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능의 욕망 May 23. 2020

위준의 군주: 마일스 데이비스

댄디즘 3

1965년, 보스턴 글로브, 에스콰이어의 재즈/스타일 비평가 조지 프레이져는 마일스 데이비스 Greatest Hits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 짧은 에세이를 남긴다. 길지 않은 글이기에 재빨리 번역해 보았다.


잡지 논설보다 더 과감하게 그의 소견을 내지르는 구어체의 글이 매력적이다. 번역 역시 훨씬 수월했다. 스타일 작가이기에 앞서 재즈 비평가였던 그가 재즈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 오직 옷에 관한 이야기들만을 적어 넣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1965년 발매된 The Great Hits 앨범의 커버



동시대의 거의 모든 흑인 재즈 아티스트들과 달리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데이비스는 부유한 치과 의사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에 의해 어려서부터 세련된 옷차림을 갖출 것을 강요받았다고 전해진다(훗날 그는 그의 스타일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고 고백한다). 10살 때 잡은 트럼펫과 그보다 일찍 자리를 잡은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앨범이 발매되던 1965년, 만 39세의 마일스 데이비스를 규정하고 있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5년, 프레이저는 에스콰이어 사설에서 데이비스가 이탈리안 스타일의 재킷, 그리고 피부에 딱 붙은 것처럼 보이는 슬림한 바지를 선호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데이비스 역시 1950년대를 통틀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아이비 스타일의 열병을 겪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당시 하버드의 안도버 샵에서 아이비 스타일 워드로브를 맞추었고, 물론 그 중심에는 바스 사의 위준 (Weejun) 페니 로퍼가 있었다.


여유 있는 어깨와 넓은 칼라와 라펠, 낮은 고지 라인이 유럽식 슈트임을 말해준다. 커프링크와 실크 타이의 선택 역시 당시 유행하던 아이비 스타일과는 상반되는 선택이다.(1955)
좁은 라펠, 높은 고지, 굉장히 낮은 버트닝 포인트(너무 낮은 나머지 재킷의 스커트/쿼터가 지나치게 짧다고 느껴질 정도다) 위의 사진과는 완벽하게 다른 스타일의 슈트다. (1959)


The Warlord of the Weejuns

By George Frazier

위준의 군주

조지 프레이저


나쁜 놈이 되고픈 마음은 없지만, 오직 상냥함을 위한 상냥함을 연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에 한 가지 사실을 일찌감치 시인하겠다. 그래, 젠장, 맞다. 난 옷을 못 입는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증오하거나 그들을 몰아낼 방도를 모색하고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내겐 터무니없는 옷차림의 친구들이 몇몇 존재한다(이건 문제 될 것이 아니다. 난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저 그들의 옷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어찌 됐건 간에 난 형편없는 차림을 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 시간이 즐거운 것처럼 연기하는 일에서 그 어떤 의미도 찾아낼 수 없다.


반면 내가 경멸해 마지않는 종류의 남자들은 Bill Blass의 우스꽝스러운 블레이져, 피에르 까르뎅의 야한 옷을 걸쳤다는 사실 만으로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감탄할 것이라 상상하는, 바로 무지한 자만심에 빠져서 스스로가 우아하다고 착각하는 멍청한 개자식들이다. 바로 이런 남자들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이들이 프랑크 오하라가 괜찮은 시인이라는 멍청한 의견마저 피력하고 있다면 더더욱 끔찍하다.  얼마나 많은 괴상한 옷차림의 남성들이 오하라를 편애하는지를 안다면 – 다른 오하라 말이다 (John O’hara가 아닌 Frank Ohara (역주))- 당신은 깜짝 놀라게 될 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티크 가게의 고객들 중 대다수는 동트는 새벽에 총살 집행대 앞에 일렬로 세워진 후 마일스 데이비스와 같은 인간들을 우리에게 보내준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1분간의 묵념을 강요받아야 한다는 것 뿐이다.  물론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인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절대적으로 단독자다. 그는 진정 우아한 남자다. 그는 위준의 군주다.


스웨이드와 놋쇠 사이 질감의 대조가 재미있다. 브라운 스웨이드-금관 트럼펫- 금팔찌의 배경이 되어주는 검은색 폴로셔츠와 그레이 팬츠의 선택 역시 탁월하다.



