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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능의 욕망 Jun 12. 2020

실과 원단

원단 2

지난 포스트에서는 메리노의 양털이 실로 변모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양에서 깎여 나와 -> 분류 -> Scouring -> Picking -> Carding -> Spinning을 통해 실로 거듭난 양모는 이제 원단으로 변신할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원단 짜기, 즉 Weaving 작업을 설명하기 이전에 언급 되어야 하는 몇 가지 과정이 존재한다.




<염색 Dyeing>


정확한 비율로 염색에 사용될 색소를 조절하고 있는 비딸레 바베리스 까노니코 공장의 염색용 머신. (출처 Gentleman's Gazette)


세탁된 흰 양털은 아름답지만 자연의 색 그대로의 수트를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게다가 양모의 색상은 고르게 희지 않다).  공정 과정 중 양모가 염색되는 시점은 양모의 용도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양모의 염색은 그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Top Dyeing = Carding과 Combing 과정이 끝난 양모의 Top/Sliver를 염색

Yarn Dyeing = 방직된 실 상태의 양모를 염색,

Piece Dyeing = 직조가 끝난 원단을 염색 –(솔리드/무지 원단용으로 활용되기는 하지만, 고른 색상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된다.)


(보통 고급 원단사들은 실로 방직되기 전에 염색된 양모를 사용한다, 그것이 원단을 직조하는 데 있어서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하나의 수트용 실/원사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최소 35개의 양모 섬유가 한 데로 꼬아져야 함을 언급했다. 고급 원단의 양모가 방직 이전에 염색된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한 가닥의 실에는 최소 35개의 색상이라는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셈이다. 소비자는 네이비 수트용의 네이비블루 색상의 실이 모두 네이비 색상으로 염색된 양모 섬유로 이루어졌을 것이라 예상하겠지만, 많은 경우 네이비 원사에는 갈색, 검은색, 심지어 초록색의 양모 섬유가 발견된다. 이러한 실 제조방식은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서 수트가 다른 색상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며, 기본적으로 더욱 깊은 색상을 연출한다.(플라넬의 대명사 폭스 브라더스/Fox Brothers의 그레이 플라넬 원사에도 최소 흰색, 베이지, 브라운 등 15개 이상의 색상의 양모 섬유가 포함돼 있다.)




<트위스팅 Twisting>


보통의 경우, 완성된 실/원사는 그대로 Weaving 과정에 투입되지만, 경우에 따라서 둘, 셋, 넷, 혹은 그 이상의 수의 방직된 실이 꼬여 하나의 실을 이루는 Twisting 과정이 Weaving 이전에 진행된다. 이러한 실로 만들어진 원단은 보통의 실로 직조된 원단보다 더 훌륭한 내구성과 탄성을 가지게 되는데, 2 가닥의 원사가 트위스트 된 실로 만들어진 원단은 2 ply, 4가닥의 실을 꼬아 만든 원사로 구성된 원단은 4 ply라 불린다.



High Twist 원단 중 하나인 하디 미니스의 프레스코다. 통풍이 좋은 성글한 직조감을 자랑한다. 출처: Permanent Style


이미 35개의 양모 섬유의 집합체인 원사는 본연의 장력을 가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사들을 두세 개 이상 꼬아서 하나의 원사로 변모시키기 위해선 스팀을 사용한 접합 작업이 요구된다 (B. Roetzel) 이와 같이 한층 두꺼워진 원사로 만들어진 원단은 구김에 강하기에 프레스코 원단과 같이 평직 구성을 통한 (직조 디자인에 관해선 다음 편에 다루도록 하겠다) 뛰어난 통풍성을 갖춘 원단에 사용된다.



<직조 Weaving>


원단 직조가 한창인 작은 사이즈의 자동 Weaving Machine. (출처: Bespoke Menswear, B. Roetzel)

이제 완성된 원사/실을 활용해 원단을 짜낼 차례다. 독일의 스타일 작가 버나드 롯젤은 실을 피아노 건반에, 완성된 원단을 음악에 빗대어, 직조 과정을 각각의 소리를 가진 피아노 건반을 하나의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연주하는 일에 비유하는데, 그럴듯한 발상이다. 원사의 종류는 무궁무진하고 그것이 구현할 수 있는 원단의 경우의 수 역시 가히 무한한 것이다.


