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라꾸라꾸(일본 교토부 교토시)
Summertime Blues - Chris Lake, Sammy Virji, Nathan Nicholson
들어가며
2017년 봄, 엄마와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단 둘이 해외를 나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징검다리 연휴에 휴가를 하루 쓰니 4박 5일짜리 여행일정이 짜졌다.
"패키지로 가봤는데 별 먹을 것도 없고 재미없더라"
라는 것이 여행을 출발하기 전, 엄마의 일본여행에 대한 코멘트였다.
언어가 서툴다 보니 부모님은 패키지여행에 익숙해져 있었다. 패키지로 여행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은 그 나라의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일본은 단체보다는 혼자나 소규모 그룹을 위한 식당이 대부분이다. 번화가에는 큰 식당이나 이자카야들도 있지만, 진짜 맛있는 식당은 단체 관광객을 받지 않아도 장사가 잘 된다.
일본 대도시의 내수 소비는 서울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활발하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 사이트인 타베로그(tabelog)에서 평점이 높고 후기가 좋은 식당들은 이미 현지인들로 미어터졌다. 그래서 외국인이 단체로 일본여행을 가서 음식을 제대로 먹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에는 일본에 가서 이자카야, 초밥, 라멘, 편의점음식 등등 으레 일본여행을 가면 먹는 것들을 먹었다. 그러나 점점 일본에 다양한 곳을 다니며 그 지방의 특선요리들을 먹다 보니, 이만큼 맛도락 여행을 하기에 좋은 나라가 없었다.
횟수로 30회 이상. 일본여행을 밀도 있게 다닌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비행기가 닿는 대도시마다 단골 음식점이 있으며, 누구랑 가더라도 자신 있게 안내를 할 식당들이 생겼다. 라멘을 한 그릇 먹더라도 지역의 특색이 느껴지는 식당들을 골라 다녔다. 홋카이도는 된장으로, 규슈지방은 돼지로, 오사카와 교토가 위치한 간사이지방과 도쿄가 위치한 관동지방은 도시의 거대함 만큼이나 다양한 라멘 스타일을 구사했다. 서울에 충청식, 호남식, 강원도식, 부산식, 제주식 식당들이 을지로에, 여의도에, 연남동에, 상수에, 해방촌에, 성수동에, 압구정에 위치하는 것과 같았다.
뿐만 아니라 꼭 일식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맛있는 이탈리안과, 맛있는 중국요릿집이 있는 것처럼 일본도 '재패니스 프렌치'나 '재패니스 차이니스', '재패니스 이탈리안'등의 장르가 있었다. 당연 으뜸은 프렌치였다. 도쿄 중심부에서 일본식 식재료로 구사하는 프렌치 파인다이닝은 비싼 가격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견줄만한 식당이 별로 없을 정도의 최고의 요리 수준을 자랑했다.
일본의 단골식당 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키친 라꾸라꾸이다. 이 식당은 아키라라는 주인할아버지 혼자 운영하는 식당인데, 엄마와 여행하다 우연히 발견한 후 인연이 되어 그 이후 교토를 갈 때마다 미리 약속을 잡고 방문하는 식당이다. 주기적인 방문만큼이나 추억도 잔뜩 쌓였다.
첫 방문
료안지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한 가문의 정원이었던 이곳은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돌정원(석정)이다. 정갈하게 정리된 마당의 돌멩이들이 사색에 잠기게 해 주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 보니 화장실이 급해졌다. 나는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무작정 시내 쪽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엄마가 건강이 지금보다 훨씬 좋을 무렵이었다. 당시에 한참 여행을 다니던 엄마는, 하루에 이만보까지도 거뜬히 걷곤 해서 같이 다니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식당 하나를 발견했는데, 외형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녁 먹을 때도 되었겠다 오늘은 여기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가게 대문의 손잡이를 잡아 밀자, 녹슨 문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열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주방 천장에 걸려있는 팬을 비롯한 각종 조리도구 들이었다. 묵은 때가 있는 곳도 있었지만, 자주 쓰는 식기나 조리대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외국인들이 종종 찾는 듯 영어로 메뉴가 쓰여 있었다. 그중, 인당 5천 엔짜리 Akira's Course가 있었다. 나는 이걸로 두 개를 달라 주문했고, 아키라는 나와 엄마에게 음식 알레르기가 있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답하니 그럼 알아서 내어주겠단다. 나는 Yamazaki 하이볼을, 엄마는 물 한잔을 미리 마시며 음식을 기다렸다.
