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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열전

[사마천의 사기열전 -김원중 옮김-민음사]

by 모래쌤

얼마 전 알릴레오 북스에서 유시민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 두권이면 몇 달은 머리를 괴롭힐 수 있다고.

괴롭힐 거리만 있으면 덥석 물고 싶으므로 얼른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러한 고전을 대하려니 어질어질하다. 한자어도 어렵고.


천천히 한편씩 읽으며 사유해보리라 마음 먹는다.


오늘은 1편 백이열전.


백이와 숙제를 제일 먼저 사마천이 거론한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이 편안에 214자 밖엔 안되고 나머지는 사마천의 논평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백이열전을 통해 하늘의 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사의 불공정한 여러 형태에 대해 회의적이다. 권선징악을 기본으로 하는 하늘의 도가 현실에 드러나지 않으니 말이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으로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궁형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는 행동은 규범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법령을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편안하게 즐거워하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78쪽



나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리 생각한다.

2025년의 세상을 보라. 어디를 둘러봐도 불공정과 온갖 비리와 추악함이 가득하다. 그런 자들이 벌받고, 상식과 공정을 추구하는 사람들, 성실하게 인간답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사람들은 잘 살고 그래야 하는데 아니지 않나. 이 땅에'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사건 앞에서 한여름 뙤약볕의 얼음조각마냥 주르륵 녹아내리는 자신의 의지를 보며 나약하기 짝이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아파하며 그러면서도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사마천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도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니 백이와 숙제의 삶은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낸 것으로 보였고, 하늘의 도가 다 뭐냐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


사마천이 저런 교훈을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것이라면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쥐어 잡히고, 내쳐지고 휘둘리는 이들이 듣는다고 위로가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냥 마음을 고쳐 먹자.




/



하늘이 내리는 복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안정이나 인기, 권력, 세상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그런 것인가? 자꾸 기준을 거기에 두다 보니 하늘의 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좀 더 가치로운 것에 목표를 두면 좋겠다.

세상을 뒤집어 엎을 원대한 꿈을 꾸기보다 작은 것에 충실하게 그저 자연계의 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인간의 삶이 아닐까.

거기에는 고도의 지식이나 학벌, 재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겸손과 멈춤과 사유와 감사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길은 그리 꽃길이 아닐 것이다. 고난에 더 가깝겠지. 하지만 그게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는 중에 더러 사랑하는 가족, 이상이 맞는 친구들, 작은 성취들로 행복을 누리기도 하며 그렇게 가는 것이지. 결국 이 땅에 소망이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가의(한나라 문제 때의 정치가 이자 문인)이 말했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을 구하고, 열사는 이름을 추구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권세 때문에 죽고, 뭇 서민은 그날그날의 생계에 매달린다.
- 가의의 [복조부]에 나오는 구절로 모든 사람은 자기가 추구하는 바대로 삶을 산다는 말. (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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