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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능의 욕망 Mar 21. 2021

포멀함과 댄디함 2/2

By Michael Anton

The Suit (by Nicholas Antongiavanni/Michael Anton)에서 발췌.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자. 남성의 옷차림과 습관이 그들의 직업과 사는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장 저명하고 스타일리시한 직업과 지역 몇몇에 대해서만 묘사하는 일조차 (제한된 지면을 고려했을 때) 지나치게 어렵고, 지나치게 긴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영국인들이 빳빳한 포멀함이 요구되는 시내에서는 더블브레스트 수트, 화려한 스트라이프, 블랙 캡토 옥스퍼드 슈즈를 선호하고, 시골(country)에서는 트위드 수트, 태터솔 셔츠, 양모 샬리스 타이, 브라운 스웨이드 브로그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박물관 관장, 오랜 역사의/상류층(white shoe)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투자 은행가들은 솔리드 색상의 값비싼 옷을 선호한다 - “섬세하면서 고급스러운 – 그 자식들만이 할 줄 아는 방식으로 말이야” - 코피 아난(전 UN 사무총장), 또는 영화 The Game의 마이클 더글라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한때 미국의 대학생들, 특히 WASP 학생들은 트위드 재킷, 그레이 플란넬 바지, 버튼다운 셔츠, 코도반 로퍼 차림을 고수했었다. 그들은 성장하면서, 이와 같은 차림으로부터 졸업했고, 색 수트(Sack Suit), 윙팁, 레프 타이를 즐겨 입게 됐다 – William F. Buckley Jr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는 WASP는 아니었지만 텔레비전에서 오랜 세월 WASP 역을 연기했다.


    1965년 이후로 미국 대학생들은 칼라가 달린 셔츠의 포멀함조차 거부할 정도로 캐주얼한 옷차림을 추구하게 됐지만, 일본인들은 이 스타일을 받아들여서, “TRAD” 스타일이란 이름을 붙였고 – 이 이름은 태평양을 건너와 몇몇 미국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로마와 로마 남쪽의 이탈리아인들은 화려한 패턴과 색상을 사랑한다. 로마인들은 몸에 밀착된 옷들을 선호하는 반면, 나폴리인들은 비교적 볼륨감 있는 드레이프가 가미된 수트를 선호한다.


    변호사들은 에르메스 타이를, 투자 은행가들은 서스펜더를, 대학 교수들은 보타이를 애용한다. 이 모든 것들과 그 외의 (특정 지역의/직업의 남성들에게 애용되는) 옷/아이템들은 이러한 양식을 따르는 이들에게 있어선 유니폼과 같은 것이다.

"A tailor has got to be a doctor of the soul" (Luciano Barbera)

    그러나 우린 유니폼의 양식에 옷차림을 맞추는 일을 회피해야만 한다. 난 대신 밀라노인들을 모방하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그들은 여러 유니폼의 각 요소들만을 따와서 그것을 활용하는 일을 즐긴다. 밀라노의 남성들은 남성적 우아함의 두 수도가 런던과 나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자는 추운 날씨를 위한 착장과 존중받는 전통을, 후자는 따뜻한 날씨를 위한 착장과 세련된 혁신을 자랑한다. 경제적으로는 런던을, 문화적으로는 나폴리를, 전자의 안개와 후자의 더위를 닮은 축복받은 도시 밀라노의 남자들은 두 도시로부터 멋진 것이라면 무엇이건 망설임 없이 받아들여서 그들의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그들이 겨울에는 트위드와 플란넬을, 여름에는 라이닝이 1/4만 들어간 프레스코, 리넨, 모헤어를 애용하는 것을, 직장에선 진중한 네이비와 그레이 수트를, 여가 시간엔 밝은 색상과 화려한 패턴의 수트/재킷을 즐기는 것을 발견한다.


Making corduroy look sexy.


    그들은 좋은 전통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여서 그들을 자유롭게 섞어버린다. 그들은 언제나 브라운 색상의 구두를 신고, 다크-블루 수트에도 그렇게 한다. 용감하게 브룩스 브라더스 버튼 다운 셔츠를 우스티드 수트, 매이클즈 필드 타이와 매칭 하기도 한다 – 유명한 댄디 지아니 아니엘리(l'Avvocato!)가 가장 선호했던 조합이다. 이들의 취향을 대표하는 남자는 밀라노의 디자이너 루치아노 바르베라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가져온 트위드, 미국으로부터 가져온 버튼 다운 셔츠, 프랑스로부터 가져온 실크 풀라르를 동시에 활용하여, 각양각색의 요소들로 구성된 새로운 조합을 구현해낸다.



