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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oo Kim Sep 17. 2023

#6. 장엄한 전설의 도시, 마추픽추

다섯 번째 정거장. 페루 마추픽추(Machupiccu)



산골마을을 뒤덮은 어둠은 여전한데 투닥투닥 부산스러운 공기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전투에 나가는 비장한 마음으로 버스정류장에 나섰는데... 이건 뭐지? 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새벽 5시 시를 겨우 넘겼을 뿐인데 버스정류장은 이미 여행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지만 다른 것에 정신을 팔다 행여 버스를 놓칠까 싶어 손에 쥔 버스티켓만 만지작 거렸다. 5시 30분, 드디어 첫 번째 버스가 출발하고 긴 줄은 당겼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산등성이를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힘겹게 올라와 도착한 마추픽추 입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서로 다른 얼굴색을 한 사람들이 세계 각지의 언어로 뱉어내는 흥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껏 어떤 공간이 이토록 기대를 불러일으켰을까?'...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라진 잉카, 여전히 남아 있는 성채


한 걸음 내디뎌 마주한 잉카의 잔해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신비로움을 뿜어냈다. 자욱하게 뒤덮인 안개가 걷힐수록 웅장함이 드러났고, 그 순간 내가 시간의 경계를 넘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식상하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잃어버린 도시', '사라진 공중도시'라는 이름이 가장 이곳을 잘 드러내는 상징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구에서 마주친 라마, 마치 이곳의 주인이 '나'임을 인정하라는 듯 고개를 치켜세우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라마는 높은 고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잉카인들의 유용한 운송수단이었고, 털과 고기, 심지어 똥까지 버릴 것이 없다 보니 잉카인에겐 귀중한 삶의 밑천이자 동반자였다. 지금은 앙증맞은 표정과 노련한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마스코트를 자처한다. 적당히 사진을 찍어준 뒤 아련한 눈 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라마 한 마리,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가 여기서 사셨지.'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성스러운 광장


고개를 돌리자 꽤 온전한 상태를 보존하고 있는 성채가 보였다. 성스러운 광장Sacred Plaza이라 불리는 이곳은 사원과 제사장의 집이 있는 구역으로 마추픽추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제사장은 태양의 기운을 점치며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산봉우리에 걸친 구름이 신성함을 더하는 듯하다. 



'그렇게 사방을 둘러보다간 오늘 계획한 일정에 차질이 생길지도 몰라' 내 마음이 요동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가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써 준비한 와이나픽추 입장권을 날려버려선 안되니까.


와이나픽추 트레일 체크 포인트


케추아어로 마추픽추Machu picchu는 늙은 봉우리, 와이나픽추Huayna picchu는 젊은 봉우리, 잉카인이 만든 도시는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 사이 넓은 평원에 자리 잡고 있다. 2,693m의 와이나픽추는 잉카의 도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마추픽추와는 또 다른 감동을 주는 곳이다. 다만 페루 정부가 밀려오는 여행자들로부터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2011년부터 입장객 수를 제한하면서 와이나픽추는 하루 400명에게만 입장을 허가하고, 그것도 예약한 시간 외엔 입장할 수 없어 마음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오직 통행이 허용된 1시간 이내에 트레일 체크포인트를 통과해야만 한다.



7시 20분 체크 포인트에 도착해 티켓과 여권을 확인하고, 통과 시간도 꼼꼼히 체크했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는 둥 마는 둥,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성큼성큼 와이나픽추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더니 어느새 적응했는지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생겼다. 



와이나픽추에도 잉카인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잔해가 몇 남아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올라오는 길도 이리 무거운데 세심하게 돌덩이들을 다듬고 들고 올라와 차곡차곡 쌓았을 생각을 하니 대단함을 넘어 경외감 마저 든다.



드디어 도착한 정상. 허나 사방은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힘겹게 올라온 수고를 무색케 했다. 조급해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고,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기다릴 수밖에. 모두들 기약도 없는 이 길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보여줄 듯 말 듯 밀당하던 구름 사이로 가지런히 깎아 만든 고대 유적이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작은 웅성거림은 곧 탄성으로 바뀌고 나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는 감탄이 새어 나왔다. 