원단을 짜는 과정은 간단히 말해서 원단의 길이(세로 방향)를 구성하는 날실(Warp)을 씨실(Weft)이 가로방향으로 관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일렬로 늘어선 날실(Warp) 사이를 씨실(Weft)이 위아래로 들쑥날쑥 가로지르는 과정을 통해서 직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수동 직조 기계가 이용됐지만, 이제 거의 대부분의 Weaving은 자동화된 기계를 통해서 진행된다. 하지만 그 기본 원리는 동일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rKmsWZqYE

Weaving의 기본적인 원리를 설명해주는 유튜브 영상


Weaving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운동은 아래와 같다.


1) Shedding – 날실 사이로 씨실이 가로지를 공간을 터주는 운동이다. 직조 형태를 따라 씨실이 날실을 넘나드는 방식은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디자인에 따라 일정 수의 날실이 위로 올라오고 (Upper Shed), 일정 수가 아래로 내려가면서(Lower Shed) 그 사이로 씨실이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영상을 참고하면 더 명확한 이해가 가능할 테다.


2) Filling Insertion – Shedding이 마련해준 길을 따라 씨실(Weft)이 날실(Warp)을 가로지른다.


3) Beat up – 날실 (Warp)을 가로질러온 씨실(Weft)을 올바른 위치로 밀어주어 씨실이 제 자리에 올바르게 정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운동이다. 이 역시 위의 영상을 참고하는 것을 권장한다.



씨실과 날실이 엮이는 직조의 형태와 색상의 조합을 결정하는 것이 원단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매년 만 킬로미터 이상의 원단을 생산하는 직조 회사(Weaver) 비딸레 바베리스 까노니코는 사내에 6명의 디자이너를 두고 있다). 실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패턴이 없는 무지/솔리드 색상의 원단에도 매우 다양한 색상의 실들이 뒤섞여 있고, 그것이 종종 최고급 네이비 혹은 그레이 색상의 수트가(실의 구성과 함께) 빛의 각도에 따라 보라색, 붉은색, 심지어는 녹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이다.



세계적인 원단 Fair인 Milano Unica다. 원단사들이 새로운 원단을 업계의 바이어들을 위해 전시하는 자리다.


직조 회사는 원단 판매사들을 위해 샘플 사이즈로 그들이 디자인한 원단을 직조해내고, 그것을 판매상들에게 제시한다. 충분한 양의 주문이 들어온다면 원단의 제작이 시작된다. 전통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주문은 65미터이다. (하지만 오늘날 ‘커스톰/맞춤’의 유행은 원단 제조업계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모두 갖춘 극소량의 원단을 높은 비용을 치르고서도 가지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증가와 함께, 작은 원단 직조 공장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다. 대형 원단사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대표 원단사 제냐 역시 얼마 전부터 고객이 원하는 원단을 소량으로 생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Invisible Mending>


이제 원단이 다 짜여졌다. 하지만 그것이 비스포크 테일러의 테이블 위로 올라가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우선 원단사는 원단에 존재할지 모르는 균열을 탐색해내기 위한 철저한 검사를 실행한다. 창고로 옮겨진 원단은 우선적으로 전문가들의 기본 검사를 받게 되고, 통과된 원단은 별도의 부서로 옮겨져 더욱 세부적인 검열을 거친다.



Invisible Mending (출처: Bespoke Menswear, B. Roetzel)


테이블 위에 원단이 펼쳐지고, 정적 속에서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미세한 결함을 찾아내기 위해 특수 돋보기 안경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무서운 집중력으로 원단을 샅샅이 살핀다. 보통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결함은 그 위치를 손으로 가리켜주어도, 비전문가로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다.


만약 균열이 발견됐다면, 이제부터 마술과도 같은 작업이 시작될 차례다. 여성 기술자들은 미세한 바늘을 이용해서 육안으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원단의 균열을 손으로 수정한다. 간단히 말해서 아주 작은 부분의 원단을 손으로 바느질해 다시 짜내는 작업이다. 이 일은 오직 여성들에게만 맡겨지는데, 그것은 원단사들이 이와 같은 극도의 정확도를 요구하는 일에 남성의 손이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의 시도 끝에 깨달았기 때문이다(B. Roetzel).


