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블랙 Mar 02. 2020

<아프리카와,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 -3

케이프 타운 탐방기


모기 잡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빅블루..

1. 빅 블루 백패커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이틀을 묵었다. 저녁 먹고 숙소에 들어오면 결과적으로 씻고 쓰러지는 하루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인 여행자들끼리의 교류, 파티 이런 것들은 달성하지 못했다.


2. 음식이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다. 우리로 치면 이태원에 숙소를 얻은탓인지 몰라도, 숙소 주위의 인터내셔널 한 식당들이 즐비했다. 거의 매 끼니마다 성공적인 식사를 했다. 커피와 빵 또한 매우 훌륭했다.


3. 고급 레스토랑과 기념품점, 쇼핑몰 등이 모여있는 워터프런트는 항구다. 요트투어와 헬리콥터 투어를 잠깐 고려했다.

워터프런트 등장
Where are we now?
호옹
날씨 좋은 곳에서 점심을..
나도 저 셔츠..

4. 미술관에서 본 전시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특히 집약된 디스플레이가 꽤 맘에 들었다. 이용되기만 하는 흑인의 역사. 아파르트헤이트 이후도 남아공에서의 인종간 계급 차이는 여전히 존재했다. 식당, 택시, 슈퍼마켓 등등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엔 흑인들이,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한 금융, 법조계, 회계, 부동산 등등의 전문분야엔 백인들이 자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아공에서의 윤택한 삶은 모두 백인들의 차지였다. 그것은 너무나 명백해서, 영화 ‘겟 아웃’에서 느낀 섬뜩함을 여행 내내 받았다.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그들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 법으로 차별이 금지되어도 운명의 굴레는 여전히 그들의 문화 속에 남아서 한계를 규정하고, 또 한편으로 소수의 뛰어난 인물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운명에 저항할 것이다. 

압도당하는 느낌.

5. 지금 여행을 온 친구들과, 작년 가을 광주에서 글램핑을 했었다. 당시 4.19 기록관도 방문했었는데, 우리가 그 상황에 쳐한다면 과연 대의를 위한 순교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토론했다. 지금도 직장에선 크고 작은 역경들이 산재해있다. 가시밭길은 매우 험난하며, 어쩐지 그것이 내 이익과 연관이 되어있을 땐(때로는 자존심이더라도) 명분이 약하다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곤 한다.


6. 그러나 역사의 수레는 순교자와 개척자들에 의해 굴러간다. 다만 내가 꿈꾸어 왔던 것이, 그들과 같은 용기 있는 삶인지, 혹은 그렇게 생각하며 나의 이익을 좇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에 혼란스럽다.


7. 항구도시라 그런지, 해산물이 정말 신선하다. 시푸드 플레터와, 쇼비뇽 블랑(남아공 산지)은 거의 보증수표에 가까웠다. 

4/5점. 1점은 괜히 빼봄
이런 느낌...

8. 음식 가격에 15% 부가세, 거기에 10% 팁(이것보다 적게 지불한 한 식당에선, usually paid 10%라며 우리를 가르치려 들었다.)이다 보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1만 원짜리 메뉴를 시키면 12600원을 항상 준비해야 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의 식당 시스템이다. 부가세가 메뉴에 포함되어있고, 팁이 없어 표기 금액 그대로 결제하면 된다는 편리가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는 종업원을 호출하는 벨이다. 팁이 없으니 종업원은 고객이 부를 때만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고, 수저와 냅킨은 대개의 경우 식탁 옆에서 직접 꺼내 세팅할 수 있고, 계산역시 미리 준비된 빌을 직접 카운터로 들고 가서 하면 된다.

 외국인의 입장에선 엄청난 efficiency라고 느낄만하다. 팁을 안 준다고 불친절한가? 대개의 경우 팁을 주는 외국보다, 팁을 안주는 우리나라 식당의 종업원이 훨씬 친절하다. 


9. 세대가 지나고, 우리나라 사회의 문화도 international standard를 따라간다. 더 이상 신입사원들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구닥다리 문화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보단 가정이, 회사보단 나의 행복이, 소유보단 경험이 우선시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가끔 회식자리에서 “요즘 젊은애들은 이기적이야, 팀워크가 없어”같은 라테 talk를 심심치 않게 상사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결정적인 순간에 남을 이용하고, 책임질 상황에서 부하를 방패 삼아 회피한다.


10.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곧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지켜야 하는 가치의 모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한민족의 정, 일에 대한 열정 같은 부분들은 시대상에 따라서 많은 것이 바뀌어도 여전히 외부자의 눈에선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치 흑인들이 스스로 피지배계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본질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가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비겁자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 변화에 적응할 능력이 없거나 머리가 나빠서 스스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11. 케이프타운에선 현지시간으로 금요일 도착해, 토요일 하루를 꼬박 시내 구경을 했다. 토요일 저녁에는 signal hill에 올라가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보았다. 지구의 자전은 빠르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따라서 시간 역시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호기심의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씩 지워나가는 것과 같다. 운전도, 섹스도, 물질에 대한 소유도, 그리고 미지세계에 대한 탐험도 어느 순간 꿈꿨던 것들이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더 이상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사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사회가 정해놓은 해답과, 회사가 바라는 인간상 속에 나를 맞추어 사는 것은 도저히 사양이다. 희망과 현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어른과 아이 그 경계에서, 만 30살이 된 나는 여전히 앞뒤로 고개를 돌릴 뿐이다.

진다
아아 졌다
아쉽다


예쁘다..
그렇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리카와,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