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자리

by 모래쌤

D+711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은 흘러간다.

너무너무 행복한 날도 지나가고

끔찍한 슬픔의 날도 지나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아무런 감정도 없다.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나에게도 분명 너무너무 행복했던 날이 있었을 텐데.

글을 쓰려고 앉아 한참을 생각해 봐도

기억이 안 나니 내 머릿속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큰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3일을 진통하던 끝에 아이가 거꾸로 몸을 돌렸고,

숨을 잘 쉬네 안 쉬네 하니 겁이 났고,

진통은 점점 거세졌고,

병원에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고

남편은 교회일로 자리를 비웠고

엄마가 대신 우왕좌왕 하셨고

두려움과 고통에 신음하며 나는 수술실에 실려 들어가면서

"전신마취 하실 거죠?" 하는 물음에

"네네네."


깨어나니 아이를 무사히 꺼냈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링거병을 매달고 병실 복도를 걸으며

아무것도 매달지 않고 당당히 걷는

자연분만에 성공한 산모들을 보며

패배감에 시달려야 했다.









둘째는 반드시 자연 분만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찾은

가까운 산부인과를 찾았다.

수술을 했던 사람이 자연분만을 하면 위험하다며 선생님은 부정적이었다.

좀 멀지만 브이백 자연 분만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찾았고

의사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무사히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둘째 아이가 내 안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모든 과정을 낱낱이 보았고

느꼈고, 감격했다.


그날도 남편은 저녁 8시 무렵 교회로 떠났다.

하필 그날이 금요일이었고

하필 금요 철야예배 설교 담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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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를 6살이 되도록 엄마가 키워주셨다.

나는 큰 교회의 부교역자의 아내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갑자기 그만두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회사를 열심히 다녔다.

금요철야예배까지 마지고 나면 녹초가 되었으므로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를 데리러 출발했는데 우리 집에서 엄마네까지는

막히면 두 시간도 넘게 걸렸다.

내부 순환로, 북부간선도로 참 많이도 달렸다.

아이를 데려오고 주일 밤에 다시 데려다주는 것까지

보통 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기에

어린 아들을 카시트에 앉히고 졸기도 많이 졸았다.

큰 애도 어릴 때부터 참 고생이 많았다.







큰 애는 6살이 되도록 열경련을 했다.

36.5도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할 때 경련을 먼저 한다.

열이 오르면 경련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할 수도 있을 텐데.

경련이 먼저다. 그러고는 열이 오른다.

나도 아들 덕에 119 구급차를 여러 번 탔다.


제일 무서웠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토요일 오후였는데, 화장실 청소를 했나 뭔가 일을 하고 나왔는데

애가 조용히 옆으로 누워있다.

OO아 부르며 다가가도 아무 말이 없다.

'쿵'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아이를 안고 침대에 눕혔는데

얼굴이 점점 퍼레진다.

눈빛은 나를 보고 있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마치 줌 아웃되듯 멀어진다.


바늘을 꺼내 그 여린 손가락 발가락을

겁쟁이 엄마가 눈물범벅이 되어 기도를 중얼중얼 대며

마구마구 찔러댔고.

그 와중에 불렀던 119 구급대가 와서

병원으로 긴급히 이동했다.


구급차 안에서 '훅' 숨을 쉬기 시작한 아들이 내뱉은 말

'주 나의 구원자.'



큰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고.

담당의는 6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했다.

병원 말대로 6살이 지나니 그 증세는 사라졌다.









둘째는 첫 아이에 비해 너무 순했다.

100일이 될 때까지는.

밤새 자고 아침에도 자고 어떤 날은 한 번도 안 깨고 오후 3시까지 자기도 해서

숨을 안 쉬는 건 아닌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코에 손가락을 대 볼 정도로.



자라는 내내 이 아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하나 다 다르게 창조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큰애랑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나만 있었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거침없이 원하는 걸 했다.


남편은 모든 면에서 완벽을 기하려 하는 큰 아들에게는 어른으로서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려 애썼고,


엄벙덤벙거리지만 재롱을 부리는 둘째랑은 장난을 쳤다.


큰 애는 어디 하나 입 댈 데 없이 자기 일을 알아서 했고,

구제옷을 입혀도 양복을 입은 듯 각이 나오는 아이였지만,

둘째는 어떤 옷을 입혀도 금세 구제옷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무던한 이 둘째 아들이 한 번은 눈두덩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열심히 놀아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결국 병원에서 여러 바늘 꿰맸는데

내 기억에 그날 병원에서도 한 번도 안 울었다. 이상해.








큰애는 공원 같은 델 가도 무대처럼 생긴 곳만 보면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다.

어릴 땐 참 허스키한 목소리였는데

별로 이쁘지도 않은 목소리로 어찌나 열창을 했는지 모른다.

그 아들은 지금은 기타를 들고 예배를 인도한다.



장난꾸러기 둘째는 늘 엄마 아빠를 웃겨주더니

사춘기에 만난 나쁜 친구들에게 상처받고,

의지하던 아빠까지 잃고 좀 많이 아팠다.

하지만 언제든 엄마와 형을 웃겨주려 애쓰며 이겨내고 있다.








가만.

과거는 다 그린운 것인가 보다.

그이가 옆에 없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던 일들도 많았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이걸 혼자 했다고?"

"당신은 꼭 필요할 땐 없더라고."

"여보.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연락도 안 받고 당신은."

이렇게 무용담을 떠들어 댈 수가 있었다.


그립다 그 시절이.


그에게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무용담 들려줄 게 너무 많은데 들려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혼자 오롯이 해 내야 하는 이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래도 참 잘해 왔다.' 하며 나 스스로 기특해할 날이 올까?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으면 좋겠다.


D+711


그가 우리에게서 떠난 지 711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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