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ich
우리나라의 한글처럼,
스코틀랜드는 Gaelic이란 전통 언어가 있다.
슬프게도 지금은 5%의 스코틀랜드인만
이 Gaelic을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학교에서
Gaelic을 의무적으로 교육한다.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는 여행자는 거리 곳곳에서,
도로의 표지판에서 영어와 함께 표기된 이 Gaelic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말 중에 Dreich라는 단어가 있다.
"드뤼-히"라고 발음되는 이 단어는,
비가 정말 많이 오고 갤 기색이 없는 날씨,
나아가서 그런 날씨에 느끼는 음울한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영어로 따지면 gloomy 같은 느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른 것을 파악할 수 있다.
8.15일 여행의 첫날.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세계 3대 축제라 하면 꼭 꼽히는 것이
1. 브라질의 삼바
2.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그리고
3. 스코틀랜드의 프린지 페스티벌
혹은 일본 삿포로의 눈축제를 꼽는다.
(둘 다 경험해본 나로서는 삿포로가 어딜.. No 눈축제)
마침 8월은 에든버러 도시 전체가 축제장으로 변하는 프린지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이 축제를 한 번 구경하고 싶어서
1년 전에 날짜를 맞춰서 티켓을 샀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 축제가 있었는지도 까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항에 내려서 'Enjoy Fringe'같은 슬로건을 보고서야
아 맞다.. 이거 보러 왔지..
한국시간으로 8.15 자정이 막 넘는 시간, klm을 타고 우리는 출발했다.
전날 자정까지 야근도 하고,
며칠째 잠다운 잠을 못 잤다.
기대, 일주일 넘게 회사를 비워야 되는 불안,
여행에 대한 걱정 등등이 뒤섞였다가
비행기에 타자마자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막 깊은 잠에 빠지려는 찰나,
엄마가 어깨를 툭툭 친다.
선반 위 엄마 가방에서 물건 좀 꺼내 달란다.
분명 엄마 옆에 아빠 안 자고 있는데.. 화가 났다.
물건을 꺼내드리곤 깨우지 말라며 한바탕 짜증을 냈다.
14시간 가까이 걸려 에든버러에 도착했는데, 엄마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
비행기가 너무 추워서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담요를 달라고 하지 그랬냐는 질문에,
이미 한번 달라고 해서 덮었는데, 앞에 동생이 반팔만 입고 있길래 추워 보여서 덮어줬단다.
하나 더 달라 그러지 그랬냐는 말에,
이미 하나 달라그래서 받았는데 미안해서 또 못 달라고 그랬단다. 영어로 뭐라고 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고.
나한테 말하지 그랬냐는 말에,
너 깨운 게 미안해서 또 못 깨우겠어서 그랬단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왜 엄마는 여기까지 와서도,
이제 우리들이 다 커서 제 한 몸 다 건사하고 당신들을 돌봐드릴 때인데도,
바보같이 가족만 생각하다가 손해란 손해는 미련하게 다 보는지,
사실 나한테 화가 났다.
그깟 잠 좀 깨면 어떻다고, 짜증을 내서 나땜에 엄마가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짜증은 쌓여있다가,
또 엄마한테 돌아갔다.
부모님이 긴 비행에 피곤하실까 봐 3시 체크인이던 숙소 시간을,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사정해서 12시에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엄마 아빠의 느린 보행속도를 계산해서 상점에서 막 나가려는 찰나,
엄마가 지하에서 본 옷이 맘에 든다며 후다다닥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늦었고, 엄마랑 한 바탕해버렸다.
끝내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삼 세 번은 싸운다는데, 한 번으로 족했다.
여행 끝날 때까지 절대 짜증을 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여행 와서 눈물을 보이는 엄마의 얼굴은 유달리 그늘져 보였다.
카페에 들어가서 짜증내서 죄송하다 사과드리곤,
다들 각자 하릴없이 창밖을 보여 생각에 잠겼다.
Dreich, 그 날 따라 유독 더 날씨가 흐리고, 비가 주룩주룩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