    가장 우아한 몇몇을 제외한 모든 영국인들은 복식의 규칙을 철두철미하게 따르는 차림을 보여준다. 반면 우아한 이탈리아인들은 영국인들보다 멋질 뿐 아니라 그들의 스타일을 마치 스스로 고안해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자랑한다.


    이 문제(착장의 양식)에 대해서 우리는 무한히 많은 예시를 제공할 수 있을 테다. 모델, 색상, 원단, 패턴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모두 화려함과 진중함의 대립으로 축약될 수 있을 테다. 따라서 난 스타일리시한 남성을 그의 착장의 형태를 바꿀 줄 아는 남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엉터리 양식들을 멀리 하면서, 모델, 색상, 패턴에 있어서 여러 양식들을 혼합시켜,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무심한 듯한 착장을 연출한다.



    미국 대통령들의 복식에 관한 습관들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착장의 형식들은 우리나라(미국)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따라서 그것을 모방하는 것은 실수라 오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몇몇 대통령들의 옷차림을 살펴보는 일을 통해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스타일리시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러한 편견을 바로잡고자 한다. 나는 모든 현대 대통령들,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아들(younger) 부시까지를 다루는 것만으로 내 주장이 입증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나열하자면) 루스벨트, 해리 트루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제랄드 포드, 지미 카터, 로날드 레이건, 조지 부시와 그의 아들, 그리고 빌 클린턴이다.


    우선 우리는 타국의 국가 원수들에게는 멋지게 옷을 갖추는 것이 허락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들의 직위가 국민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거나,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고급 의복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미국의 대통령들은 포멀함을 원하면서도, 댄디스러운 옷을 경멸하고, 그러한(댄디한) 옷차림을 벌하고 싶어 하는 국민의 마음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까닭에 항상 포멀한 옷차림을 갖추는 동시에 불필요한 치장을 멀리했던 아이젠하워는 재선 될 수 있었고(베스트와 모자는, 오늘날에는 댄디한 아이템들이지만, 당시에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포드는 전임자(닉슨)의 비리에도 불구하고, 포멀하면서도 지나치게 멋을 부리지 않는 그의 옷차림이 복식에 있어서 혼란을 겪고 있던 시대의(70년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었기에, 자칫 재선 될 뻔하였다. 그는 와이드 타이, 빅 칼라, 넓은 라펠(의 재킷)을 입을 수밖에 없었지만 – 그의 임기 중에는 오로지 이러한 옷들만이 판매되었다 – 언제나 그중에서 제일 과장이 적고, 점잖은 것들을 골라 입었다.


 상원 의원장 당시 (린든) 존슨은 그의 고향의 최악의 전통에 따라 촌스럽게 옷을 입었다. 하지만 전국구 유세를 위해선 그에게도 겸손한 차림이 강요됐다. 몇몇 댄디스런 일탈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카우보이 부츠와 같은 작은 실수들은 그의 출신성분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용서됐다. 훗날 그는 케네디가 입은 멋진 옷차림에 매료됐고, 런던의 테일러를 찾아가서는 그를 ‘영국 외교관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 후로 그는 조금 더 화려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사이드 벤트, 슬랜트 포켓, 눈에 띄는 스트라이프 등등 – 그렇게 그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됐고, 결국 몰락했다.


    바닷가에서도 블랙 윙팁 구두를 신기로 유명했던 닉슨은 언제나 포멀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어쩐 연유에서인지 언젠가부터 1970년대에 유행하던 조야한 타이와 Fishmouth (물고기 입 모양의) 라펠(의 수트를)을 입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몰락했을 것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입는 선택은 절대 그를 도와주지 못했다. 그러한 옷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닉슨에게 투표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들마저도 그들의 대통령이 그러한 옷을 입는 일을 원치 않았다. 훗날 그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자 했고, 대통령이 되기 전, 효과적이었던 평범한 스타일로 귀환했다. 이것은 그의 연륜 있는 정치가로서의 이미지를 확립시켜주는 데 일조하게 된다.


