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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능의 욕망 Apr 26. 2021

알베르티와 르네상스 건축 양식

피렌체 15

     브루넬레스키의 손에 의해 탄생한 르네상스 건축은 15세기를 거치며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적 건축 양식으로 부상한다. 고대 건축을 철저하게 답습했던 르네상스 건축가들의 등장은 제2의 로마, 제2의 아테네를 꿈꾸던 휴머니스트들의 오랜 노력이 일궈낸 가장 큰 결실 중 하나였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정의를 짧게나마 시도해보려 한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집필한 르네상스 최초의 건축 서적 <<건축론>>을 길잡이 삼아 르네상스 건축의 특징을 살펴보게 될 테다. 


    르네상스 건축의 시조가 브루넬레스키였다면 그 양식을 지배하는 사상을 정립하여 후세에 남긴 것은 사상가, 건축가, 시인으로 활약했던 피렌체인 알베르티였다.  동료 건축가들에게 어떤 건축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설파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나머지 정작 건축가로서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을 듣는 그이지만, 그의 <<건축론>>은 브루넬레스키의 돔과 함께 열린 새 시대가 향후 200년간 추구하게 될 건축사의 길을 확립한 지침서였다. 



밀라노 대성당 (두오모)
베드로 성당 (바티칸, 로마)

   본격적으로 알베르티의 건축론을 살펴보기 전에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사이 존재하는 가시적인 차이를 잠깐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건축 양식의 교체가 가져온 변화를 체감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접근일 테다. 각각의 양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작품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 단연 독보적인,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들을 선택했다. 


   밀라노의 대성당/두오모(고딕 양식)와 로마의 베드로 성당(르네상스/바로크 양식)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역시 베드로 성당 외관의 구성이 훨씬 더 간결하다는 점이다. 밀라노 두오모의 셀 수 없이 많은 '조인트', 조각품,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등의 장식품과 비교했을 때, 코린트식 기둥과 템플 프런트(삼각형 박공벽/Pediment를 중심으로 하는 신전의 정면 형태)를 앞세운 베드로 성당의 정면은 훨씬 더 단정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꼭대기의 장식에 있어서도 무수히 많은 타워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두오모의 그것을 거대한 돔/쿠폴라가 대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적 요소는 단연 도리안, 이오니안, 코린트로 대표되는 고전 양식의 활용과, 수학적 비율과 대칭의 활용이 구현하는 균형미다. 우리는 베드로 성당의 정면에서 위층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들이 모두 코린트식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Temple Front(신전의 정면)의 삼각형 Pediment가 그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고전적 구성은 로마의 팡테온을 연상시킨다. 코린트식 기둥을 공유하는 팡테옹과 베드로 성당의 정면 외관을 비교해보자. (지나치게 많은 타협 끝에) 다소 조잡한 형태로 완성됐다는 평을 받는 베드로 성당의 정면이지만, 그 인상을 지배하고 있는 원형 아치, 템플 프런트, 기둥의 양식에서 우리는 그것이 고대 건축의 형식을 모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오모/밀라노 대성당. 고딕 건축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플라잉 버트레스, 타워, 조각상, 스테인 글라스 윈도.


반면 르네상스 건축은 매우 숙련된 석공들의 솜씨를 요구하는 건축 양식이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건목치기 기법이 그 좋은 예시다. (피티 궁전)



