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은 긴 말이 필요치 않다.
간밤에 비가 왔었다.
덜 익숙해진 시차와, 피곤한 육신 사이에서
내 의식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아득해졌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귓가에 빗소리가 들렸다.
아침해가 산등성이에 떠오를 때쯤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난 아빠는 부지런하게 전날 찍은 사진을 정리 중이었다.
문을 열자 향긋한 풀 내음이 들이쳤다.
항구마을이라 그런지 비릿한 바다 냄새도 섞여있었다,
마을에선 빵을 굽는 모양이다.
고소한 빵 굽는 냄새도 식욕을 자극했다.
8:30에 마을 중앙의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찍 눈을 뜬 탓에, 아침시간은 커피와 간단한 식사,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니 어쩐지 여행지에서 routine을 이어나가는 느낌이라,
그 나름대로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름다운 장소도, 즐거운 시간도 많았지만
portree에서 지낸 이틀간의 아침은 너무나 황홀했다.
이렇게만 지내면, 아무런 병도, 아무런 근심도 없이
평온하게 살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속시간에 아무도 늦지 않았다.
제멋대로라는 중국인들도 다 옛말이다.
고유 언어의 악센트가 좀 듣기에 시끄러워서 그렇지
여행지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교양 있고,
배려있는 느낌을 받는다.
차로 30분을 달려 fairy pools라는 곳에 도착했다.
항상 붐비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움직이는
현명한 가이드 ian덕에 어딜 가더라도 지체하는데 시간을 허비한 적이 없었다.
2시간여 트래킹을 했다.
북유럽의 자연과는 또 다르게, 스카이 섬은 정말 매력 있는 트래킹 장소였다.
항상 비가 오는 것이 default값이 되면, 비는 더 이상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다.
스코틀랜드는 도착하면서부터 그랬고, 한시도 거르지 않고 비가 왔다.
항상 비가 오는 것에 비해 시간당 강수량은 또 그리 높지 않아서,
맞기 힘들 정도의 비는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어찌 됐든 내리는 비와, 자욱한 안개
그리고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땅에 모습에
눈을 두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했다.
실제로 조금 폭이 넓은 웅덩이는, 작은 다리조차 내놓지 않아서,
디딤돌을 밟으면서 어렵게 어렵게 이동하곤 했다.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으나
부모님의 체력을 생각하면 이만하면 좋은 트래킹이었다.
걷는다, 공기를 마신다, 고갤 들어 경치를 본다.
아름다운 것은 단순하다.
구태여 한정된 언어로 수식하지 않더라도, 자연은 그 자체로 다가온다.
오후에도 이곳저곳을 다녔으나,
크게 기억에 남는 곳은 없다.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에서 동생과 파이널 판타지 같은 게임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시골마을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탈리스커 양조장에 가서
시판되지 않는 한정판을 시음해보기도 했다.
저녁에는 cucullin이란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곳 역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하기 어려웠고,
한국에서 예약을 하고 출발한 게 정말 다행이었다.
해산물은 정말 신선했다(홍합이 7할이었지만..)
느끼한 음식에 질린 엄마가 맛있게 드신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산속에서의 어둠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다,
몸을 가장 바쁘게 쓴 하루였다.
저마다 피곤의 정도는 달랐으나
온통 비에 맞아 젖은 몸과, 부른 배는
샤워를 한 후 이내 모두가 금세 잠에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도시생활이 불편하지 않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자연을 생각한다.
인간도 지구 상의 하나의 생명일 뿐,
나는 또 그저 이렇게 살아나갈 따름이다.
세속적인 가치판단에서 벗어나 아주 잠깐이라도 머리를 비우는 기분은
또 내년에도 배낭을 메게 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