    첫 번째 조지 부시는 포멀하게 옷을 입었다. 전혀 댄디스럽지 않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 국민은 그의 레프 타이, 색 수트(Sack Suit), 리넨 행커치프에서 프레피함을 알아보았다. 그의 옷차림이 주는 이러한 인상은 국민들에게 그의 (상류층) 출신성분을 상기시켜주었고, 그들의 머릿속에서 그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그는 그렇게 몰락했다. 그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은 그의 아들은 마치 CEO와도 같은 빳빳한 포멀함을 고수한다. 그의 옷에서 프레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몰락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옷차림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반면 루스벨트, 케네디, 레이건의 옷차림에 대한 습관을 살펴볼 경우, 우리는 그들이 포멀하면서도 댄디스러웠음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언제나 권위 있는 옷차림을 유지했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항상 은밀한 스타일적 요소를 가미시켰다. 이들 중 케네디를 제외한 둘은 재선에 성공했다. 레이건은 할리우드 시절 고급 옷에 익숙해졌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훌륭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수트는 실루엣에 있어서는 조금 샤프했지만, 품질과 핏에 있어선 최고급이었고, 전체 조합은 언제나 포멀하면서 올바른 형태를 띠었다. 그는 조야하게 옷을 입음으로써 국민을 불쾌하게 만든 대통령(카터)의 후임자가 될 행운을 거머쥔 대통령이었고, 따라서 그의 스타일리시함은 국민들에게 있어서 반길만한 것이었다. 미국 국민은 그가 영화배우였다는 사실을 기억했기에, 어느 정도의 댄디스러움 역시 용서할 수 있었다.


    케네디는 언제나 스타일리시했다. 그가 댄디스러운 차림을 보여줄 때에도 – 예를 들어 그의 취임식에 탑-햇을 쓰고 나타났을 때 – 국민은 그것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더더욱 그를 사랑했다. 그 자리(취임식)가 그럴 가치가 있는 자리였다고 느꼈기 때문이었고, 그것을 입은 그의 모습이 멋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상시 집무를 수행할 때에는 노골적인 댄디스런 차림을 피했지만, 늘 주변의 그 누구보다 더 멋진 차림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어마어마했던 그의 구두 컬렉션 때문이었고(케네디 자신 외에 그것을 눈치챈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1930년대에 드레이프 스타일을 선호하게 된 이후로 그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모든 미국 상류층 남성들이 색 수트(Sack Suit)를 입기 시작한 1950년대에도, 컨티넨탈 스타일이 상류층 세계를 휩쓸었던 1960년대에도 그는 드레이프 스타일을 고집했다. 대신 그는 그의 미국 테일러의 손을 빌려, 그의 수트가, 드레이프가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영국식이 아닌 미국식 수트로 보일 수 있도록 연출했다. 미국의 수많은 의류 제조사들과 수백만의 미국 남성들이 그를 모방하려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오늘날까지 미국의 의류 상점, 거리 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패딩이 최소한만 발견되는, 적당하게 쉐입이 잡힌, 투 버튼 수트가 탄생하게 됐다.


Allegedly, he would get this terrible headche if he went 3 days without sex. Precaution was in order
.

