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서면 낙오되는 세상 | 미국 청년 세대의 불안

부모 세대처럼 살 수 없는 세대

by morasafon

마치 트레드밀 위를 달리듯, 우리는 멈추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숨 가쁘게 뛰고 있다. 이러한 생존 불안은 영국을 여행 중인 미국인 Gabriel(가명)을 통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시대의 불안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잠시 세상을 둘러본다는 그의 모습은 처음엔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의 여행은 낭만적인 탐험이라기보다 본격적인 레이스에 합류하기 전 허락된 마지막 숨 고르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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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얻죠”


내가 최근에 읽은,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을 다룬 책 <Can’t Even>에 관해 이야기하자, Gabriel은 깊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은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보다 적은 기회와 자산을 가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좌절을 다룬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향해 ‘왜 그렇게 나약하냐’,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힐난하지만, 책의 저자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시대가 완전히 변했어요. 예전에는 스물다섯이면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결혼해서 집을 사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과정이 훨씬 더 오래 걸리고, 더 불확실해졌어요.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죠. 우리 세대는 더 적은 보상을 위해 더 치열하게 일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부모 세대의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누구보다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 이는 비단 한국 청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국의 젊은이들 역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대신 ‘더 나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방어적인 태도로 오늘을 버티고 있었다.


왜 우리는 부모님처럼 살 수 없는 걸까?


“부모님 세대는 저희를 게으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왜 정착하지 않느냐고, 왜 가정을 꾸리지 않느냐고 묻죠.”


세대 갈등은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경제 성장기에 안정적인 직장을 기반으로 자산을 축적한 베이비붐 세대에게, 자녀 세대의 ‘불안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약함으로 비칠 수 있다. 그들은 왜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끊임없이 이직하며, 작은 행복에만 매달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고속 성장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에게 ‘노력’은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였다. 좋은 대학을 나와 성실히 일하면 집을 사고 자산을 불리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지금, 청년 세대에게 노력은 더 이상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가깝다.


Gabriel은, 그들이 안정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안정 자체가 환상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한국의 청년들이 미래를 포기하며 N포세대가 되어가는 것처럼, 미국의 청년들 역시 높은 학자금 대출과 살인적인 집값,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삶’을 꿈꾸기 어렵게 되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젊은이들은 ‘부모님처럼 살 수 없는’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워라밸은 사치가 아닌, 생존의 문제


언뜻 보기에 한국과 서구의 근무 문화는 정반대처럼 보인다. 한쪽은 조직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는 강도 높은 장시간 근무가, 다른 한쪽은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워라밸’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Gabriel의 이야기는 화려해 보이는 워라밸의 이면에, 결국 동일한 압박감이 숨어 있음을 드러냈다.


그에게 서구 기업의 워라밸은 직원을 위한 복지라기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충분한 휴식은 번아웃을 막고, 재충전된 직원은 더 높은 생산성을 내는 자원이 된다. 결국 워라밸조차 ‘더 잘 달리기 위한’ 효율적인 휴식인 셈이다.


압박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국은 해고가 어려운 ‘잡 시큐리티(Job Security)’를 대가로 조직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면, 미국은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동력으로 삼는다.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낙오한다는 공포. Gabriel은 그 압박의 실체를 이렇게 표현했다.


“결국 모두가 청구서(bills)를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건 똑같아요. 돈을 벌지 않으면 뒤처지니까요.”


결승선 없는 레이스


“계속해서 따라잡아야 해요.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요.”


대화의 끝 무렵 Gabriel이 남긴 말이다. 그의 여행은 이 지독한 레이스가 일단 시작되면 다시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에게 허락한 마지막 유예기간이었을 것이다. 멈춰 서는 것이 곧 낙오를 의미하는 세상. 결승선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밀레니얼 세대 (Millennial Generation)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경험했으며, 이전 세대에 비해 개인의 가치와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경제적 불황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부모 세대보다 낮은 경제적 안정성을 경험하는 첫 세대로 꼽히기도 한다.


2. 베이비붐 세대 (Baby Boomer Generation)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전후 경제적 풍요와 고도 성장기를 배경으로 성장하여,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사회의 고령화와 세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논의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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