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바꿀 기회를 얻는다면

by 모래쌤

<시간의 계곡 The Other Valley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원작>이라는 소설 속 세계는 평행 우주를 기반으로 한다. 20년 간격으로 동일한 내가 존재한다, 살아있다면. 56세의 내가 현재에 있다면 왼쪽 밸리에는 36세, 그보다 더 왼편엔 16세, 내 오른쪽에는 76세, 한 칸 더 간 오른쪽 밸리에는 96세의 내가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꼭 다시 보고 싶은 가족이 있다면 당국에 서쪽 밸리 방문을 신청할 수 있다. 미래에 태어날 가족을 보고 싶어 동쪽 밸리 방문을 신청하기도 한다. 물론 신청한다고 다 허가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개입'이 발생하면 모든 밸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개입'은 안된다. 하지만 이런 세계라면 '개입'을 시도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목숨을 건 탈주자들이 생기고, 그것을 막기 위해 밸리의 경계는 삼엄한 경비병들이 보초를 선다. 방문자들을 인솔할 헌병을 양성하고 있고, 방문을 허가할 자문관들과 이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가 있다.







실수로 발을 헛디뎌 호수에 빠져 유명을 달리한 열여섯 살의 에드메 피라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셨고, 단짝 친구 알랭 로소가 있었고, 서로의 마음을 표현해 보지도 못했지만 그를 좋아했던 그리고 그가 좋아했던 주인공 오딜 오잔이 있었다. 서른여섯의 오딜 오잔은 자신의 밸리에서 탈주하여 열여섯의 에드메를 살린다.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럽게 잃은 이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일이 이루어진 결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밸리에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도 신경 쓰지 않고 째깍째깍 흘러간다. 그래서 과거는 기억 속에만 남게 된다. 과거는 때로는 행복과 감사의 추억이 되기도 하고 아픔과 후회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제아무리 기가 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 번만이라도 더 만날 기회는 얻을 수 없다. 오딜 오잔처럼 목숨을 건 탈주 시도 끝에 친구를 살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에드메는 죽지 않았다. 오딜 덕분에. 하지만 누군가는 어떤 기회도 얻지 못하고 죽고, 어떤 이는 다시 살아나 삶의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도 불공평한 것 같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무심히 흘러가는 게 순리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얻고, 생명이 끝날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이 이치에 맞다. 마음은 오딜 오잔의 세계를 부럽다고 생각하나 머리는 내 세계관에 맞춰져 있어 순리대로 사는 것이 옳다고 한다. 나의 죽음이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든 죽음의 순간은 그때와 시와 형태를 알 수 없으므로 대비할 수 없어 두렵다. 그러나 또한 '죽음'이란 그러함을 아는 것이니 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을 대비하는 방법은 순간을 사는 것이다. 어제 누군가의 결혼 축사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시작은 당신들 마음대로 했을지 모르지만, 끝은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항상 끝이 있다는 것을 마음 한편에 둬라. 그래야 지금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축사의 한 대목이 귀에 꽂힌다.







끝이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과거가 아쉽고, 안타까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쩌겠는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지 않은가. 자꾸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답게 추억하도록 하자. 그래야 오늘 내가 살 수 있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더 많은 후회를 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주어진 세계의 순리를 따르며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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