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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un 10. 2024

#2 사랑하는만큼 거리를 둔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저절로 계획을 짜게 된다

여행 계획을 딱히 짜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행에 딱히 대단한 애정이 없다는 것. 만약 애정이 있다면 계획 같은 건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절로 짜게 된다. 어떤 것을 애정하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그걸 갖고 싶다는 것이니, 쟁취를 위한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애정이 없다면 그 정도로 가(지)고 싶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가지고픈 마음이 없으니 쟁취할 것도 없고, 계획도 짜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실례는 나였다. 지금껏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을 다닌 건 물론 천성적인 면도 있고 나름의 가치관의 이유도 있지만, 크게 보자면 그냥 여행 자체에 별 애정이 없었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내겐 모든 곳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반면 그런 나도 갑자기 각종 계획을 짜게 된 적이 있으니, 역시 여행 중 처음으로 ‘가고 싶은 곳’이 생겼을 때였다. 


내게 그 대상은 ‘모레 평원’이었다. 북인도 히말라야를 지나던 길에 버스 창밖으로 우연히 보게 된, 유목민이 양떼를 치며 사는 고산의 초원. 잠깐 스쳐 지나가며 한 1분 남짓만 봤을 뿐이다. 그럼에도 거의 열흘이 지나도록 평원에 가고 싶다는 갈망은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머리가 지배라도 당한 것처럼 평원 생각만 줄곧 났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초원에서 목동이 되는 것이라서인지, 초원은 내게 유독 특별했다. 분명 그 감정은 ‘사랑’이었다. 


누군가는 여행지에 대한 ‘사랑’이란 표현을 과장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가망 있어도 자꾸 떠오르고 갖지 못 하면 괴로운 것’이라는 사랑의 정의에 입각한다면, 내게 초원은 사랑이 맞았다. 물론 이 정의의 출처는 백과사전은 아니다. 20대 초반에 한창 사랑에 허덕일 때 스스로 내린 지극히 자체적이고 주관적인 정의다. 아무튼 첫사랑에게 느꼈던 감정이 초원에서 동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수년 전 첫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결국 고민 끝에 고백했던 것처럼, 기존 일정을 바꿔서라도 초원에 돌아가야만 이 괴로움, 사랑의 열병은 끝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내가 모레평원까지 간 건 전적으로 ‘사랑’ 때문이었다. 


애정과 사랑이 생기니 나도 모르게 계획까지 짜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계획의 습관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 아주 세세한 수준은 아니었다. 단지 초원의 유목민들과 친해져 최대한 그들과 오래 머물고 싶었다. 설령 이 여행을 끝낼 때까지 오직 초원에만 있어도 괜찮았다. 만족스러울 때까진 거기만 있을 생각이었다. 숙박과 식사는 유목민의 천막에서 해결하고, 만약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이나 노동력을 요구하면 얼마든 줄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큰 포부를 갖고 시작한 계획일수록 틀어질 가능성이 더 커지는 아이러니한 머피의 법칙처럼, 모레 평원도 바라면 바랄수록 오히려 더 멀어져갔다. 그런데 초원으로의 여행이 ‘사랑’으로 시작됐던 것처럼, 그 끝도 전적으로 ‘사랑’ 때문이었다. 




그래도 시작만큼은 괜찮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내 계획과 바람대로 잘 굴러갔다. 일단 초원에 다시 도착한 건 약 오전 열한 시 무렵이었다. 도로에서 한참 떨어진 유목민의 낡은 천막이 본 즉시 환희와 기쁨이 차올랐다. 목동. 내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자 우상이었던 사람들을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막 앞에는 유목민 부부와 작은 아이가 있었다. 고산의 날카로운 바람과 햇살의 흔적이 얼굴에 선명한 모습이 전형적인 목동이었다. 양치기 개로 보이는 복실이는 천막 입구 한쪽에서 낮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멀리서부터 손을 크게 흔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반가움이 주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나를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경계하는 시선. 그러나 나는 주눅들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티끌하나 없이 떳떳했기 때문이다. 되레 그들 입장에선 처음 보는 사람이니 경계는 당연했다. 어차피 친해지는 건 지금부터 하면 된다. 저들을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할 자신도 있고 모든 준비도 돼 있었다. 


