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계 캐나다인이 이야기하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빼앗긴 정체성
나는 ‘어디서 왔냐’는 물음에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한국’이라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내게 ‘집’이란 물리적인 공간이자, 나의 국적과 정체성을 의심 없이 설명해주는 확실한 좌표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평생 자신의 집처럼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아프라카계 캐나다인 Jinor(가명)을 만나며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현재는 동아프리카에서 4년째 살고 있다는 Jinor. 그는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지만, 그곳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거나 자신만의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각종 통제와 봉쇄 조치가 논의되던 캐나다를 떠나 ‘그 모든 소란이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렸고, 이제는 그곳을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줄곧 형제애, 자매애 같은 유대감을 느껴요. 사람들과 정말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죠. 솔직히 말해서, 캐나다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우리가 흔히 ‘다문화에 관용적인 나라’로 알고 있는 캐나다에서, 그는 왜 태어난 곳에서조차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을까.
“미국처럼 인종차별이 ‘드러나(overt)’ 있지는 않아요. 캐나다의 인종차별은 아주 ‘은밀하죠(covert)’. 테이블 아래에서 이루어지죠.”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연락하면 분명 비어있다고 했던 집이, 막상 그가 직접 찾아가고 나면 ‘방금 나갔다’는 답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다른 친구를 통해 확인해보면 그 집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미소 짓고 친절하게 행동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들은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평판을 지키고 싶어 했지만, 이면에서 그는 조용히 밀려나고 있었다.
“웃으면서 당신을 대하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뒤에서는 수많은 기회를 거절당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유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죠. ‘왜 안 되는 걸까?’ 하고요.”
눈에 보이는 폭력이나 노골적인 혐오만이 차별의 전부는 아니었다.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거절,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제.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더 깊고 서서히 병들게 하는,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벽이었다.
문득 궁금했다. 캐나다에는 아시아나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도 많지 않은가. 그들은 Jinor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상황이 달라요. 다른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죠. 차이나타운처럼요. 그들은 서로의 사업체에서 서로를 고용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해요. 그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공동체와, 유사시에 그들을 대변해 줄 모국 정부라는 ‘백업(backup)’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아니에요.”
그의 이야기는 수 세기에 걸친 아픔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선택해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온 게 아니에요.” 다른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스스로 이주해 온 반면, 그의 조상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도난당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름과 언어, 문화,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까지 송두리리째 빼앗겼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정체성이에요. ‘블랙(black)’은 국적이 아니라 색깔일 뿐이잖아요.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국적으로 불려요. 이탈리아인, 독일인, 한국인처럼요. 하지만 우리는 그냥 ‘블랙’이에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백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나는 아일랜드계야’, ‘나는 독일계야’라며 자신의 뿌리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에게는 그럴 수 있는 ‘뿌리’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들이 돌아갈 수 있는 아프리카는, 이미 유럽 열강들이 멋대로 그어놓은 국경선에 의해 갈가리 찢겨,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Jinor는 1884년의 베를린 회담(Berlin Conference)을 언급했다. 아프리카인을 단 한 명도 참석시키지 않은 채, 유럽의 강대국들이 모여 아프리카 대륙을 마치 파이처럼 나누어 가졌던 제국주의의 상징적인 사건. 그때 그어진 국경선은 부족과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철저히 착취와 통치를 위한 선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는 여전히 그 유령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분열된 공동체를 다시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그의 염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는 사람들에게 말해요. 당신은 케냐인도, 가나인도, 탄자니아인도 아니라고요. 우리는 하나예요. 우리 스스로를 하나로 생각해야 해요.”
Jinor와의 대화는 ‘집은 어디인가?’라는 나의 첫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주었다. '집'이란 단순히 국적이나 태어난 장소가 아닌, 의심의 여지 없이 기댈 수 있는 공동체와 단단한 정체성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이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찾아 헤매도 가 닿기 어려운 간절한 꿈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누려왔다는 사실과, 그 당연함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1. 은밀한 인종차별 (Covert Racism)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은연중에 작용하는 미묘한 형태의 차별이다. 이는 채용이나 주택 임대 과정 등에 내재된 암묵적인 편견, 고정관념을 담은 농담이나 언행(마이크로어그레션), 제도적 불평등 등을 통해 나타난다. 피해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께름칙하다거나 소외된 느낌을 받지만, 가해자는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별은 사회 구조 깊숙이 숨어 있어, 특정 집단의 기회와 자존감을 체계적으로 박탈하는 원인이 된다.
2. 베를린 회의 (The Berlin Conference of 1884–1885)
독일의 비스마르크 주재로 유럽의 주요 14개국이 참석했으나 아프리카 측 대표는 단 한 명도 초청되지 않았다. 이 회의를 통해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 대륙을 기하학적인 직선으로 나누었으며,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지리, 민족, 부족 분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설정된 인위적인 국경선은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 대륙의 분쟁과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3.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African Diaspora)
전 세계로 흩어진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노예 무역과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강제로 이주되었으며, 문화적 정체성과 공동체와의 연결을 상실함으로써 ‘뿌리 없음’과 정체성 혼란의 공통된 역사적 아픔을 갖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상실된 아프리카와의 연결성을 회복하고 인종차별에 맞서 새로운 문화적·정치적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예컨대 가나의 ‘Year of the Return’ 프로그램은 시민권 취득과 소속감 회복을 위한 귀환 정책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