오, 그는 물론 멋진 남자다. 다만 그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은 한 가지 문제를 야기시킨다. 왜냐하면 가장 근대적이며 현대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대를 잘못 만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멍청한 자식들이 네루 재킷을 입고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지독한 시대(네루가 이 광경을 목격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에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존재는 안타깝게도 낭비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해 두자면, 난 모든 남성들이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옷을 입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건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특유의 매력이다. 예를 들어 그의 아파트는 그 어떤 아파트와도 다른 곳이다. 그곳은 세련되고, 편안하며, 모던한 동시에 손님으로 하여금 재떨이를 더럽히는 일을 걱정하게 만들지 않는 공간이다. 마일스가 뉴욕 방문 중이고 내가 글을 벨럼지에 옮기는 일을 잠시 쉴 수 있다면 난 마일스를 찾아가곤 한다. 그리고 우린 사람들이 말하는 '수다'란 것을 떨곤 한다.



플라넬 핀 스트라이프 슈트로 보인다. 좁은 타이와 스퀘어 폴드의 포켓 스퀘어,  커프 링크 셔츠, 재킷 포켓의 커다란 플랩이 당시의 유행을 반영한다.



우린 많은 것에 대해 떠벌거린다. 예를 들자면, 알 힐트(트럼펫 연주자)가 필요한가? 혹은 징키 콘(피아니스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등등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대부분 옷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때야말로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유익하고 박식한 이야기들이 오가게 된다. 나는 옷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아는 편이고, 마일스도 그 못지않게 알고 있다. 아니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와 나는 옷에 관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요주의 인물들인 셈이다.


버튼 다운 +버튼 칼라 셔츠, 좁은 타이. 포켓 스퀘어는 생략했다. 톤온톤 조합이 멋지다.




데이비스의 워드로브는 특별하다. – 그것은 마일스와 엠슬리(테일러 하우스)의 마리오의 장인정신의 합작품이다 (데이비스의 테일러의 이름은 조 엠슬리였다. 여기서 프레이저가 지칭하는 '마리오'라는 인물이 조 엠슬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일했던 다른 인물을 지칭하는 것인지의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역주)). 마리오는 데이비스의 옷에 대한 이념을 숭배한다. 타당한 처사다. 마일스는 그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아리에서 밑단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바지를 좋아하고, 종종 끝단 처리를 즐긴다. 그는 허리 선이 높이 자리하고, 총기장이 길며, 허리에서 눈에 띄게 좁아든 후 하단에서 넓어지는 스커트를 보여주는 재킷을 선호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좋은 원단을 고르는 법을 알고 있고, 셔츠 칼라가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올바르게 실크 넥커치프를 매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는 그저 알고 있는 것이다.  



찰리 파커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던 마일스 데이비스. 당시 재즈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은 정말 훌륭했다. (1947)


그러나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우아한 남성이 되는 일은 지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옷에 있어 고상하고 무결한 취향을 갖추고서도 형편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남성들이 존재한다 – 만약 내가 더 나쁜 자식이었다면 난 당신에게 몇몇 이름을 들려주었을 테다 -  그러나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데이비스는 그의 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아름다운 남성들과 여성들처럼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걸을 때면, 그는 리처드 코리 못지않은 빛을 발산한다. 그는 키가 크고 (그는 169cm의 단신이었다 (역주)), 날씬하며, 잘 생겼고, 거만하다. 그는 진정 위준의 군주인 것이다. 만약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면,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고, 그냥 당신의 방으로 돌아가라.


투 버튼 더블브레스트 슈트. 소매 버튼은 하나고, 힙 포켓과 가슴 포켓이 모두 패치 포켓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만을 위해 만들어진 슈트라고 느껴진다. (1959)


그러나 내가 그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의 정직함이다. 그에게는 수줍음이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안타깝게도 아스테어는 수줍음이 많은 남자다. 그는 옷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척에 열심이다) 마일스는 옷에 관심이 많고, 그에 대해서 무심한 척을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느 날 밤, 인디애나 프렌치 릭에서의 콘서트를 마친 후, 그는 내 의견을 물었다.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 넌…”

그가 날 막아선다.

“아니. 그것 말고,”  

그가 다시 고쳐묻는다.

“내 슈트 어때 보였어?”


옷장에 추가할 새로운 옷을 찾는 일 외에 그는 프로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재능이 있다고들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옷 입기의 예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