말은 안 통하지만 그들 앞에 서서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그런데 심지어 상황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순탄히, 더 빠르게 전개됐다. 코리아에서 왔다는 내 말에 아저씨가 대번 반색하며 나를 천막으로 초대한 것이다. 벌써부터 내 계획대로 착착 들어맞는 건가 싶어 까무러칠 정도로 기뻤다. 


천막 안에 먼저 자리를 잡은 아저씨는 작은 나무 궤짝을 뒤적이고 있었다. 뜻밖의 2만원이 나왔다. 2만원 상당의 인도 루피가 아니라 진짜 한국 지폐 만원 짜리 두 장.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래도 한국산 헌옷에서 건진 이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를 좀 유용하게 바꿔 달라는 것 같았다. 물론 언제 한국에 돌아갈지도 모르는 내게도 그 돈은 필요 없었다. 있어봐야 짐이고, 주머니 속을 굴러다니다 언제 잃어버릴 줄 모르니 차라리 없는 게 더 낫다. 하지만 그때 내겐 오직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일념 뿐이었다. 사랑 앞에선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줬다. 혹시 몰라 현금을 두둑히 뽑아온 게 신의 한 수였다. 그와 현금 종이를 나누는 순간은 마치 앞으로 이 천막에서 당신들과 동고동락 하겠다는 계약서를 나누는 것 같았다. 


환전에 성공한 아저씨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아주머니에게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건넸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막을 나갔다.


아주머니는 길쭉한 나무 통의 굳은 양 버터를 흔들어 녹였다. 작은 난로의 귀한 야크 똥 연료에 불을 붙이더니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말은 ‘저 코리아에서 온 환전상에게 차라도 한 잔 줘’인 것 같았다. 덥혀진 차는 작은 잔에 담겨 내 손으로 왔는데, 그 순간은 마치 이 관계의 클라이막스를 찍은 듯 특별했다. 나는 그 차가 그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같은 음식을 먹는 사이인 ‘식구’로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이 차만 마시면 왠지 천막에서의 숙박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질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작은 것 하나를 받아도 특별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일말의 의심은커녕 되레 반가운 마음으로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그 순간, 식구는커녕 지금까지의 환희와 기쁨이 다 소멸될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쓰는 게 아주머니께는 참 죄송하지만 그 냄새와 맛이 견딜 수 없이 고약했다. 너무 고약해서 시궁창 물을 퍼다 마셔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뱉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끓여준 성의를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걸 마셔야만 나도 목동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꼭 감고, 숨을 꾹 참고, 그 뜨거운 걸 단 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그게 오해를 일으켰다. 아주머니는 나를 ‘의외로 버터 차를 좋아하는 환전상’으로 착각을 해버렸는지 차를 더 권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들어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그때부터였다. 물론 차 자체에는 맛 외에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거다. 그런데 차를 마시며 정신이 번쩍 든 그 순간부터, 지금껏 잘 굴러오던 상황은 갑자기 끝도 모른 채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가 나는 입도 못댈 정도로 안 맞는다는 사실이, 그들과 나 사이에 절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있음을 암시한 것처럼 말이다.




아주머니는 차와 주전자를 정리하더니 아이를 데리고 곧장 천막 밖으로 나가버렸다. 천막은 순식간에 적막에 빠졌다. 물론 아직 천막엔 나 말고 두 사람이 더 있긴 했다. 작은 아이와 할머니.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내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나는 천막에 혼자 있는 셈이었다. 주인도 없는 집에 손님으로 와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 눈치없는 불청객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이대로 천막을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은 서늘함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알을 박아야 계획대로 될 것 같은 느낌. 다만 그 순간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더 불편했으므로, 일단 나도 아주머니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먼저 나갔던 아저씨는 트럭에 무거운 자루들을 싣고 있었다. 어떻게든 친해져야 하는 나는 버선발로 달려가 손을 보탰다. ‘요 놈 좀 보게’하듯 웃는 아저씨의 얼굴에 잠깐 다시 기뻐졌지만 그때 뿐이었다. 짐을 다 싣자 아저씨와 트럭은 망설임도 없이 멀리 사라져버렸다. 역시 내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아주머니와 아이도 물통을 들고 멀리 강가에 물을 뜨러 가버렸다. 다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 같았, 던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텅 빈 초원은 지나치게 넓었고 거침없이 부는 바람은 쓸쓸했다. 심지어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열흘 전 나를 매료했던 양과 염소 떼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못 돌아가는 느낌. 점점 불안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난 여기서 뭘 해야 하는가. 