Inivisible Mending이라 불리는 이 작업을 위해서는 감독관이 여성 재봉사에게 미세한 크기의 바늘을 직접 전달해야 하고, 여성 재봉사들은 사용 후 바늘을 감독관에게 반납해야 하며, 감독관은 그 수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Invisible Mending용 바늘은 그 크기가 지나치게 작은 나머지 그것이 원단 사이에 끼워져 분실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사고가 불러일으킬 피해는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만약 바늘 하나가 사라졌다면, 수정된 원단을 철저하게 검사해야 한다. (B. Roetzel))


이와 같이 원단의 결함을 완벽하게 사라지게 해주는 Invisible Mending은 손상을 입은 비스포크 수트의 수선에 활용되기도 한다. 새빌로 하우스들은 원단사들에게 이러한 작업을 요청하는데, 아주 작은 구멍 하나에도 15만 원가량의 수선 요금이 청구된다. (옷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적, 나방으로 입은 피해 역시, 이 Invisible Mending을 통해 복구될 수 있다.)



<마무리/Finishing>  


드디어 직조 과정이 끝이 났지만, 원단이 우리에게 익숙한 매혹적인 모습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단계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직조기에서 막 완성된 원단은 보통 ‘grey goods’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그 소재와 무관하게 거친 코튼 바지 원단과도 같은 거친 질감을 보여준다. 아직 원단의 모양새와 촉감(handle)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인 ‘Finishing/마무리’ 과정이 남아있는 것이다.


Invisible Mending을 통해 결함들이 수정된 이후, 원단은 Finishing 공장으로 옮겨져 마무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Fox Brothers사의 원단 역시, 잉글랜드 남부의 Somerset에서 직조된 후, 중부 지방 요크샤이어, Huddersfield의 Finishing 공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완료한다. (이러한 관행은 잉글랜드 중부에 자리한 Yorkshire의 물이 남부 Somerset의 물보다 더 부드럽고, 그것이 원단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인 Finishing 과정에 더 용이하다는 사실에서 기원한다.)



<Scouring>


Finishing 공장에 도착한 원단은 다시 한 번 세탁과정을 거치게  된다. 방직, 직조, 수정 과정에서 생긴 오염과 이물질이 이 단계에서 제거된다.



피니싱 공장에서 Scouring 과정을 거치고 있는 원단의 모습이다. Leviathan과의 이별 이후, 오랜만의 세탁이다.


<Milling>


Scouring이 끝나게 되면, 양모는 원단의 밀도와 질감을 결정해줄 Milling 과정에 투입된다. 밀링은 간단히 말하자면 양모 섬유를 물+산성, 혹은 물 + 알칼리의 용액 속에 넣은 후 지속적으로 두들겨주는 작업이다.


로터리 형태의 밀링 머신. 다양한 밀링 기계의 유형 중 하나다. 원단은 용액 속에서 두들겨 맞고선 원형 롤러에 의해서 다시 펴지게 된다.
양모, 캐시미어, 알파카, 실크 등의 섬유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이다. 표면이 거친 섬유일수록 더 높은 수축력을 보이게 된다. 밀착된 상태에서  서로 달라붙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Milling의 시작과 함께 The liquor라 불리는 물+ 산성/ 물+ 알카라인 용액 속에 원단이 투하되고, 원단을 움켜잡은 Milling Machine은 용액 속에서 원단에 압박을 가했다가 다시 펴주는 과정을 반복한다.


원단은 고르지 못한 양모 섬유 표면의 특성상 용액 속에서 밀착된 상태로 굳어지면서(felting) 수축하게 되는데(뜨거운 물에 양모 옷을 거칠게 세탁할 때, 옷이 줄어들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는 원단을 원단사가 원하는 최종적 부피로 줄어들게 하는 동시에 더 밀도 있고 탄력성 있는 원단으로 거듭나게 한다. Milling 과정에서 양모를 충분히 수축시키는 일은 테일러의 손에서 원단이 재단-재봉 과정 도중에 수축해 버리는 불상사를 일정 부분 예방한다.