두말할 필요 없이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였다. 깊은 골짜기 산 정상에 기묘하게 놓인 도시 마추픽추, 어쩜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쉽게 근접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농업지역과 도시지역을 나누는 경계는 분명했고, 멀리서 봐도 견고하고 힘이 넘쳐흐르는 듯했다. 산과 구름과 바람, 모든 자연은 마추픽추를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있는 것만 같다.



진실과 추정 사이 그 어딘가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


와이나픽추를 뒤로 하고 고대 도시 중심부에 들어섰다. 한 세기 짧은 영광을 뒤로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잉카제국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지금까지도 신비로움 그 자체로 여겨지고 있다. 문자가 없기에 글로 전해질 수 없었고, 후손이 없기에 입으로 전해질 수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곳의 많은 정보들은 예측과 추정, 그리고 보석 같은 진실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다.


태양의 신전


도시의 정중앙에 자리한 태양의 신전은 마추픽추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손꼽힌다. Inti라는 잉카의 신을 위한 신전으로 2개의 창문을 가진 타원형 건물이다. 창 하나는 겨울 동지(6월 21일)의 태양 빛을, 다른 하나는 여름의 태양 빛을 받아들인다. 창을 통과해 들어온 햇살은 암석 재단을 비추며 의식의 때를 기다린다. 동지에 맞춰 잉카인들은 가장 중요한 축제인 Inti Raymi를 열었는데 지금도 남미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계단식 밭
수로


마추픽추의 미스터리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지금도 마르지 않고 흐르는 수로이다. 근원도, 원리도 알 수 없는 맑은 물줄기는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본래 비가 많은 지역이라 비가 오면 빗물이 수로로 흐를 수 있도록 했고, 이를 이용해 사람들에게는 식수로, 경작지에는 농수로 활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수로는 물길이기도 했지만 빗물에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어하는 역할도 했다고 전해진다. 비의 양과 상관없이 1년 내내 늘 비슷한 양의 물이 흐를 수 있도록 공학적으로 설계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다. 이것이야 말로 잉카 스타일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세 개의 창을 가진 사원
물 거울(좌) / 콘도르 신전(우)


와이나픽추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달리 도시를 걷노라면 마치 복잡한 미로 속을 걷는 듯한 느낌도 든다. 우왕좌왕하던 끝에 불멸의 존재 콘도르를 형상화 한 콘도르 신전, 그리고 천체를 비춰보던 물 거울도 볼 수 있었다. 잉카인들에게 삶과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마추픽추를 둘러본 여행자들의 마지막 의식은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방문기념 스탬프를 찍는 것(본래 여권에는 다른 도장을 찍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에 기간이 만료된 여권 등을 이용하면 좋다)이다. '내가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곳을 다시 찾을 일은 없을 듯하다. 그렇담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겨도 좋겠다. 



마추픽추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며 생각했다.

'마추픽추는 세상이 발견해 주길 기다렸을까, 아님 영원히 꽁꽁 숨겨진 채로 남겨지길 바랐을까.'

그 영원히 얻을 수 없는 답변이지만 이렇듯 감격하고 즐거워하는 여행자들을 보면 잉카인들도 즐거워하지 않을까. 잉카여 안녕!, 마추픽추여 안녕!



다시 쿠스코로 돌아가는 길.

마추픽추부터 걸어 내려왔더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오얀따이땀보까지 짧은 구간이지만 페루레일까지 경험해 봤으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이다.



마추픽추 예약하기!


마추픽추 입장은 하루 2,500명, 와이나픽추 입장은 하루 400명으로 제한하기에 사전 예매가 필요하다.

남미 여행 성수기인 12월-2월에는 찾는 사람들이 많기에 되도록 빨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총 4개 루트로 나누어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으니 여행 시간과 컨디션을 고려하여 선택할 수 있다. 와이나픽추 입장권(시간지정)은 별도 구매가 필요하다.


 ▶ 예약 사이트: https://machupicchu.center/ko/USD/official-machupicchu-gob-ticket

       (한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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