듣고 있는 내 답답함을, 교과서가 알아주고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줄은 더 짠하게 공감되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면서 하나의 글을 완성할 때의 성취감은 무엇보다 크다.”


맞다. 그 기쁨, 나도 안다. 매번 힘들고 막막하지만,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을 때의 그 쾌감. 그 맛을 알기에, 나는 지금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과서는 작가님과의 글쓰기 수업과 핵심이 같았다.

굳이 비교하면 교과서 내용은 좀 더 간략하고 쉽게 쓰였고, 선생님의 수업은 나에게 맞춤 설명이라는 것이다.


만화 주인공이 하는 고민은 어쩜 나랑 똑같을까?


교과서를 자세히 읽어보았다. 다음 페이지에는 만화까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맥락 있게' 글 쓰는 방법 설명했다.

글쓰기 과정은 4단계다.


1. 계획하기
2. 내용 생성하기
3. 내용 조직하기
4. 초고 쓰기와 고쳐쓰기


교과서는 먼저,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땐 ‘계획하기’부터 하자고 말한다.

글의 독자, 주제, 목적, 매체를 설정하면 글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선생님과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이 부분을 배웠다. 선생님은 인스타와 브런치, 블로그글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인스타 같은 SNS에는 좀 더 가벼운 글, 예를 들면 사진을 동반한 일상생활글을 올린다. 반면 브런치나 블로그에는 수업 때 제출하는 글처럼, 주제에 맞게 감상을 담은 에세이가 좋다고 하셨다.


다음은 ‘내용 생성하기’. 자유연상이나 생각 그물 등의 방법으로 글에 들어갈 내용을 떠올리는 단계다. 서평을 쓴다면,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찾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식이 부족하다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료를 조사하고, 그중 필요한 것만 선별해 정리하면 된다.

역시 이 부분도 수업 중에도 들었다. 여기에 해당하는 선생님의 설명은 '무조건 많이 써봐라'였다. 먼저 풍성하게 쓰고 나중에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자고 하셨다.


세 번째 단계는 ‘내용 조직하기’다.

생각과 자료를 바탕으로 개요를 짜고, 글의 흐름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처음, 중간, 끝 — 이 단순한 구성이 글을 더 탄탄하게 만든다고 교과서는 알려준다.


선생님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서론은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게 쓰고, 본문에서 그 맥락을 풀어내며, 결론에선 앞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거나, 여운을 주는 이미지로 마무리하라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은 ‘초고 쓰기와 고쳐쓰기’ 단계다.
문맥에 맞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골라 문장을 구성하고 더 나은 표현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글은 점점 매끄러워진다.


선생님은 문단을 구성하는 유용한 팁을 알려 주셨다.

먼저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그 다음 문장에서 구체적인 설명들 자세히 구체적으로 덧붙이면 된다고 하셨다. 게다가 '그러나', '하지만'같은 대조를 쓰면,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이 더 선명해진다고 하셨다.









그동안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에도 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지루한 훈시만 가득하다고 여겼던 국어 교과서가, 알고 보니 친절하고 명확한 안내서였다.

이해가 쉽도록 단어 수준을 낮췄지만, 의미는 낮추지 않았다. 학생들이 핵심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만화에 도표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 부분도 훌륭했다.


감사하다.
이렇게 다시 교과서의 가치를 발견하고, 진짜 배움이란 먼데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어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학교로 돌아 간다면...

그때 진지하게 잘 배우고, 그 후 30년간 계속 썼다면, 작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단 허황된 상상도 해봤다.


앞으로 글을 쓸 때, 책상 한편엔 국어 교과서를 두기로 했다.

물론 현직 작가님의 족집게 과외도 빼놓을 수 없다.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면 더 잘하지 않겠나.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문득 재밌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3 수험생을 둔 부모가 애타는 마음으로 점집에 갔다.

"우리 애가 어떻게 하면 sky를 갈 수 있을까요?"

점쟁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응, 국영수 위주로 교과서를 열심히 보면 돼."


점집에 복채까지 내고서, 누구나 다 아는 '국영수'와 '교과서' 타령을 듣다니.
역시, 클래식은 영원한 것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배웠다고 단번에 글을 잘 쓸 일은 없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있다.

가까운데 스승이 있다.

바로 교과서

교과서가 찐이다.


*요즘 교과서는 pdf로도 볼 수 있으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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