Milling 기계에 의해 용액에서 잠시 끌려 나온 원단이다.
전자화된 밀링 기계의 모습이다. 용액 속에 담가졌다가 꺼내졌다를 반복하는 옷감의 상태를 전문가가 확인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각 원단의 Milling 과정이 요구하는 강도와 시간을 결정하는 것이 전문가의 ‘직관’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용액 속에 담가져 있는 시간이 길수록 원단은 부드러워지고, 원단에 가하는 압력이 강할수록 원단은 단단해지기 마련인데, 자연 소재인 양모의 특성상 같은 구성, 같은 무게의 원단이라 해도 Milling 작업 중 매번 같은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거친 트위드, 혹은 고급 수트감의 원단이 얼마간의 시간 동안 용액 속에 담가져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컴퓨터의 계산이 아닌 전문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적 판단인 것이다.


Milling을 통해 구현되는 부드러움은 원단의 퀄리티를 정해주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이기에,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내는 전문가의 감각은 평균의 원단을 고급 원단으로, 좋은 원단을 탁월한 원단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B. Roetzel).


(Milling 이후 또 한 번의 Scouring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흔하게 발견된다)


<Chlorination>


원단은 Milling 과정을 통해 수축하게(shrinking) 된다. 전술했듯이 열, 압력, 수분에 의한 수축은 양모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봉 도중에 예기치 않은 수축, 혹은, 수트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수축이 일어나는 일은 불상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원단은 또 한 번 수축-방지 작업을 거치게 된다.


Chlorination 혹은 Unshirinking이라 불리는 이 작업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서는 그중 한 가지 만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세척과 Milling이 끝난 원단은 염화수소산 용액 속에 담가지고, 조심스레 쥐어짜내어진 후 다시 표백 파우더가 섞인 저온도의 용액에서 세척된다. 이 과정은 비슷한 방식으로 몇 번씩 반복 되는데, 이러한 거듭되는 세척 과정 속에서 표백제의 염소는 양모의 섬유들을 공격하게 된다.


공격을 받은 양모 섬유의 표면은 본래의 거친 굴곡을 잃고 매끈해지는데, 이것은 양모 원단의 수축성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수축성을 완벽하게 고갈시키는 일은 (원단을 심각하게 손상시키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수축성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원단을 선호하는 테일러는 없다. 그는 수트의 제작 과정에서 다리미로 원단을 조금씩 수축시켜 가며 재킷과 바지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름을 펴기 위한 가벼운 다림질에도 크게 수축 되어버리는 원단은 지나친 불편함을 초래하기에, 오직 최소한의 수축성만이 원단에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양모 원단의 세탁이 까다로운 이유다. 아무리 철저한 Chlorination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양모 옷을 뜨거운 물에 오랫동안 세척할 경우 그것이 줄어드는 일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양모 섬유를 확대한 사진이다. 적당한 수축-방지 과정을 거친 섬유의 표면은 보통 섬유보다 매끈하지만,  탄소에 의해 지나치게 손상을 입은 섬유보다는 거칠다


<London Shrunk>


20세기까지 런던의 고급 테일러샵들을 위한 원단에는 London Shrunk라 불리는 마지막 Unshrinking 과정이 진행됐다. 이것은 원단이 테일러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단을 한 번 더 수축시키는 작업이다. (London Process라고도 불리는 이 전통적 공정은 원단에 멋진 드레이프를 추가해주는 효과를 준다고도 알려져 있다)


London Process를 준비하는 피니싱 공장의 직원들. 젖은 시트와 원단이 겹겹이 쌓여 올려지고 있다.(1951)


런던 프로세스의 시작과 함께 원단은 균일하게 펼쳐지고, 그  위로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모포/시트가 올려진다. 원단과 젖은 시트가 겹겹이 쌓여 1.2-1.5m까지 이르게 되면, 이 원단 더미는 그 상태로 12-24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젖은 모포와 밀착된 상태로 놓인 원단의 섬유들에는 수분이 침투하게 되고, 물에 젖은 양모 섬유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 온도가 상승하게 된다. 온도의 상승은 다시 추가적인 원단의 수축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수축이 충분히 진행될 수 있도록, 12-24시간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더 수축된 원단은 별도의 창고에서, 실내 온도로 자연 건조된다. 이 단계 역시 서두를 수 없는 과정이다. 원단을 건조하는 시간은 공유되지 않는 극비사항이다.( 건조 시간을 결정하는 것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다.) 최고의 원단을 위해선 오랜 시간과 배려가 요구된다.