첫 방문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사진을 별로 찍지 못했다. 그래도 그중 기억나는 것은, 귀여운 생선 접시에 해산물 요리 위주로 담아서 내어줬던 것과, 음식이 상당히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요리를 잘하는 어르신 집에 초대를 받아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 간도 딱 맞았다. 일본에서 엄마밥의 향수를 느낄 줄 상상도 못 했다. 정작 엄마는 바로 옆에서 함께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구글 번역기와 함께 손짓발짓을 하며 재밌는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와 Akira는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독도얘기를 하면서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두 사람 다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잘 마무리했다.
나는 아키라에게 나오기 전 SNS를 하냐고 물어봤고, 그는 페이스북을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아키라와의 SNS를 통한 소통이 시작됐다. 거나하고 배부르게 먹은 뒤, 아키라와 나와 엄마는 셀카를 찍어 그날의 좋은 대화를 오래 간직하자고 약속했다. 엄마와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집에 들러 붕어빵 탈을 쓰고 재밌게 놀았다. 엄마도 그때만큼은 20대 여대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이 밝게 웃었다.
두 번째 방문
2년 뒤, 나는 A형과 다시 교토를 찾았다. (A형 이야기 다시 보기)
교토는 기온거리를 따라서 멋진 바가 많기로 유명했다. 우리가 갔던 계절이 마침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었다. 나와 A형은 하루 저녁에도 바를 7개씩 옮겨 다니며 딱 한 잔씩만 마시며 '바 호핑 투어'를 했다. 아름답게 휘날리는 벚꽃과 함께하는 교토여행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A형과도 잊지 않고 키친 라꾸라꾸를 갔다. 이번에는 페이스북으로 미리 Akira에게 예약을 했다. 아키라는 우리가 올 때 맞춰서 장을 봐서 좋은 재료로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화답했다.
예약한 시간에 식당에 가보니 백인 커플이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한 뒤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그들의 이름은 카림(Karim)과 리즈(Liz). 남자는 영국인 여자는 프랑스인이었는데,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단다. 프랑스인 리즈가 런던에서 일을 하다가 만난 사이로, 둘은 런던에서 함께 지내며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일본인 남자 손님이 한 명 식당에 들어왔다. 주인인 아키라는 그를 히사오(Hisao)라고 소개했다.
나는 아키라에게 Omakase라고 말했고, 아키라는 끄덕이며 본인 마음대로 음식을 내기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는 A형 답게 Hibiki 위스키를 통째로 한 병 시켜서, 그걸 혼자 절반 이상 하이볼로 마셨다. 나머지 사람들이 반을 나누어서 마셨다. 그러고도 끄떡없는 주량에 아키라와 히사오가 혀를 내둘렀다.
아키라는 사실 'Akira rhythm'이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아마추어 음악가이기도 했다. 손님들이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아키라는 기타를 창고에서 꺼내와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잘 치는 기타와, 멋진 노래솜씨는 아니었지만 그가 음악을 통해 전하는 '젊은 아키라'의 불꽃같은 것이 느껴졌다. 음악을 듣던 A형이, "나도 취미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한 곡 해도 되겠냐"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연히 얼른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유튜브로 니나 시몬의 MR을 틀고 A형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호소하듯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가 후렴구를 향해 달려가며 감정을 뿜어냈다. 옆에서 노래를 듣던 히사오는 눈물을 글썽였다. 노래가 끝나자 다들 박수조차 칠 생각을 못하고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지인 중 가장 노래를 잘하는 사람. 그게 A형이었다. 신입생 시절, 재즈동아리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할 때, A형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계속 동아리를 남아있기로 결심하기도 했었다.
분위기가 오르자 모두가 자리에 일어서 춤을 추었다. 밤 열 시경 시작한 댄스파티는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다. 끝나지만 않을 것 같던 춤사위였다.
세 번째 방문
키친 라꾸라꾸를 방문한 지 시간이 한참 흘렀다.
두 번째 방문 이후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했다. 2020년 팬데믹 이후에 삶의 방식들이 달라졌다.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는 아키라의 피드에는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게시물들이 보였다.
팬데믹으로 외국인들의 교토방문이 막히고, 수입이 줄어들자 궁여지책으로 가게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녁에는 도시락을, 점심에는 단돈 육백 엔에 카레덮밥을 팔았다.
2024년이 되자마자 나는 아내와 함께 교토로 떠났다. 직장에서도 아주 중요한 해였다. 나는 새해 다짐을 하며 '바쁘게 살자, 후회 없이 살자'라고 되뇌었다. 그렇게 불태우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휴식 겸 떠난 여행이었다.
나를 위해, 아내를 위해 고급으로 여행을 꾸몄다.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숙소에서 3박씩 지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으며, 파인다이닝과 고급 스시야를 다니며 미식의 끝판왕들도 경험한 여행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여전히 교토 = 키친 라꾸라꾸였다.
