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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May 08. 2024

#1. 계획없이 다니는 여행의 이유

계획이 없는 거지 대책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계획 없이 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적잖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렇게 대충 할 거면 여행은 뭣 하러 다니냐. 대개 사람들은 무계획의 태도을 삶에 대한 무책임으로 여긴다. 물론 정말 그런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라면 그건 명백한 오해였다. 내 경우라면 귀찮아서 계획을 짜지 않은 게 아니라, 나름의 분명한 의도를 갖고 무계획의 태도를 고수했던 것이다.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보다 상위 요소인 ‘이유’에 대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여행을 하는가.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내 경우라면, ‘새로운 인생’을 만나는 것이 그 목적이자 이유였다. 지금까지의 삶이 불만족스러워서는 아니었다. 단지 더 나은 삶을 바랐을 뿐이다. 전에 모르던 새로운 것을 경험할수록 삶의 지평도 그만큼 넓어지고, 인생의 선택과 형태도 더 다양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러한 ‘새로운 삶’은 계획을 통해서는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계획은 오히려 새로운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왜냐하면 ‘계획’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내가 과거에 알던 지식과 정보를 이용해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새로운 것들’은 너무 새로워서 아예 내가 모르는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들로는 계획을 세울 수조차 없다. 즉,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좇으며 사는 건 ‘과거의 연장’으로서의 삶인 것이다. 새로운 삶을 바라는 나는 계획을 짤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상에 그저 나를 던져야 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에 숨겨진 고대 왕국 ‘레(Leh)’에 갈 때였다. 요즘은 공중파 여행 예능에도 소개되어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지만 10년 전인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관광이 개방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인도에 도착해서도 나는 세상에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단지 인도 여행 중 만난 이들이 우연히 알려줘서 가게 되었다. 즉, ‘레’에 가게 된 것도 순전히 내게 아무런 여행 계획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 별명이 ‘숨겨진 도시’인 만큼 접근성도 무척 까다로웠다. 여행자가 레에 가려면 먼저 히말라야의 관문 도시인 ‘마날리’라는 곳에 가야 하고, 거기서 4000~5000m가 넘는 고봉을 몇 번이고 넘어야 레에 도달할 수 있다. 이동시간은 기상과 도로 조건에 따라 최소 12시간에서, 길게는 100시간도 걸린다. 하늘이 허락해줘야 갈 수 있는 곳인 셈이다. 그런데 버스에 오르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버스에 오른 내게 발권 단말기를 든 차장이 물었다.


“어디까지 갈 겁니까?”


그 버스는 우리로 치자면 시내버스보다는 고속 버스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승차할 때 기본 요금을 내고 원하는 곳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최종 목적지의 티켓을 사야 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이 티켓을 사는 순간, 내게는 해당 목적지까지 간다는 일종의 확정적인 ‘계획’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계획을 기피하게 된 건 정확히 이런 경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레에 가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사진 정도는 봤으니, 내게 있어 레는 ‘이미 아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는 것이 됐으니 가고자 하는 계획도 세울 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인도에 왔다가 이렇게 ‘레’를 알게 된 것처럼, 레까지 가는 430km의 기나긴 여정에 레보다 더 좋은 곳을 발견하면 어떡하나. 지도에도 안 나오는 그런 소중한 샹그릴라 같은 곳을. 기실 내가 레에 갈 수 있게 된 건 어디까지나 인도에서 별다른 계획이나 일정이 없어 나를 가로막을 것도 부재했기 때문인데, 이제 ‘레’라는 목적지와 계획이 생기면 그보다 더 좋은 곳을 만나도 가지 못 할 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지금껏 나는 세 달 가까이 여행하며 그런 상황들을 적지 않게 겪어왔다. 목적지까지 버스나 기차표를 끊고 가긴 하지만, 창문 밖으로 더 좋은 곳들을 발견한 경험. 그러나 갈 수 없던 그 씁쓸한 순간들. 종합적으로 본다면 내게 있어서 ‘계획’은 늘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았다. 물론,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한다면 아무리 계획이 있었어도 깨부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당찬 사람은 못 됐다는 게 문제였다. 한 번 약속한 게 있으면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것처럼, 내겐 계획 역시 한 번 세우면 어떻게든 달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나는 늘 그렇게 살아왔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 결국 세상은 내 바람대로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버스에서도 끝내 다른 수는 없었다. 버스를 타려면 일단 행선지를 말하고 미리 표를 끊어야 했다. 울며 겨자먹기였으니, 발권을 하면서도 내심 마음 속으론 기도했다. 참 아이러니한 기도였지만 말이다. 분명 내가 여행하는 목적은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거지만, 이번만큼은 부디 그런 것들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그런 것들을 만난들 버스 표 때문에 내릴 수 없다면 가질 수 없고, 그럼 괜히 아쉬움만 더 커질 테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세상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날리에서 출발한지 35시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까지는 마음에 완전히 끌릴 정도의 마을이 나오진 않았다. 험준하기 그지 없고 나무도 없는 황량한 한랭 사막만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한 번은 아주 높은 고개를 올랐다. 지금껏 지나온 숱한 봉우리와도 다른 그곳은 고위평탄면이었다. 해발 4800미터 고산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지도를 켜서 보니 ‘모여 평원’이라는 곳이라 했다. 


