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와이프 좀 그만 대단하세요

"우리 와이프는 정말 대단해"처럼 무책임한 말이 어딨나요

by 모레바람


"우리 와이프는 정말 대단해."

나는 종종 이와 같은 무책임한 말을 듣곤 한다.



간혹 차장-부장급 나이대의 남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주로 아내를 칭찬하는 선의의 말들에서 놀라울 정도로 낡은 사고방식을 확인하고는 한다.


이전에 만난 차장님은 술자리에서 늘 아내 자랑을 하는 분이셨다. 전업 주부로 육아부터 집안일도 완벽하게 해내고 심지어 시댁에도 그렇게 잘한다며 자신은 다시 태어나도 무조건 지금 와이프를 만날 거라고 늘 강조하셨다. 차장님도 회사에서 일 잘하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니 이 부부는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버는 쪽과 집안의 일을 챙기고 아이를 돌보는 쪽의 역할 구분이 명확하려니 했다. 그런데 차장님이 아내를 띄워준다는 취지로 한 말은 이랬다.


"우리 와이프는 정말 대단해. 아이 둘 키우면서 뭐 하나 빠뜨리는 것도 없고 나는 집안일은 손도 못대게 한다니까. 정말 존경스러워."


그러면서 출근 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버리고가겠다고 했더니 냄새난다며 끝내 말렸다는 아내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의 한 남편이, 나는 자꾸만 밉게 보였다.



또 한 번 만난 부장님은 아내가 대기업 회사원인데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회사에서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상을 차린 후 매일 한 시간씩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했다. 내가 '아내 분이 정말 힘드실 것 같아요'라고 (나름은 직설적으로) 한 마디 했더니, 부장님은 전혀 흔들림 없이

맞아. 그래서 엄마라는 건 정말 위대한 존재라는 거야


라고 긍정했다. 아내를 찬양하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가정 내 역할을 회피하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고 높이 띄우는 겸손한 남편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사실 한 마디 했어야 했다.


자꾸 사랑하는 사람을 '대단하게' 만들지 말고,

스스로 좀 대단해지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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