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길에
1. 말라리아, 황열병, 콜레라, 장티푸스 파상풍, 간염.
우리가 확인했던 방문 예정 국가(남아공, 잠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들의 권장 예방접종 목록이다.
황열병과 콜레라는 지정된 소수의 의료기관 및 검역소에서만 접종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아프리카를 다녀온 여행자들의 정보, 의사들의 권유에 따라 황열병과 콜레라는 접종하지 않았다.
말라리아는 말라론이란 약으로 출발 이틀 전부터 귀국 후 일주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1정씩 복용 중이다. 나머지는 전부 출발 3주 전 의료기관에서 접종을 마쳤다.
2. 근 일 년 전부터 글을 쓰기가 매우 어렵다.
글쓰기에 처음 흥미를 느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월간지를 출판하고 있었는데, <모모>라는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이 출판담당 선생님의 눈에 들어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었다. 글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 이후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 주로 글을 올렸다. 초기의 왓챠(지금은 한국식 넷플릭스인 왓챠플레이로 바뀌었지만)에서 내가 쓴 영화평들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학부시절엔 국문과 학생들과 함께 현대소설 수업을 들으며 글을 썼다. 취준생 때는 24개의 기업에 지원한 자소서가 20개 넘게 받아 들어졌다. 글로 무언가를 했던 일은 늘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3. 그리고 일 년 전엔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 내 글짓기 스승인 서평화 선생님을 빼고, 나를 제외한 주위에 작가 응모한 사람은 모두 떨어졌다. 나는 뭔가 진지하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두 번째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과 음식, 영화, 음악 등의 주제를 가지고.
그리고 정확하게 그때부터 글과 멀어졌다.
4. 작가라는 이름을 얻는 것, 나의 글이 나의 필명(모블랙)을 달고 불특정 다수에게 읽히는 것.
나는 그것이 너무 두려웠는지 모른다. 아니면 너무 거창한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그저 해왔던 것처럼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해나가면 됐을 뿐인데, 나는 마치 자격증은 얻었으나 실전 경험이 없는 의사처럼 글쓰기를 주저했다.
5. 일상은 매우 정적이다. 햇수로 6년 차에 접어든 은행생활도 일적으론 어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무언가 빛나고 뜨거운 꿈을 꾸었던 거 같은데, 그 꿈은 너무나 아련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무엇인가를 짊어지고, 무엇인가를 포기한다.
나 역시 그러한 삶의 이정표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다음 step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른이 되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알면서도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6.2016년 모로코, 2017년 쿠바, 미얀마 2018년 칠레, 2019년 스코틀랜드 그리고 2020년 남아공과 잠비아 등. 직장을 들어간 후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생기면 늘 먼 곳으로 나를 던졌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도 함께했다.
7. 인천에서 카타르까지 10시간, 카타르에서 남아공까지 10시간. 경유까지 총 24시간. 긴 비행기는 더 이상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지난 여행에서 얻은 경험들로, 긴 비행시간을 잘 보내는 법들을 익혔는데, 그중 가장 좋은 것은 미드를 몰아보는 것이다. 학생 때 이후 미드를 정주행 할 기회가 많이 없는데, 그나마 일 년에 한 번은 이렇게 정주행을 한다.
8. 처음 맞닥뜨린 입국심사관과 환전소 직원은 매우 퉁명스러웠으나, 그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대개 매우 상냥했다.
9. 치안이 매우 불안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많은 괴담이 떠도는지, 인터넷에 조금만 ‘남아공 치안’의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도대체 저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며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 쉽게 상상하긴 어렵다. 하지만 안전에 유의하며 다녀서 그런지, 그렇다 할 일은 없었다.
10. 대개 날씨는 완벽했다. 딱 하루 테이블마운틴에 올라가야 하는 날만 날씨가 흐렸다. 아주 힘들게 등산을 해서는 별 소득 없이 내려왔다. 늘 인생은 과거의 경험이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