초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바닥은 초록의 풀로 가득했다. 드문드문 고산의 가축인 ‘야크’도 보였다. 저쪽 언덕엔 하얀 솜 뭉치 파편 같은 것들이 보풀처럼 군데 군데 붙어 있기도 했는데, 멀리선 당최 뭔지 분간이 안 됐다. 솜뭉치 주변엔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들은 다양한 색의 깃발이 달린 하얀 천막를 지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버스는 점점 그들 쪽으로 접근했다. 가까이서 보니 하얀 것은 양떼였고, 사람들은 소위 ‘목동’ 또는 ‘유목민’이라 불리어지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목도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목동이 되고 싶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막대기 하나 들고 하얀 양을 키우며 바람을 벗삼아 사는 그런 사람. 특별한 사연이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목장을 가본 경험마저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쩌면 전생에 목동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어린 나는 세상 무엇보다 초원과 양이 좋았다. 하지만 그 꿈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는 없었다.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그건 비현실적인 꿈이라며 나를 꾸짖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면이 있었다. 한국은 초원이 없는 지형인데다 있다 해도 그런 곳은 땅값이 무지 비싸다. 결국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현실에 발 맞추며 일반적인 꿈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포기했던 내 꿈이 지금 창밖에 고스란히 펼쳐진 것이었다. 


나는 마치 다시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자발이 아니라 현실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포기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도 몰랐던 미련이 가슴 속에 잔뜩 남아 있었다. 마치 첫사랑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어쩌면 이 초원과 목동을 만나기 위해 이 여행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격앙됐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대부분 고민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있다고 하던가, 내가 그렇게 바라던 ‘새로운 세상’이라는 정답도 실은 내 어린 시절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마침 버스도 그들의 천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멈춰섰다. 하차 문이 열렸고, 난생 처음 맡아보는 초원과 목동의 냄새가 버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당장 버스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마음만 그랬을 뿐이다. 몸을 움직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짧은 새에 나는 갈등에 빠졌다. 여기서 내가 내려도 될까. 마음은 분명 내리자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은 걸까. 


어렸을 때 내 꿈을 막은 것이 산이 많은 한국의 지형과 땅값이었다면, 지금 내 꿈을 막는 것은 35시간 전에 산 버스표였다. 출발할 때 짐짓 했던 걱정이 딱 들어맞은 것이다. 왜 머피의 법칙은 꼭 이런 때만 실현되는 건지. 여전히 나는 이미 세워 놓은 계획과 버스표를 뒤로 한 채 내릴 정도로 용감하지 못 했다. 결국 내릴 사람만 내려준 채 버스는 곧장 문을 닫았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의 속도가 오를수록 나는 점점 더 안달이 났다. 아직 한 사람 안 내렸다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입밖으로 터져 나오진 못 했다. 결국 내가 건진 거라곤 아쉬운 마음에 창문 너머로 찍은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역시, 계획은 있어봐야 좋을 거 없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상심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겐 믿을 구석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한량 없이 아쉬워도 머잖아 ‘망각의 힘’이 날 구원해줄 게 분명했다. 망각의 힘은 지금껏 석 달간 여행하며 몸으로 배운 큰 교훈이었다. 나는 워낙 정이 많은 성격이라, 비단 모어 평원이 아니라 지나온 대부분의 여행지를 모두 좋아했다. 항상 떠날 때가 되면 아쉬웠고, 때론 너무 아쉬운 마음에 몰래 눈물도 훔쳤다. 하지만 그렇게 온갖 청승을 떨며 떠났어도 막상 하루 이틀이면 다 잊혔다. 새로운 여행지와 또 새로운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 경험이 반복됐을 땐 나도 알게 됐다. 아무리 소중했덕 기억과 아픈 이별도 지나고 나면 쉽게 잊히는구나. 삶은 어떻게 살아지는 거구나. 그 이후로는 작별의 순간이 마냥 힘들지 않았다. 


모어 평원을 떠날 때도 그렇게 자위했다. 지금은 이렇게 아쉬워도 어차피 금방 잊게 될 거라고. 하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달랐다. 물론 평원을 떠난지 다섯 시간 뒤 도착한 ‘레’도 세상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그러나 초원을 대체할 정도는 되지 못 했다. 레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단 하루도 빠짐 없이 그때 그 초원과 양과 목동이 그리웠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알지도 못 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웠다. 