    내부의 형태를 최대한 모두 드러내는 고딕 양식과는 달리 내부의 그 어떤 요소도 외부로 나타나지 않도록 설계되는 르네상스 건축물은 건축가에게 있어서 매우 엄격한 절제를 요구했다(피티 궁전의 정면은 그 좋은 예시다).  균형과 비율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고딕 양식이 디테일의 우아함과 세련됨을 쫓았다면, 르네상스 건축은 전체 구조가 주는 ‘웅장함’을 추구하는 건축 양식이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건축에 있어서 균형미가 탁월하지 않은 건축물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적인 작품일 수 없었다. 이러한 기준에 입각해서 종종 실패작으로 분류되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심혈을 기울인 우아한 장식들의 세심한 배열이 눈에 띄지만 확실한 중심의 부재는 이 화려한 궁전을 대칭과 균형이 배제된, 르네상스 건축이 추구해야 할 ‘위엄’이 결여된 작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우리는 장식의 처리에 있어서 훨씬 더 간결한 피티 궁전과 베르사유 궁전을 비교함으로써 후자가 전체적인 균형에서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따라서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비율과 균형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했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거의 모든 르네상스 건축물에는 중앙이 명확하게 표시됐고, 양 옆으로 배치된 기둥과 아치 등을 통해서 좌우, 혹은 상하 대칭이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르네상스 양식을 따르는 건축가는 어떤 비율이 아름다우며, 그것이 어떻게 활용돼야 하는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혜안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이제 르네상스 건축의 매뉴얼과 다름없었던 알베르티의 <<건축론>>에 담긴 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알베르티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도시의 ‘정의’를 반영해야 하며, 그 정의는 바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조화(cocinnitas)에서 기원함을 주장했다. 알베르티가 정의한 건축가는 정의로운 도시의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서, 그가 설계하는 건축물은 플라톤이 규정한 각각의 시민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조화로운 사회의 '정의'의 거울이어야 했다. 


    각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구현하는 정의로운 사회와 마찬가지로, 알베르티에게 있어서 건축물의 위엄은 각각 요소가 빠짐없이 전체의 모양새 (Lineamenta)와 그것의 우아한 균형 (Concinnitas)에 기여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서로서로 분리된 각각의 요소들은 정확한 룰에 따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이루어낸 논리적인 조화"에서 기원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건축물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그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서는 [건축물]에 그 무엇을 더할 수도 없고, 생략시킬 수도 없으며, 변화를 시도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어야 함을 주장했다. 

미켈란젤로의 손에서 완성된 로마의 팔라초 파르네세/ 파르네세 궁전


이와 같은 건축물을 생산하는 일은 알베르티에게 있어서 인간 본연의 탐미적 욕구를 따르는 행동인 동시에, 자연이 제시하는 아름다움의 비율을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그것은 자연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 욕구의 상징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비율이 완벽한 물체는 “자연에서도 오직 매우 드물게만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베르티는 건축물은 '영원'을 향한 기념비로서 오랜 세월을 버텨낼 내구성을 갖추어야 하며, 동시에 마치 오직 아름다움만을 고려하여 지어진 것과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름다운 형태와 건물의 기능 사이의 완벽한 조화가 가능하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는 둘의 완벽한 조화야 말로 그리스적 건축이 추구했던 바였으며, 로마의 건축이 보여주었던 아름다움이었음을 주장했다. 


    그는 로마인들이 자연의 동물을 설계하듯 그들의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가장 멀리 달릴 수 있는 말의 근육이 가장 아름답듯이, 가장 유용한 건물이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는 신념을 고백했다. '가장 빠른 말이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한 그의 건축 사상은 '기능과 형태'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꿈꿨던 그의 지향점을 가시화하는 것이었따.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건축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절대적인 법칙인 Concinnitas(우아함/균형미)가 요구하는 비율, 외관, 배열에 따라 나타나는 각 요소의 조화와 대조의 형태”였다. 알베르티는 이것이야말로 “건축 예술의 주된 목적"이며, "그것의 위엄, 매력, 권위, 가치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알베르티가 설계한 팔라초 루첼라이 (피렌체) 


  따라서 ‘장식용 디테일들은’ 건축물 본연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오로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모든 요소가 기여하는 건축물의 아름다운은 건축물 전체에 깃들고 있는 것이기에, 장식용 부조물은 이러한 아름다움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일 수 없었다. 다만 인간이 나체로 돌아다닐 수 없듯, 건축물 본연의 아름다움 역시 장식을 통해서 가시화돼야 했다. 그는 "건축가는 그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공공건물, 특히 종교 건물을 최대한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에 임해야" 함을 주장했다. 보는 이의 눈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가시화하는 것은 바로 건축물의 장식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재 알베르티가 설계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전면을 살펴봄으로써 알베르티 건축론이 실제 건축물에 어떻게 적용됐는지를 그 대표적 사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언급돼야 할 것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정면 전체가 알베르티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456년, 고딕 양식을 따라 건설된 도미니칸 성당의 정면/파사드의 설계를 의뢰받은 그는 고딕식 성당의 얼굴을 르네상스식으로 변모시키는 숙제를 부여받았다. 


