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매니저가 포르투갈의 외딴섬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던 이유
생존을 위해 '열심'을 증명해야 하는 곳. 남들보다 더 빨라야 했고, 더 오래 버텨야 했다. 새벽 지하철과 밤늦은 모니터. 그것이 이 도시의 '당연한' 일상이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건강은 무너져 내렸고, 정신은 메말라갔다. 마침내 나는 솔직히 고백해야만 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언이었지만, 모든 이가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이렇게까지 내달려야 하는 걸까? 세상 어딘가에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을, 나는 대서양 한복판 한 작은 섬에서 듣게 되었다.
"제대로 된 삶이 아니었어요. 그냥 일, 일, 일의 무한 반복이었죠."
5년 전까지 런던의 글로벌 기업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Emmas(가명). 60대 초반인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목소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화려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누구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숨 막히는 업무 강도가 숨어 있었다.
"어떤 기간은 하루에 18시간씩 일했어요.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죠. 항상 피로에 절어 있었고, 그것이 저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깨닫지 못했어요. 완벽한 번아웃이었죠. 주변 사람들은 눈치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저는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을 뿌리째 흔든 일이 벌어졌다. 몇 개월 사이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어머니와 평생의 영웅이었던 아버지를 연달아 잃은 것이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과로, 그리고 부모님을 잃은 거대한 상실감은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그녀의 삶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치달았다.
"누군가 이 섬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죠. '엄마는 이제 섬에 가서 살 거야.'"
그녀의 결정은 충동적이었고, 심지어 '제정신이 아닌' 선택처럼 보였다. 사표를 내고, 집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땅으로 떠난다는 것. 그것도 포르투갈 본토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이나 떨어진, 북대서양 한복판의 작은 섬 '아조레스 제도(Azores)'로 말이다.
"만약 제가 그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절대 이런 선택을 못했을 거예요. 이것저것 따져보느라 망설였겠죠. 하지만 그때의 저는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 덕분에 이곳에 올 수 있었어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나 봐요."
Emmas는 가장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순간에 가장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단이 그녀의 삶을 구해냈다. 그녀의 친구는 섬으로 떠나려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계속 그렇게 일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 그녀의 퇴사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제가 사는 섬의 인구는 고작 1만 4천 명이에요. 가장 큰 교통체증이라는 게 차 9대가 전부죠."
Emmas가 사는 섬의 삶은 런던과 모든 면에서 정반대였다. 수입은 런던 시절의 7분의 1로 줄었고, 화려한 레스토랑이나 샵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내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충실하다"고 말한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바쁜 거예요.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고, 게임도 하고, 실컷 웃고 떠들죠. 여름 내내 파티가 이어지고, 바다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영장에서 헤엄을 쳐요. 모든 게 공짜죠.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기르고, 강아지와 산책하며 매일 바다를 봐요. 피곤하면 그냥 누워서 쉬면 돼요. 아무도 저를 재촉하지 않거든요."
나는 물었다. "불편하거나 지루하지는 않나요?" Emmas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물질적 풍요나 소비가 아니었다. 이곳에는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대신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느린 삶이 있다. 그녀는 이제 온라인으로 부업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지만, 일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과감히 휴일을 선언한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의 사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며 살아간다. 하지만 Emmas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과 관계, 그리고 마음의 평안에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와서 런던으로 돌아가 그때처럼 일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병이 날 것 같아요. 저는 제 아이들을 다 키워냈어요. 이제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말이에요."
그녀의 마지막 말은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 나의 삶은 지금 어떤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장 난 브레이크를 고치고 나만의 속도를 되찾는 일일지 모른다.
아조레스 제도(Azores)
포르투갈령의 아조레스 제도는 북대서양 한가운데 위치한 9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대서양의 하와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유럽과 북미 대륙 사이에 위치한다.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녹지, 고래 관찰 투어 등으로 유명하며, 최근에는 자연 속에서 느린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