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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아주 사적인 혼밥의 역사

혼밥은 자유다

by 김현정

내 혼밥은 역사가 꽤 길다. 스물한 살에 시작된 나의 혼밥 라이프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스무 해 동안은 엄마표 삼시세끼를 누리며 살았고 대학 신입생 때는 하숙집 할머니가 해주는 눈칫밥을 먹고 살았다. 수천 번은 족히 되고도 남을, 나의 길고 긴 혼밥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대략 세 개 정도의 키워드로 압축될 것 같다. 오늘은 그중 첫 번째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내 혼밥의 키워드: 자유

첫 번째 키워드자유다. 혼밥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뭐가 됐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대학에 입학한 첫해, 일 년간 하숙 생활을 했다. 지금 같은 ‘아줌마 정신’이 그때도 있었더라면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 앞에서 실없이 웃고 떠들며 매일 파티 라이프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나는 친밀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넬 사교성 같은 게 없는 INFP의 전형이었다.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도 문제였다. 건더기가 거의 없는 멀건 국늘 맵고 짠 반찬만 올라오는 식탁하숙집 할머니의 전쟁터였다. 어떻게든 식비를 줄이려고 애쓰는 하숙집 할머니의 고군분투가 늘 식탁 위에 펼쳐졌다.

하숙 생활 1년 만에 얻은 원룸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룸메이트와 방을 나눠 쓰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원할 때 화장실을 이용하고 빨래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건 원하는 음식을 원할 때 먹을 수 있는 자유였다.


반 평짜리 주방은 나의 실험실

원룸을 얻어주고도 엄마는 걱정이 늘어졌다. 소꿉장난을 하듯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그릇 몇 개, 수저 서너 벌을 작은 싱크대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으면서 엄마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때의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엄마가 결혼하고 주부가 되었던 스물셋에서 겨우 두 살이 모자랄 뿐이었지만, 엄마는 어린 아가를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걱정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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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걱정은 기우였다. 화구가 두 개 달린 짙은 초록색 가스레인지는 순식간에 나의 실험실이 됐다. 조그만 하얀색 냉장고에는 늘 콩나물, 부추, 버섯, 새우, 김치 같은 식자재가 들어 있었다. 자취생의 냉장고치고는 제법 구색이 갖춰져 있었다.


냉장고를 메운 갖은 재료는 내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어릴 때 매일 저녁 엄마가 틀어놓았던 요리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왔던 갖은 요리 비법,

엄마의 어깨너머로 훔쳐봤던 화려한 칼질,

엄마의 조수 역할을 하며 익힌 요리 방법.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손바닥만 한 주방에서 되살아났다.


부추전과 콩나물국밥

나의 첫 도전부추전이었다. 싱싱한 부추에 길쭉하게 자른 양파와 버섯, 잘게 다진 새우를 섞은 다음, 부침가루 반죽에 잘 버무렸다. 제법 그럴듯해 보였지만 기름만 잔뜩 먹은 뻣뻣한 맛이었다. 실패의 기억을 교훈 삼아 반죽에 들어가는 물의 양을 늘렸다. 두 번째 부추전은 지나치게 흐물거렸다.


딱 알맞은 농도로 적당히 바삭하게 굽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비법을 찾아냈다. 맛있는 부침개를 만들려면 숟가락을 따라 적당히 흘러내릴 정도의 농도로 반죽을 만들고 충분히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기름을 넉넉하게 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시절의 수없는 실패 덕이었다.


신문 한 귀퉁이에 적힌 전주식 콩나물국밥 레시피도 나를 홀렸다. 먹어본 적도 없는 콩나물국밥의 맛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다짜고짜 멸치와 말린 밴댕이, 다시마, 대파 뿌리를 넣고 육수부터 시원하게 뽑았다. 진한 육수에 밥과 다진 김치,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끓여낸 콩나물국밥은 일품이었다.


수플레 팬케이크.jpg


수플레 팬케이크

뭐니 뭐니 해도 그 시절 내 혼밥의 정수라 할 만한 메뉴는 수플레 팬케이크였다. 요즘에야 수플레 팬케이크가 유행이지만 그때는 길거리 카페 어디에서도 수플레 팬케이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먹어본 적도 없는 수플레 팬케이크를 상상했던 건 어린 시절에 엄마가 만들어줬던 카스텔라 때문이었다.


엄마가 해주는 카스텔라가 먹고 싶었던 날, 기억을 더듬었다. 카스텔라를 만들어 먹던 순간을 떠올리면 늘 끝도 없이 거품기로 흰자를 치던 순간이 생각났다. 팔에 슬슬 열이 오르고 근육이 뭉쳐 묵직한 기분이 들 때까지 양손을 번갈아 가며 흰자를 거품기로 치면 투명하고 끈끈한 계란 흰자가 폭신하고 새하얀 거품으로 바뀌었다.


커다란 볼 바닥에 얕게 깔려 있었던 계란 흰자를 계속 탁탁 쳐 대면 점점 부풀어 올라 볼이 하얀 거품으로 가득 찼다. 볼을 거꾸로 뒤집어도 구름 같은 거품이 떨어져 내리지 않을 때까지 흰자를 치고 또 쳤던 날들을 되짚어가며 ‘내 마음대로 수플레 팬케이크’ 만들기에 도전했다.


카스텔라를 만들 듯 계란 흰자를 잔뜩 부풀리는 게 수플레 팬케이크의 포인트였다. 몽글몽글하게 솟아오른 흰자와 노른자를 잘 섞어 연노랑 빛 반죽을 준비한 다음 은은하게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면 그때부터는 타이밍 싸움이었다.


프라이팬과 맞닿은 면이 조금씩 익어가며 윗면으로 열기를 밀어내자 달콤한 팬케이크 냄새가 훅 올라와 코를 간질였다. 윗면에 기포가 하나둘 생길 때 조심스레 팬케이크를 뒤집어 반대쪽 면을 익혔다. 바로 이 마지막 순간팔이 아프도록 저었던 머랭이 빛을 발했다. 계란 흰자 사이사이에 들어찬 공기 덕에 팬케이크가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자 괜히 웃음이 났다. 잘 구워낸 수플레 팬케이크를 접시에 올려놓고 먹으니 폭신한 추억을 한 입씩 베어 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갈망은 언제나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의 혼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그때만큼 절실하게 오직 내 입만을 위한 혼밥에 열을 올렸던 시절은 없다. 내가 원할 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갈망 하나로 마음껏 혼밥을 즐겼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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