    루스벨트는 허드슨 강 유역의 고관 같은 차림을 선호했는데, 그가 실제로 허드슨 강 유역의 고관 출신이었기에 그의 옷차림은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얄타에 진홍색 새틴 라이닝이 들어간 검은 벨벳 망토를 입고 나타났을 때도 그러했다.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대중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며, 덜 거만하다는 선입견이 존재하기에, 민중의 옹호자인 그들이 스타일리시하게 옷을 입는 일은 드물다는 인식이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더 많은 스타일리시함이 허락된다. 부유층, 사업가, 기성세대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공화당 정치인의 경우 포멀한 동시에 수수한 것 외의 차림은 곧장 대중의 불만을 사게 된다. 이것이 닉슨이 그의 아내의 “Cloth Coat”(엘리트./상류 사회의 상징인 퍼 코트가 아닌)를 언급함으로써 그의 정치 커리어를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이다. 따라서 공화당 정치인이 하면 오만함으로 비난받는 옷차림은 민주당원의 경우, 그가 상류층 혈통을 타고났다면, 우아함으로 칭송받게 된다. 따라서 루스벨트는 아무 문제없이 원하는 옷은 무엇이든 입을 수 있었던 반면, 랜든(전 텍사스 주지사), 윌키 (1940 공화당 대선 후보), 듀이가 당선 후 같은 것을 시도했다면, 몰락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이제 트루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포멀하지 못했고, 가장 댄디스러웠던 남자였다. 그는 현대의 대통령 중 유일하게 보타이를 애용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더블브레스트 수트를 입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화려한 모자를 즐겨 썼던 인물이기도 했다. 화려한 패턴, 밝은 색상, 투-톤 구두, 리넨과 코튼과 같은 주름이 쉽게 생기는 원단 역시 애용했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포켓 행커치프를 갖추고 있었다. 그의 사진들에서 그는 종종 어두운 색상의 평범한 싱글브레스트 수트와 흰 셔츠 차림의 참모진들 사이에서 혼자 두드러지는 체크무늬 더블브레스트 수트와 스트라이프 셔츠 차림을 하고 서 있다. 옷을 입는 즐거움에 탐닉하는 습관은 그가 남성복 상점 점원이었던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캐주얼함은 처음에는 사랑스러워 보였으나, 결국 대중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그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그러뜨리기 위해 어두운 색상의 쓰리 피스 수트 차림으로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그는 몰락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재선에 도전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겐 클린턴의 옷차림을 다루는 일만이 남아 있다. 그의 옷차림은 흥미로운 주제다. 난 워드로브 선택에 있어서 그가 스스로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에 얼마나 뛰어났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클린턴이 처음 정치에 입문하던 당시, 그는 그의 경쟁자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그가 처음 옷을 걸쳤던 순간부터- 후줄근했던 그의 스타일에 대한 변신을 꾀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 햄프셔에서 위기를 느낀 이후로(1992년 대선의 분수령이었던 뉴 햄프셔는 클린턴이 최초로 섹스 스캔들을 맞닥뜨린 곳이기도 했다) 그는 아칸소 주에서 통하던 차림이 전국구 선거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그는 워싱턴의 유니폼과도 같은 다크 블루 수트, 흰 셔츠, 붉은 타이를 그의 스타일로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처음으로 ‘대통령답다’는 평을 듣게 됐다. 그렇게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 후, 화려한 상류사회의 맛을 본 그는 평범한 옷을 입는 일을 참을 수 없게 됐다. 그의 할리우드 친구들은 그를 디자이너 도나 캐런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는 곧 클린턴의 워드로브를 담당하게 됐다. 하지만 그가 의회를 공화당에게 잃으면서 그의 정부를 혼란으로 몰아넣자, 그의 참모들은 그에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수수한 옷차림으로 귀환해야 함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그는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그는 다시금 예전의 화려함으로 귀환하고 싶어 했으나, 스캔들은 그에게 몇 달간 눈에 띄는 옷차림을 피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해외로 떠날 때면 그는 조금 더 화려한 착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그의 적들이 더 이상 스캔들로 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요란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는 트루만 이후로 처음으로 더블브레스트 수트를 입은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 후, 더 치명적인 스캔들이 그의 파멸을 위협했을 때, 그는 다시금 겸손한 옷차림으로 귀환한다. 그는 워싱턴 유니폼의 진중함을 갖춘 채 국민 앞에서 스캔들에 대한 질문에 답하게 된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을 향한 국민의 분노를 그들의 적들에게로 떠넘기는 일에 너무나 능했던 나머지 패배가 자명해 보였던 선거에서마저 승리를 거두어낸다(역주: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민주당의 약진이 돋보였던 98년 의회 선거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의 적들이 혼란에 빠지기 무섭게 클린턴은 다시금 화려한 옷차림으로 복귀한다. 국민들은 더 이상 그를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리함은 그의 동료들로부터 경외심을, 국민들로부터 관용을 이끌어냄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경탄 속에 넋을 잃게 만들고, 그의 동료들에겐 만족스러운 존경심을 선사했다. 이로써 그는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본 그 누구라도, 그가 국민의 심기에 스스로의 복장을 맞추는 일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처한 위험을 정확하게 감지해내고선 그에 맞춰 그의 옷차림을 갖출 줄 알았다 – 그를 유심히 살펴본 이는 그가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파멸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경멸스러운 옷차림을 보여준, 그러한 이유로 순식간에 몰락해버린 카터의 스타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만 키웨스트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입거나, 청바지와 카우보이 부츠 차림으로 장작을 패는 것과 스웨터 차림으로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제 이 이야기의 결론을 말하자면, 난 그들의 직위/인기/권위가 국민에게 달려 있는 인물들이 국민의 비위를 맞추는 옷차림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다. 정치인의 경우 포멀함이 결여돼 있거나 지나치게 댄디스러운 옷차림이 해가 된다면, 반대로 엔터테이너와 같은 직종의 남성들에겐 약간의 댄디스러움이 요구된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위 내용을 읽고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우리는 포멀함과 댄디함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어떠한 옷차림이 멋지고, 어떠한 옷차림이 조야하며, 그것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고, 우스꽝스러운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각각의 모든 옷/아이템은 각자만의 포멀함/캐주얼함과 댄디함/평범함을 의미하고, 이 두 특성을 알맞게 조합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포멀, 캐주얼, 댄디, 혹은 진중한 착장을 구현할 수 있다.


...


"You may not love him. But you'd better respect him" was the word on Clinton.


As for the guy on the right, though a hard man to revere, it was just as difficult not to lov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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