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살아있다면

by 모래쌤

어릴 때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죽음'이라는 것은 적어도 환갑이 지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런 생각은 해 보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죽을 때 자기가 죽는 것을 어떻게 알까?'

'진짜 영혼이 빠져나와서 육체를 보게 될까?'

'죽을 때 고통스럽지 않으면 좋겠는데, 죽는 순간 많이 아플까?'


'죽음'은 신비스러운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일이었다.







물론 한 번도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래 병석에 누워계셨던 분이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슬퍼했고 얼마나 오래 힘들어했었는지조차 기억이 없을 만큼

나에겐 큰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떨어져 살았고, 워낙 아버지와의 관계도

소원하셨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둘째 이모께서 소천을 겪었지만

역시 상상 속에서 존재하던 신비스러운 그 '죽음'이었다.






'죽음'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 첫 번째 사건은 바로 언니의 '죽음'이었다.

내 인생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언니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었다.

너무나 사소한 것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시간의 소중함이나 가는데 데 순서 없다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알게 된 경험이었다.

많이 아팠고, 슬펐지만 더 열심히 사는 동력이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진짜 내 인생을 전과 후로 극명하게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면 남편의 '죽음'은 깨닫고 알았던 것들이 다 무너뜨렸다.

내 삶은 광풍에 모두 날아가 버렸고, 갈가리 찢긴 헐벗은 육신은 허허벌판에 서서 떨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 이성을 잃어버린 채 헤맸다. 내가 생각한 죽음에 남편의 것은 없었다.

나보다 더 끔찍하고, 더 무섭고 서러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못난 나를 더 드러나게만 했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것처럼 사소한 문제부터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던 모든 서류를 내 앞으로 바꾸는 일까지 처리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았고, 그중 어느 하나도 그냥 쉽게 되는 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던 안전한 유리 돔 안에서 우리 가족만 튕겨져 나와 버려진 느낌이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결과 이렇게 된 것인가? 왜 이렇게 버려진 거지?



그래도 나는 살려고 버둥거렸다. 밥도 꾸역꾸역 먹었다. 울다가도 밥은 잘도 넘어갔다.

어떨 땐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내가 참 역겹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겪어본 사람만 아는 것이겠지만, 살아내야 할 이유가 널렸으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숨 쉬고 살아보려고 내가 한 일은 읽고 또 읽는 일이었다. 그것만이 내가 살 길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만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는 웃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살아남기는 했을까.

그저 하루만 하루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다행히도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가서

어느새 그를 보낸 지 720일이 되었다.






내 삶은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온통 안개가 자욱하고 음산하며 물기가 어려있다.

멀리 볼 수가 없다. 끝없는 심연.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발치를 바라보며 한 발짝만 내디뎌 본다. 그다음 발을 어디로 디뎌야 허방이 아닐지 두렵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수는 없다.



무섭지만 한 발 움직여보자는 심정으로 책을 펴고, 수업을 준비하고, 그와 나의 두 아들을 바라본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보다 어느 날 보니 나를 안타까워하시며 굳건히 버텨주시는 엄마, 아버지가 내 뒤에 계셨다. 때때로 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로 가슴이 답답하지만 두 아들과 부모님 모두 내 힘의 원천이다.


가야 한다. 내일도 살아 있다면 나는 계속 갈 것이다.

더 많이 읽고, 쓰고, 열심히 가르치고, 딱 한 발씩만 앞으로 내디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