한 이십 분을 아무 것도 못한 채 텅 빈 유목민 천막 앞에서 주뼛거렸다. 아무래도 이렇게 떠나는 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고 빈 터를 서성거릴수록 번뇌만 거듭 차올랐다. 결국 일단은 작전상 후퇴하기로 했다. 어차피 큰 마음 먹고 온 내겐 넘치는 게 돈과 시간이었으니, 오늘만 날이 아니었다. 


다행히 저 멀리 도로가엔 몽골식 대형 천막이 있었다. 유목민의 그것은 아니고, 도시 사람이 휴가철을 맞아 여행객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파는 일종의 간이 휴게소였다. 그런데 휴게소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맞은편에서 유목민 천막 쪽으로 올라오던 한 남자가 있었다. 외모는 유목민을 닮았지만 복장은 말끔한 도시인의 차림을 한 남자. 그런데 그는 의심스런 눈으로 대뜸 날더러 왜 그쪽에서 내려오느냐 따져 물었다. 천막 사람들과 달리 영어도 곧잘했지만 어조는 영문없이 공격적이었다. 마치 집까지 찾아온 맘에 안 드는 귀한 딸의 애인을 보는 듯한 무서운 아버지의 태도였다. 하지만 나도 켕길 건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고했다. 남자는 알겠다며 지나가긴 했지만, 그 의심스런 눈초리는 내내 신경쓰였다. 


오늘 밤은 휴게소에서 보내기로 했다. 목동에게 다시 다가가는 건 내일하려고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초원이 이렇게 넓은데 꼭 아까 그 유목민만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 아까 갔던 천막 반대편으로 걷고 걸으니 저 앞에 또 다른 유목민 천막이 보였다. 여전히 양떼는 안 보였지만, 새끼 양 몇 마리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본능적으로 걸음이 이끌렸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두 유목민 할머니가 천막에 접근하던 내게 이상한 손짓을 했다. 두 손을 마구 흔드는 모습. 환영의 의미는 전혀 아니고 되레 귀찮은 잡상인을 쫓을 때 하는 만국공용의 손짓이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저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초원을 걷고 있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까지 문전박대하려고 하나. 혼란은 이내 설움이 되었다. 나는 나쁜 의도로 온 것도 아니고 당신들이 좋아서 온 건데 어떻게 나에게 그런 손짓을 할 수가 있나.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내게 왜 그러냐는 표정과 몸짓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말도 소용 없다는 식의 인상을 쓴 채 연신 손사래만 칠 뿐이었다. 말이 안 통한다 생각했는지 그들은 가던 길을 마저 갔고, 주눅이 들어버린 나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빈 땅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엔 지금껏 간신히 유지해오던 희망의 끈이 크게 흔들렸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어떻게든 일어나서 계속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문득 희망고문으로 느껴졌다. 한편으론 모든 것이 미스테리였다. 첫 번째 천막도 그렇고 그 남자도 그렇고 이 할머니들도 그렇고, 이 동네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나를 박대하는 건지. 혹은 왜 이렇게까지 외부인을 거부하는 건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였다. 어쨌거나 내가 여기까지 온 동기와 앞으로 할 일 따위를 생각하면 여기서 주저 앉을 순 없었다. 다시 일어나 새끼 양이 있는 천막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역시 또 다른 시련이었다. 