나는 아키라에게 미리 연락해 방문일정을 조율했다. 위 사진에 나오진 않지만 아키라는 "예산을 어느 정도나 생각하느냐"며 물었고, 나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재료로 맛있게 해 달라"며 그의 선택에 맡겼다. 아키라는 알았다며 우리가 오는 날 아침부터 장을 보겠다고 했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아키라 나 약속을 지켰어"라며 그에게 감격을 표했다.
A형과 방문했던 2019년 봄, 나는 지금 사귀던 여자친구와 함께 5년 내 방문하겠다며 아키라에게 약속을 했었다. 그 약속을 지킨 날이었다. 그때의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어 방문했다. 다만, 아키라는 그 약속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되려, A형이 무척이나 술을 잘 마셨던 기억이 나고, 그날의 재밌는 춤사위는 아직도 가끔 생각나서 미소 짓게 한다고 덧붙였다.
거의 5년 만에 다시 방문한 키친 라꾸라꾸. 주방의 식기와 생김새는 5년 전과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키라가 확 늙은 것이 느껴졌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일흔을 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에 식당을 운영하는 게 힘들었던 듯 등이 굽어있었다. 마음이 짠해졌다.
첫 차림으로 차갑고 가벼운 요리들이 나왔다. 우리로 따지면 밑반찬과 연어알 등이 나왔고, 아사히 생맥주와 잘 어울렸다. 두 번째로는 차돌박이와 두부로 만든 요리가 나왔는데 된장베이스인 듯 오묘하고 맛있었다.
이어서 파스타가 나왔다. 가쓰오부시와 토마토소스, 그리고 조개와 야채육수로 간을 맞춘 듯했다. 게눈 감추듯 먹자, 아키라도 함께 먹다 말고 황급히 다음 요리를 시작했다. 단골이 되어 재밌는 점은, 식당주인인 아키라가 우리를 위해 요리를 만들고, 자신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에 있었다.
"오늘 아침에 시장에서 사 온 거야. 꽤나 고심해서 골랐어."
아키라는 굽기 전 소고기를 보여주며, 자신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꽤나 신경 썼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눈에 봐도 고급이었다. 아키라는 고베규의 샤또브리앙이라고 했다. 일본산 소고기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이 고베규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샤또브리앙이었다. 샤또브리앙은 안심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부위로, 우리나라에선 따로 샤또브리앙만을 파는 식당은 잘 없다. 그러나 일본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프렌치든 이탈리안이든 정통일본식이든 샤또브리앙을 메인으로 많이 사용했다. 물론 한 끼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파인다이닝에서 쓰는 소고기만큼은 안 되겠지만, 적어도 그가 시장에서 우리를 위해 고르고 고른 것이라는 정성만큼은 잘 느껴지는 한 상이었다. 입에 넣자 문자 그대로 살살 녹았다.
뒤이어 새우튀김과 연어, 그리고 생참치 요리가 나왔다. 일본은 태평양이 가까워 대도시에서 운이 좋다면 생참치로 만드는 초밥이나 각종 요리들을 먹어볼 수 있는데, 이 날 역시 운이 좋은 하루였다. 내가 술을 계속 먹으며 음식을 더 만들어달라고 하자, 소갈빗살과 카레로 만든 요리, 나폴리탄 스파게티, 그리고 스시와 샐러드까지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한 요리들이 연이어 나왔다. 내가 만족하고 그만 먹겠다고 할 때까지 아키라는 음식을 만들어줬다. 마치 다시는 방문하지 못할 것 같은 기세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키라와 아내는 셀카를 찍었다. 아키라는 이제 식당을 그만 정리할까 한다며 솔직히 고백했다. 장사도 안되고 힘에 너무 부친단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의 시코쿠 지방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불교신자인 그에게 시코쿠 지방은 불자들을 위한 섬이라고 할 만큼 절과 신사들로 가득했다. 거기서 매일같이 절을 다니면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나는 아키라에게 그럼 거기도 가겠다며, 새로 식당을 오픈하게 되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렇게 이년이 더 흘렀다.
나는 아키라가 아직 그곳에서 장사를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언제 시코쿠로 이사할지도 구태여 묻지 않았다. 자유롭게 살아온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방해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아키라와 키친 라꾸라꾸는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음에 교토를 간다 하더라도 라꾸라꾸가 남아있을 것이란 보장은 당연히 없다. 그럼에도, 언제까지나 키친 라꾸라꾸는 내 청춘의 한 페이지에 찬란했던 순간들로 기억될 것이다. 어머니, 친한 형, 아내와 함께 방문한 라꾸라꾸에서 아키라를 비롯한 다른 이들과 나눈 우정은, 국경을 초월하는 깊은 맛이 있다.
상호 : kitchen rakuraku kyoto
위치 : 교토 료안지 인근 주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