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참치 순위가 바뀌었다

어방참치

by 퉁퉁코딩

이전까지 내가 먹어본 최고의 참치는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날은 고등학교 입시 결과가 발표된 날이었다. 나의 과학고등학교 합격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평소 중요한 손님을 모실 때 가시던 일식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룸으로 안내받았고 잠시 후 주문을 받으러 들어온 종업원에게 아버지는 주방장님 이자 사장님을 불러달라고 했다. 곧 방으로 들어온 사장님을 보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제가 기분이 많이 좋거든요. 가격은 상관없고, 오늘 있는 것 중에 제일 좋은 걸로 주세요."

사장님은 짧게 알겠다고 답했다. 그 표정만 봐도 이미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잠시 후,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건 참치 머리였다. 오늘 우리가 먹게 될 참치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소개받았다.


어머니 말로는 그때가 벌써 18년 전인데도 계산서에 찍힌 금액이 50만 원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정작 나는 그날 먹었던 참치의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중학생이었고, 좋은 참치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다만 기억나는 건 그날 방 안에 가득 찼던 기분 좋은 공기와 아직까지도 먹어본 참치 중 가장 맛있었다고 말하던 어머니의 확신이다. 그래서 그날의 참치는 아마도 내 인생 최고의 참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이후 성인이 되어 꽤 많은 참치를 먹어봤지만 맛은 기억나지 않는 그날의 참치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긴 참치는 아직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 30대 중반이 되어 삼성역 근처에서 아내와 함께 알폰스 무하의 전시를 보고 난 뒤 주변에 유명하다는 참치집이 있다길래 방문해 보았다. 그리고 그날, 내 인생의 참치 맛집 순위가 확실하게 갱신되었다.


처음 나온 접시를 보는 순간 이 집은 참치를 잘 다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살결은 핑크와 연분홍 사이 어딘가에서 멈춰 있었고 결은 칼이 지나간 방향 그대로 살아 있었다. 딱 먹기 좋게 해동된 참치는 차갑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입 안에서 가장 먼저 녹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참치를 혀 위에 올리면 부드러움이 먼저 느껴지고 그 뒤로 기분 좋은 기름기가 따라왔다. 옆에 놓인 백김치는 딱 제 역할만 했다. 참치의 단맛을 가리지 않고 입 안을 정리해 주는 것. 완벽한 조연의 태도였다.


참치 맛을 잘 모르겠다고 늘 말하던 아내도 그날만큼은 달랐다. 한 점, 또 한 점 먹더니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다음에 다시 와서 가장 비싼 코스로 먹어보자."

가격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는, 마치 18년 전 그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얼마 뒤, 같은 전시장에서 이탈리아 그림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시 - 참치. 이 경로는 이제 실패가 없다.


이번에는 1인당 8만 원 정도 하는 가장 비싼 코스를 주문했다. 시작부터 좋은 부위가 나온다. 기름기가 흐르되 번들거리지 않고 살은 딱 씹기 좋은 만큼만 단단하다. 보통 무한 리필 참치집에서는 2회, 3회쯤 가면 저렴하다 싶은 부위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 집은 반대다. 접시가 바뀔수록 오히려 더 좋은 부위가 등장한다.


기름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와사비만 올려도 좋다. 김에 싸도 되고 백김치에 싸도 된다. 정답은 없다. 이 집의 참치는 어떻게 먹어도 다 괜찮다. 그래서 우리는 기름장, 와사비, 김, 백김치 이 네 가지를 무한 회전시켰다. 이미 배는 충분히 불렀는데 손은 자꾸 다음 한 점을 집게 된다. 이 맛있음을 아직 끝내기 아쉬워서.


분위기와 기억으로 머릿속에 1등으로 남아 있던 내 참치집은 결국 혀가 느낀 참치의 맛 앞에 순순히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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