물론 어려울 건 없다. 그렇게 사무치듯 그립다면 까짓것 돌아가버리면 그만이다. 여기 올 때 탔던 버스가 다시 마날리로 돌아갈 때 타고 가면 되니, 경로도 무척 간단하다. 하지만 ‘돌아간다’는 것이 내게 갖는 의미가 문제였다. 한 번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계획하지 않는다’에 이은 내 여행의 두 번째 원칙이었다. 혹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다. 가령 지금껏 나는 어떤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삶을 살고자 했다. 목적을 위해 과정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온전한 삶이 되게 하는 것. 때문에 나는 여행 중 버스나 기차로 이동을 할 때도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그것도 하나의 여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미 지나온 길을 굳이 되돌아 가는 건 그런 마음 먹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건 과정보다 목적지가 중요한 ‘이동’일 뿐이었다. 즉, 단순히 여행 스타일을 넘어 내 삶의 가치관과 충돌했던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결국 버스에서 끝난 줄 알았던 고민은 초원을 떠난 뒤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외려 갈수록 더 커졌다. 고민이 거듭될수록 결정은 더 어려워졌다. 과연 저 초원과 양떼가 굳이 그 길을 돌아갈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괜한 감정일 뿐, 실상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으면 어쩌나. 혹시라도 갔다가 후회라도 하게 된다면. 결국 나는 매일같이 갈팡질팡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답은커녕 작은 진전도 나오지 않았다. 


비로소 변화가 생긴 건 이 끝없는 고민을 반복한지도 어느덧 열흘째가 됐을 때였다. 여전히 같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별안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돌이켜 보니 나는 지난 열흘간 제대로 된 ‘고민’을 한 게 아니었다. 만약 ‘고민’이란 것의 정의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생각 정리의 과정’이라면, 나는 그렇지 못 했다. 계속 고민되는 걸 보면 마음은 분명 돌아가고 싶은 게 맞지만, ‘고민’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가지 않을 각종 핑계와 변명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참된 사랑 앞에 고백할 용기가 없는 주제에 온갖 핑계로 합리화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내 모습이 보이는 순간 덜컥 위기감이 들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문득 내가 왜 이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가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부러 되새기지 않는다면 사람은 초심을 잃고 시류에 휘둘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 여행의 이유와 그 정답이 뻔히 있는데 이렇게 바보처럼 핑계만 대고 있을 거면 이 여행이 굳이 무슨 의미인가.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며 무계획으로 돌아다닌 건 또 뭔 소용인가.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변명만 늘어놓고 회피할 거면 다 무용지물아닌가. 


위기감은 여행을 넘어 삶 전반으로 번졌다. 기실 일상에서도 나는 대개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원하는 것 앞에서 용기를 못 내는 주제에 각종 핑계로 포기만 반복하며. 결국 모든 핑계의 밑바닥에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깟 초원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나 싶은 문제긴 하다. 하지만 여행이 오래되어 일상의 의무로부터 멀어질수록 별의 별 게 다 문제다 된다. 어쩌면 그처럼 삶에 대해 하나 하나 다시 고민하게 해주는 것이 여행의 장점일 지도 모른다. 어차피 삶은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사소한 것이 달라질 때 삶이 변하겠지. 결국 이제 내게 필요한 건 고민과 고민의 반복이 아니라 결단이었다. 결론이 어떻게 되건 후회를 하건 말건, 일단 뭐라도 해야 이 뫼비우스의 띠가 끊어질 수 있었다. 


아무튼 결국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내가 떠나야 하는 것은 단지 이런 저런 ‘계획’이 아니었다. 지금 나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 하게 하는 건 ‘계획’이 아니라,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나는 그러한 원칙이나 태도들과 먼저 작별해야 했다. 


그 날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가 되어 피곤한 눈을 비비며 숙소를 나섰다. 새벽 공기는 서늘했고 며칠 전에 봐둔 지름길은 잘 뚫려 있었다. 레 공용 버스 터미널은 느긋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저 앞엔 ‘마날리’라 쓰여진 버스에 불이 막 들어왔다. 나는 첫 번째 승객이었고, 차장은 발권 단말기를 든 채 열흘 전과 똑같이 물었다.


“어디까지 갈 겁니까?”


모레 평원 어딘가. 하지만 내가 가진 거라곤 마지막에 떠나며 찍은 사진 한 장이 전부일 뿐, 정확히 어딘 줄은 나도 몰랐다. 평원이 얼마나 넓고 초원이 다 똑같이 생겼는데. 결국, 열흘 전처럼 또 마날리로 가는 표를 끊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더 이상은 과거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내가 어딜 가는지 몰라서요. 표는 내릴 때 끊어도 되나요?”


차장은 희한한 놈 보겠다는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세요 그럼.”



-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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