1456년 당시 성당의 정면이 어느 정도까지 미리 완성돼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고딕 양식의 시그네쳐와도 같은 여덟 개의 소형 첨두아치(그중 여섯 개의 아치 아래에는 무덤이 자리한다)와 2층 중앙에 자리하는 커다란 둥근 창문이 알베르티에게 골칫거리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전체의 균형을 깨지 않으면서 이러한 고딕적 요소를 그의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 자연스럽게 편입시켜야만 했다.  


사진: Smarthistory


우선 그는 교각과 코린트식 기둥을 활용하여 1층의 좌우 윤곽을 잡아둔 후, 대형 개선 아치를 통해 건축물의 '중앙'을 확립시켰다. 코린트식 기둥을 양 옆에 둔 중앙의 커다란 개선 아치(Tirumphal Arch)의 설치는 중앙문 양옆의 여덟 개의 작은 첨두아치들을 자연스럽게 전체 구성에 편입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고대식의 대형 아치와 아치 아래에 자리한 코린트식 기둥은 1층의 전체 구조를 압도하는 확연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동시에, 전체 건축물에 위엄을 더해주고 있다. 



원형 아치 형태로 움푹 파인 개선 아치형 입구와 양옆을 장식하는 코린트식 기둥은 팡테온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사진: Smarthistory)



   또 다른 난제, 원형 창문을 의식하여, 알베르티는 위층의 양옆에 소용돌이 꼴(scroll)을 추가시키고, 그 중앙에 장미꽃 무늬 장식(rosette)을 추가한다. 또한 꼭대기에 위치한 삼각 박공벽(Pediment)의 중심,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태양에서도 다시 한 번 원형의 테마를 반복한다. 이로써 그는 2층의 중심에 위치한 원형 창문을 일관성 있게  전체 구조와 조합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전체적인 균형미를 살펴볼 차례다. 우리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아래층과 위층이 전체 높이를 정확히 2 등분하고 있으며, Scroll을 제외한 위층의 면적이 정확히 위층의 절반, 즉 아래층의 사각형 중 하나의 면적과 동일함을 발견한다. 



알베르티는 그의 건축물의 구성에 있어서 철저한 수학적 비율을 고집했던 건축가였다(Rudolf Wittkower).

 

한편 팡테옹을 연상시키는 Temple Front에는 삼각 박공벽 아래로 네 개의 파일스터(장식용)가 위치한다. 우리는 이 네 개의 파일스터가 아래층의 코린트식 기둥들과 일직선상에 놓여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알베르티는 둘 사이에 나타나는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애틱(attic)을 추가한다. 두 층 사이에 추가적인 공간인 애틱을 배치함으로써 아래층과 위층 사이의 불화로부터 보는 이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알베르티의 시도는 가히 혁기적인 것이었다. 




알베르티에게 있어서 건축의 균형미/우아함 (Concinnitas)는 자연에 본연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에 순응함으로써 구현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의 법칙을 알아보고 이해하는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는 아름다움은 선과 진리와 동반하는 것이며, 인간의 이성이 진리로 향하는 유일한 도구라고 믿었던 알베르티의 네오-플라톤 주의적 신념을 반영하고 있었다.


따라서 알베르티에게 있어서 르네상스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그의 눈과 지성을 통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어야 했다. 이는 그가, 천상을 향해 치솟은 타워들을 올려다보며 황홀한 분위기에 젖는 신도를 상상했던 고딕 양식의 건축가들과는 완벽하게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던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 이후 도래한 네오-고딕 양식은 19세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야 했음을 주장했던 (왜곡된)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에 인기를 얻게 된다.)


르네상스 건축에 대한 남은 이야기는 미켈란젤로에 관한 포스트에서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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