한 이십 미터 정도 더 걸었을 때, 저쪽 천막에서 잠을 자고 있던 개들이 벌떡 일어났다. 별안간 나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티벳 늑대로부터 양떼를 지킬 정도로 용맹한데다 덩치까지 큰 두 마리의 셰퍼트였다.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 삼킬 것같은 거대한 적개심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마냥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내가 단순히 코리아에서 온 환전상인 줄로만 알지만, 나는 군대에서 태권도 1단을 따고 나온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다. 하지만 그때 그 개들은 괴뢰군보다 더 맹렬했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었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심지어 개들은 이윽고 나를 향해 폭주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나쳐가던 유목민 할머니들도 그제야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무리 불청객이라도 개에게 당하는 꼴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손에 들고 있던 냄비라도 두드리며 개들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본능에 사로잡힌 개들은 이미 통제의 끈이 풀어진 뒤였다. 나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천만 다행히, 도로를 넘어가니 그들도 추격을 그만뒀다. 문자 그대로 간발의 차로 ‘죽다 살아났다.’ 그런데 심지어 그게 또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편도체가 아니라 위장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기별도 없이 찾아온 거센 변의였다. 내 평생에 그 정도로 폭풍같던 변의는 없었다. 오장육부가 다 쏟아질 것 같을 정도로 배가 아팠다. 직감으로 느낀 원인은 아까 그 버터 차였다. 어쩐지 마실 때부터 꺼림칙하더라니. 가까스로 항문을 막으며 황급히 휴게소 천막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휴게소 천막과 처음으로 갔던 유목민 천막 사이 벌판에 간이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변의란 것은 제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화장실만 있다면 별 것도 아니다. 문제는 화장실을 나왔을 때였고, 다시 아까 그 남자가 문제였다.


화장실을 뒤로 하고 휴게소 천막 쪽으로 도로 내려오는데 그 남자를 또 마주쳤다. 약 한 시간 전 말끔한 차림으로 날더러 ‘왜 거기서 오냐’고 쏘아붙이던 이. 이번엔 아까보다 더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다. 내기 입을 열기도 전에 엄포를 놓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는 내가 화장실이 아니라 또 유목민의 천막에 갔다온 줄 착각한 듯했다.


“당신 말이야. 밤에는 이 천막 근처에 절대 오지마. 저 개 보이지. 지금은 자고 있는 저 개가 밤에는 당신을 물어버릴 거야. 잘 알아 듣겠어?” 

남자는 단순히 내게 겁을 주려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불과 몇 분 전에 개들에게 쫓겼던 경험과 함께 본다면 그의 말에는 분명한 뼈가 있었다.


결국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여러 가지 시련들이 겹겹이 나를 막아선 셈이었다. 한두 번이라면 우연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면 필연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 초원을 움직이는 어떤 거대한 힘이 나를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련의 시련들은 모레평원으로 떠났던 내 여행을 끝내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어차피 큰 각오를 하고 여기까지 온 거였으니 어떤 일이 생기건 어떻게든 극복할 용의가 내겐 있었다. 하물며 남자에게 그 험한 말을 들은 뒤에도 나는 내일을 기약하려 했다. 그런데도 그 ‘내일’이 밝았을 때 되레 평원을 떠나는 버스에 오른 건, 모든 시련의 미스테리를 알게 되었을 때였다. 




낯선 남자에게 험한 말을 듣고 혼자 휴게소 천막 앞에 앉아 감자 파라따를 먹고 있을 때였다. 시선이 닿는 저 끝에는 그림의 떡같은, 첫번째로 갔던 유목민의 천막이 보였다. 그런데 한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그 천막에서 도시민의 복장을 한 두 남자가 나오고 있었다. 복장으로만 본다면 그들은 분명 유목민보다는 내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나를 침묵으로 무시했던 아까와 달리, 유목민 부부는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배웅했다. 심지어 험상궂은 남자 역시 그들을 유목민 천막에서 휴게소 천막까지 온화한 표정으로 안내했다.  


참 어리석고 부끄러운 감정이지만, 내 입장에선 그들에게 적잖은 질투가 느껴졌다. 저들은 대체 나와 어떤 차이가 있길래 나의 사랑하는 목동들과 저렇게 가까워 보이는 걸까. 목동을 향한 내 마음만큼은 결코 저들보다 작지 않을텐데 왜 나는 안 되는 게 저들에겐 가능한가. 


