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할 단계에 이르렀다.
눈에 보이는 책상, 안 보이는 서랍 속, 책꽂이 구석구석, 너절한 수납 바구니들
교습소뿐 아니라 집도 마찬가지다. 거기는 한층 더하다. 감시가 더 소홀한 곳이니 아무래도 손이 더 안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바닥에 먼지가 있는 것은 못 참으니 바닥 청소는 열심히 하지만 어디든 물건이 즐비하게 깔려있고, 좋게 말하면 예술적 각도로 자유로워 보이게, 나쁘게 말하자면 삐뚤빼뚤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지난 2년 간 나는 앉아서 손 뻗으면 닿을 곳에 필요한 것들을 두고 사용하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거의 떼지 않는 생활을 했다.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거의 책 앞에 앉아 있었다. 그게 제일 쉽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보니 편한 쪽으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물건이 쌓이고 쌓여 좁은 교습소가 더 좁아졌다.
남편의 물건들도 펜트리마다, 책장 위 선반 등등 쌓을 수 있는 곳에 여기저기 끼워 넣어 놨다. 이제는 진짜 그것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정리할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잡다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들 예를 들면, 임차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이사할지 말지를 정했어야 했다. 지출되는 항목을 분석하고 조정하는 정리가 필요했고, 둘째 아이 병원비를 보험사에 청구했어야 했다. 학원 수강생들의 수강료 장부를 정리하여 수강료 납입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했어야 했고, 얼마를 벌고 있는지 수익금을 확인했어야 했다. 2년 간 숨만 쉬며 버텼다고 했지만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는 건 접어두고 나 몰라라 했다.
갑자기 큰일을 당했다고, 아이가 그 일로 인해 아프다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혼자 어리광을 부렸다. 그래서 벌기도 전에 쓰기부터 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하기 힘들어 그냥 놔버렸던 것들이 이제 화살이 되어 나를 쏘겠다고 덤빈다.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살았고,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혼자 벌어서 힘들다며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몇이냐며 한숨을 쉬었었는데, 그때 사실 혼자 한 게 아니었던 것을 혼자가 되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만 내 옆에 있었어도 이렇게 두렵고 떨리고 불안하진 않았을 텐데. 전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숨을 데라도 있었지만 이젠 숨을 데도 없다. 그래서!!!!! 눈물 흘리며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이제 정말 정리가 필요하다.
책을 덮고 복잡하게 얽히고 너절한 모든 것들을 정리하여 일목 요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학원 장부부터 정리하자. 통장 정리도 하고, 서랍을 열고 들여다보자. 몇 년간 안 본 참고서들, 안 쓴 물건들 다 버리자. 덩치를 줄이고 줄여서 작은 곳에서도 잘 버틸 수 있게 가벼워지자.
남편의 물건도 꼭 간직하고 싶은 것만 남기고 버리자. 어차피 이 땅에서 남긴 것들 영원히 가져갈 수도 없는 것이니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고 굳게 마음먹고 또 먹어야 가능하겠지만 자꾸자꾸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휘둘리지 말자. 아이들이 뭐라 하든 내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누가 그러더라.
건강만 안 잃으면 시간이 지나니 다 해결되더라고.
그래.
여태도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 잘 버텨왔잖아.
깨지고 상하고 아픈 것이 이 땅에서의 삶이잖아.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으니 여기 두신 걸 테고.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이 고비를 잘 넘겨 보자.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