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자연 속으로
전날은 저녁을 굶었다.
다이어트 때문은 아니었다.
첫날, 숙소에 들어와서 나와 엄마는 침대에 누웠다.
깨보니 아빠와 동생은 무료했는지 나가고 없었다.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어 기다렸더니,
들어와서는 피곤하다며 한 시간만 쉬고 나가잔다.
아빠와 동생이 일어나길 기다리다 또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열 시. 이미 가려고 했던 식당들은 다 문을 닫았다.
이렇게 저녁시간 하나 맞추는 것도 힘든 우리 가족,
여태 30년 동안 어떻게 죽이 맞아 잘 지냈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나가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일 년에 100일 정도를 제하고는 항상 비가 온다고 했다.
작년(2018) 4월경, 연차로 칠레를 갔었다.
파타고니아 지방에(ㅇㅇ 그 티에 있는 그 산 거기 맞음)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트래킹을 했는데,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었다.
그만큼 힘들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그런 자연 속에서 트래킹 하는 그 기분을 부모님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Highland지방에 Skyeisland에 가는 2박 3일짜리 투어를 예약했다.
그 지방은 물도 좋아서 Talisker라는 유명한 싱글몰트 위스키의 양조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스코틀랜드는 잘 몰라도 탈리스커는 다 알더라)
여행사가 운영하는 카페에 도착해서,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자리를 잡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여행 중에 계속 느끼게 되지만, 스코틀랜드에서 먹은 빵들은 정말 질이 좋았다.
같은 날, 2박 3일짜리 이 투어를 떠나는 버스는 2대였다.
여행사에서 인원을 분배하고 우리는 ian이라는 기사 겸 가이드의 차량을 타고 출발했다.
처음 차를 타고는 좀 황당했다.
우리를 포함한 16명의 승객 중 1명의 미국인을 제하고는 전부다 동양인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인 8명 한국인 6명..
예전에 모로코에서 떠났던 사하라 투어에는
여러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출발해서
그 일정 내내 이야기하는 게 정말 재밌었다, 그중 한 명과는 인연이 되어
그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1박 2일 동안 서울 투어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기대했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인종차별이 심한지 잘 안다.
요즘은 흑형, 흑누나들의 국내 위상이 좀 올라가 논외로 치더라도
동남아인들에 대한, 특히 3D업종에서 일하는 동남아인들에 대한 편견과 냉소는 정도가 지나치다.
드러내 놓고 그들을 무시하진 않지만,
나는 가끔 회사에서도 동남아 고객들에게 막대하는 동료직원들을 볼 때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견디기가 어렵다.
그런 비슷한 느낌을 여기에서도 받았다.
누구 하나 대놓고 무시하진 않지만, 시선에서 부터 느껴진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각종 인종차별적인 모욕은 다 당해봤지만(다행히 맞은 적은 없다 아직은..)
여긴 종류가 좀 달랐다.
How dare.. 약간 이런 느낌
동양인 주제에 우리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좋은 자리에서 밥을 먹어? 이런 느낌?
그들의 편견과 차별은 좀 독특했다.
남미 같은 곳에서는 조롱을 당하기도 하지만, 또 그들은 그것이 경계의 표시이기도 하다.
경계를 허물고 친구가 되면 금방 brother소리가 나오는 게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곳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차별적인 태도와 언어가 매우 깊다. 한번 세계를 지배했던 적이 있던 나라여서 그런지,
아직도 공작이니 백작이니 왕이니, 철저한 계급 문화에서 길들여진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나는 절대 이들과 진심으로 친구가 될 수 없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오해를 했던 것이다,
아 서양인들은 앞차에 동양인들은 뒤차에 나눠서 떠나는구나.
이 사람들은 우연을 가장하여 이런 식으로 동양인들을 차별하는구나.
가끔 미국의 노예해방 전 영화들을 보면 버스에 백인 칸 흑인 칸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같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조차 내가 그들에겐 불쾌하구나.
그러나 그 오해는 투어 중 우연히 그 앞차와 같은 휴게소에서 정차하면서 자연스레 풀리게 된다.
앞차도 거의 동양인이었다.
나중에 가이드 옆에 앉아서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ian이 한 말 중에
"요즘 스코틀랜드의 경제를 지탱하는 건, 여행 와서 돈을 쓰는 동양인들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 개인적으로는 당신들에게 매우 감사한다"
이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갓-자본주의
는 아니고, 어쨌든 이제는 어딜 가나 중국인들의 구매력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아프리카에서도 남미에서도 유럽에서도 심지어는 중동에서도 중국 관광객들은
추수철의 메뚜기처럼 물건들을 쓸어간다..
길은 험해지고, 비는 점점 굵어졌다.
처음으로 좋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간도 넉넉했다.
여기서도 은연중에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
뭐 그래도 음식을 많이 시키니 매니저쯤 되는 사람이 우리를 전담하여 상당히 편하게 해줬다.
(대부분 다른 손님들은 샌드위치나 핫도그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중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스카이섬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큰 나무하나가 쓰러져서 길을 막았단다.
도착 한시간 반을 남겨두고 어쩔수없이 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한참을 경유하여 4시간을 더 달려서야 스카이섬의 작은 항구마을
portree에 내릴 수 있었다.
아침 8:30에 출발한 버스는 저녁 9시가 다되서야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한국에서 떠나기전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시푸드 레스토랑에
7:30에 저녁을 예약했는데, 이미 시간은 한참 지나있었다.
거의 모든 식당이 닫거나, 꽉 차있었는데
우연히 fish and chips를 take out할 수 있는 가게를 발견해서
두어개 사다가 들어가서 맥주와 먹고 일찍 잠들었다.
기대를 전혀 안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먹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먹게될
fish and chips중에서 가장 대구가 신선했던 것 같다.
차를 오래타서 그런지 어쩐지 다들 금새 잠에 들었다.
내일은 맑은 해가 떠서 우리의 걸음길을 비춰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