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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블랙 Sep 02. 2019

우울하고 푸른 땅, 스코틀랜드-1

출발하는 길에.

지친 나날들을 보냈다.

회사는 일이 너무 많았다.


많다 못해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소화가 되다 못해 막 토하려던 참이었다.


하는 사람은 계속 일이 늘어나고,

안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안 한다.


한국사회에선 거절하지 않는 것이 미덕,

로열티란 허울 좋은 명분보다,

옹졸한 책임감과 자존심으로 버텨냈다.


오늘 할 일...


비가 조금만 와도 침수되는 우리 회사 입구.. 이상하게 보고 있으면 힐링된다. 나 대신 토해주는 느낌



상사들에게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뿌듯함은, 

자정 즈음 퇴근하는 나날들에 지쳐서 빛이 바랬다.

뭘봐짜샤, 야근러 처음 보냐.




이년을 기다린 여행이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수레를 한 바퀴 돌아

환갑이 되셨다.

작년은 또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이기도 했다

(without divorce)

사실 미쿡나이 60

작년 10월에 비행기를 끊고 한참을 기다렸다.

가족 모두 각자가 힘든 시기에,

이 여행을 생각하며 버텼노라 털어놓곤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엄마가 보던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스코틀랜드 북쪽 땅(high land)의 스카이 섬(skye island)을 걸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터덜터덜 걷는 걸음은 어쩐지 방송을 떠나서 고행길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도 아주 우울하고 아름다운.

조세호 멀리서도 지쳐보임

스코틀랜드만 가기 심심할 것 같아서,

아일랜드도 껴 넣었다.

영화 once의 주인공들처럼, 또 어떤 버스커들이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됐다.


아빠는 스카치위스키의 양조장들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기네스 공장에서 막 뽑아낸 생맥주를 먹을 수 있다니 두말도 안 하시고 '완벽하네’하셨다.




출발 전날 영준형이랑 사내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원래 가족 여행하면 세 번 정도 대판 싸워"라는 말에,

"우리 가족은 친구처럼 지내서 그럴 일 없어"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늘 모여서 농담하고 떠들고, 아빠가 심각해지면 너무 진지하다고 놀리고, 그런 세월들이 모여 여기까지 흘러왔다.


공항으로 가는 길,

타다를 불러서 타던 도중 사소한 의견 충돌로

내가 역정을 냈다.


돌이켜보면 별 일 아닌데도,

무언가 이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 출발부터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부모님은 여기저기 많이 다니셨어도 먼 타국으로의 배낭여행은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동생도 영어를 잘하고, 출장을 많이 다녔어도 여행으로선 첨이었다.


자금적인 부분도(이게 컸나), 잡다한 예약부터 계획도, a-z까지 혼자 다 했다.

그게 책임감이라 믿었는데, 내심 서운했다보다. 가족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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