드라이 룸(Drying Room)에서 건조 과정을 거치고 있는 원단들


충분히 마른 원단 위에 이제는 젖은 시트가 아닌 보드지가 놓이게 된다. 다시금 한 겹 한 겹 쌓아 올려진 원단과 보드지는 압축기에 올려지고, 그 위로 30톤의 압력이 가해지게 된다. 이 상태로 원단은 약 일주일 동안 보관된다. 강한 압력을 통해 최종적으로 원단의 수축을 유도하는 작업이다.


원단 사이에 보드지를 끼워 올려놓고 있는 공장 직원들
쌓인 보드지와 원단이 압축기 위에 올려진다. 이제 곧 압축이 시작된다.

이 작업마저 끝나면 원단은 London Shrunk의 인준 도장을 받게 되고, 새빌로의 테일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London Shrunk 원단이 탄생하게 된다.


20세기 이후 거의 모든 Finishing 작업은 자동화된 Finishing 공장에서 신속하게 진행되며, 시간이 걸리는 London Shrunk와 같은 전통적인 Chlorination 과정 역시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 높은 마무리 공정은 전통의 London Shrunk만큼의 품질을 보장해주지 못했고, 결국 옷감들은 수축성이 충분히 고갈되지 못한 채 테일러들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이러한 원단을 정확하게 재단하기 위해  재단사들은 몇몇 새빌로의 테일러들처럼 원단을 초크로 그려낸 후 재단 가위로 잘라내기 전에 그것을 하루 정도 테이블 위에 올려두어 수축을 기다리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피렌체의 안토니오 리베라노처럼 물기를 꽉 짠 면에 원단을 한 시간 정도 말아둠으로써 원단의 수축을 유도한다.


그러나 여전히 London Shrunk의 '확실한' 품질을 그리워하는 테일러들의 성원에 힘입어, 오늘날 몇몇 피니싱 공장에는 London Shrunk가 다시 도입되고 있다.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을 시도하는 클래식 남성복 유행의 부활은 옷을 사랑하는 남성들에게 다방면에서 희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원단의 셀비지에 자랑스럽게 명시된 London Shrunk 마크다.


존재하는 세계 최고의 원단이라는 평을 받는 Fintex of London사의 원단이다. 그들은 London Shrunk 원단을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원단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머지 마무리 과정>


Unshrinking까지 마친 원단은 이제 진정한 ‘마무리’ 과정만을 남겨두게 된다.


이제 원단은 뜨거운 롤러에 의해 균일하게 펴진 후, 건조되고, 당겨져(stretched), 일정한 너비와 길이로 조정된다(이 과정은 Entering이라 불린다). 마무리 과정 중 빠져나온 실들을 태우기 위해 뜨거운 금속 플레이트가 원단 위를 통과하고(Singeing), 잔디 깎기와 유사한 모양새의 기계가 원단 위를 지나다니며 원단의 기모를 일정한 길이로 깎아낸다 (Shearing). 그 후 원단은 뜨거운 다리미 두 개 사이에 끼워져 깔끔하게 다림질되어(Caleandering) 특정 양의 윤기를 먹게 된다. 경우에 따라 원단 표면의 기모를 세워주기 위한 빗질(brushing and teasing)이 더해지기도 하는데, 이 과정은 주로 코듀로이나 벨벳 원단의 처리에 사용된다. (이 과정은 Napping이라 불린다)


 

스팀을 이용해 (커다란 다리미처럼) 원단을 펴주는 Decating Machine이라 불리는 괴물이다. (출처: Permanent Style)


드디어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이제 원단은 원단 판매상들(Cloth Merchant)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전 세계의 테일러들과 남성복 애호가들의 손과 어깨 위에서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원단은 다시금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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