그들은 내가 머물던 휴게소 천막에 짐을 풀었다. 천막은 큰 방 하나로 이루어졌으므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듣고 보니 단순 여행객은 아니었다. 남인도 지역에서 온 대학원생이었다. 같은 ‘인도인’이라곤 하지만 지역 문화가 워낙 달라 사실상 여기선 나와 같은 이방인이었다. 다만 그들은 단순 관광 목적은 아니고, 히말라야 지역의 생태 환경을 조사하러 왔다고 했다. 내용인즉슨, 여기 인도 히말라야 지역(라다크)에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남에 따라 도로 등의 개발도 이루어지는데, 그로인해 본래 이 지역에 살던 이들이 작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초원의 원주인, 다름 아닌 유목민의 삶이었다. 


유목민의 재산 1호는 역시 양과 염소다. 그들에게 먹일 목초지가 있어야만 생계가 원활히 해결된다. 그런데 이 초원의 주인은 오직 그들만이 아니다. 양의 천적인 티벳 늑대 역시 수천년 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초원의 또 다른 주인이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다행히 늑대와 목동은 서로의 영역과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다. 그런데 도로 등의 개발로 늑대가 살 곳이 줄고, 목초지도 현저히 줄어들며 둘의 영역은 부득이 겹쳐지게 되었다. 늑대에게 양들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고, 그게 목동의 삶에 새로운 갈등으로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천막에 다녀온 것도 그 피해의 내용을 당사자에게 듣기 위해서라고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직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 속엔 나를 문전박대한 이 유목민들에 대한 상당한 야속함이 있었다. 그런데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모든 미운 감정이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오히려 그 문전박대가 이해됐다. 


어쩌면 그들이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던 건, 관광 개발로 인해 위협받는 그들의 전통적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만약 반대로 내가 바랐던 것처럼 그들이 나를 쌍수로 환영하고 내 계획대로 그들의 천막에서 지내게까지 해줬다면 어땠을까. 나 자신만은 좋았을 것이다. 그걸 위해 큰 마음먹고 여기까지 온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경험이 입소문을 타고 여길 찾아오는 나같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그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조금씩 영향받을 것이다. 내가 초원과 목동을 사랑함은 그들이 자연을 닮아 소박하고, 그 삶이 바람처럼 적막하기 때문이었는데, 화려한 세계에서 온 이들에게 영향을 받는다면 그런 것들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가령 오지의 순수함을 사랑해서 오지까지 굳이 찾아가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지는 점점 자본에 오염되고 역설적으로 더 이상 ‘오지’가 아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가 닿으니 문득 끔찍했다. 차라리 이렇게 되어버린 게, 내 계획과 달리 그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오지인 초원의 밤은 도시보다 일찍 찾아왔으므로 잠자리엔 일찍 들었다. 얇은 천막 너머로 칼날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에선 늑대인지 개인지 알 수 없는 맹수의 울음소리도 엷게 들리는 듯했다. 이불 속에 숨은 채로 나는 생각했다. 종전의 계획과는 전혀 상반되지만, 내일 날이 밝는대로 초원을 떠나야 되겠다고. 하지만 그건 어떤 큰 다짐이라거나 포기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내 자의에 따른 후련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큰 마음 먹고 떠난 모레 평원으로의 내 여행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로 끝을 맞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결정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사랑’의 정의를 통해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사랑한다면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그러지 않으면 괴로워 견딜 수 없다는 것이 20대 초반 사랑을 처음 겪은 내가 내린 ‘사랑’의 정의였다. 다만 한밤의 모레 평원에서 나는 비로소 그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보니 20대 초반 당시 나 혼자 내렸던 그 정의는 틀렸다. 깊이 들여다 본다면 ‘가만히 있어도 떠오르고 갖지 못 하면 괴로운 것’이란 정의에는 오직 ‘나’밖에 없고, ‘나’만 그 중심이었다. 하지만 내 집착과 내 욕심이 중심된다면 그것 ‘사랑’이라고 할 순 없었다. 반면 이제 본 진짜 사랑의 태도는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모레 평원으로 떠난 내 여행은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역시 ‘사랑’으로 인해 끝났다. 사랑하는만큼 다가가야 할 게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 거리를 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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