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장소가 아니라, 내 존재가 완성되는 세상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곳’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더 나은 시스템, 더 안정된 직장, 더 아름다운 자연. 하지만 삶은 때때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기도 하나보다. 에콰도르. 남아메리카 대륙의 적도에 걸쳐 있는 나라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그곳에, 뉴질랜드 사람인 Martair(가명)는 25년째 살고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먼 곳에 정착하게 했을까.
Martair는 자신을 ‘키위(Kiwi)’라고 소개했다. 날지 못하는 새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부르는 뉴질랜드 사람. 그녀는 청춘을 여행으로 채웠다.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었고, 고국에서는 사회복지사로 10년간 일했다. 안정된 삶이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늘 새로운 세상을 향해 있었다.
“남미에 가본 적이 없었어요. 다음엔 저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친척과 에콰도르의 사촌을 만나러 떠난 길이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시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는 모두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 하지만 Martair가 본 것은 뉴스의 헤드라인 너머에 있었다.
“에콰도르 사람들의 겸손함과 따뜻함에 반했어요. 마치 시간을 거슬러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죠.”
그녀가 도착했을 때 에콰도르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은 정반대였다. Martair는 낯선 이방인이었던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주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들은 묻더군요. 어디서 왔냐고. 뉴질랜드라고 하니, 그게 어디냐고 되물었어요. 캥거루와 코알라가 있는 호주 근처라고 설명해도 잘 모르더군요. 하지만 그들은 저라는 사람을 그냥 믿어줬어요. 그걸 ‘맹목적인 믿음(Blind Faith)’이라고 하죠.”
낡고 허름한 집에서 스스럼없이 수프 한 그릇을 나눠주던 사람들. 가난했지만 웃음이 넘치던 아이들. 콧물을 흘리고 이가 빠진 얼굴로 행복하게 뛰어놀던 모습은 그녀에게 뉴질랜드에서 보냈던 가장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화려한 풍경이나 안정된 시스템이 아닌, 사람들의 온기가 그녀의 마음을 붙잡았다. 그 순간 그녀는 이곳이 자신의 다음 집이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Martair의 결정은 단순한 해외생활이나 이민을 넘어, 더 깊은 연결을 의미했다. 그녀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Māori)의 피를 이어받았다. 뉴질랜드의 토착민인 그녀는 남미의 원주민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폴리네시아인이 남미에서 건너왔다는 학설도 있어요. 실제로 아마존의 한 부족 여성들은 마오리족 여성들처럼 턱에 문신을 새겨요.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자신의 뿌리와 닮은 사람들을 발견한 땅. 그녀는 이곳의 성장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녀는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서 답을 찾았다. 영어가 이들의 미래에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 믿고, 영어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꿈은 수십 년이 흘러 현실이 되었다. “제 제자 중 한 명은 지금 미국의 한 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일해요. 어느 날 연락이 와서 말하더군요. ‘선생님 덕분에 꿈을 이뤘어요!’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Martair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을 넘어, 한 공동체의 미래에 자신의 삶을 보탰다.
Martair 이야기는 진정한 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집이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나의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완성되는 곳이 아닐까. 어쩌면 오늘도 우리는 그런 나의 자리를 찾아 헤매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 마오리족(Māori)
마오리족(Māori)은 폴리네시아 동부에서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로 이주한 원주민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땅의 사람'이라는 의미의 '탕가타 페누아(tangata whenua)'라고 부르며, 뉴질랜드를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의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칭한다. 마오리족은 얼굴과 몸에 역사와 정체성을 새기는 전통 문신 '타 모코(Tā moko)'와 집단 무용인 '하카(Haka)' 등 독특하고 풍부한 고유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마오리족의 언어, 신화, 예술은 오늘날 뉴질랜드 정체성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룬다.
2. 키위(Kiwi)
뉴질랜드 사람들을 일컫는 애칭이다. 이는 뉴질랜드의 국조(國鳥)이자 고유종인 날지 못하는 새, 키위에서 유래했다. 작고 독특한 생김새의 이 새는 뉴질랜드의 상징이 되었고, 자국민을 지칭하는 친근한 별명으로 널리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